저는 고객에게 필요하지 않은 보험을 팔았습니다.
그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변 선배들도 다 그렇게 했고, 그게 이 일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받은 대로 말했고, 회사가 권하는 상품을 제안했고, 계약이 체결되면 뿌듯했습니다.
그게 보험설계사의 사명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보험 설계사에게 배신당한 느낌을 가지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나쁜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 구조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구조를 알게 되면, 그 판단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합격률이 **76%**입니다. 100명이 시험을 보면 76명이 붙는다는 뜻입니다.
요즘 N잡러로 광고 엄청난 이유가 진입장벽이 아주 낮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자격증 시험 과목에 재무설계 교육과 세법이 없습니다. 투자론이 없습니다. 건강보험 제도가 없습니다.
매달 수십만 원씩 내는 결정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주 기본적인 국가제도의 이해, 재무설계, 세금이나 투자 기초를 배우지 않고 현장에 투입됩니다. 물론 경험을 쌓이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 장기 근속자 비율이 0.1%도 안됩니다. 구조 자체가 그렇습니다. 혹시 이상하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설계사의 수익은 새로운 계약에서 납니다.
기존 고객이 계속 보험료를 내도 설계사에게 들어오는 돈은 점점 줄어듭니다. 첫 계약이 가장 수수료가 높고, 시간이 갈수록 낮아집니다. 유지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새로운 계약을 하나 따내는 것만 못합니다.
당신을 걱정해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걱정도 진심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걱정이 수수료 구조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입사 6개월쯤 됐을 때 처음으로 불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객 한 분이 이미 암보험이 있는데, 저는 또 다른 암보험을 권했습니다. 비슷한 보장이 겹치는 것을 알면서도 "보장금액이 더 커야하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회사에서 배웠습니다. 그분이 계약을 하셨고, 저는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왜 말리지 않았냐고 지금의 저한테 묻는다면 말릴 이유를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계약을 못 따내는 것이 더 큰 공포였습니다. 이달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매주 듣고 있었으니까요. 그 공포가 판단보다 먼저였습니다.
이것이 잃는 게 더 아프다(손실회피)는 심리입니다. 고객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설계사에게도, 실적을 채우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가 판단보다 앞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금융을 이해하기위해 다시 학부 편입, 석사, 박사과정을 이행하며 모든것을 알게 되었고, 비갱신형을 권하는 방식에 타협했던 2년이 있었고, 그 2년이 가장 씁쓸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수료는 높았습니다. 고객들은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낸 보험료 대부분이 보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양한 이론과 소비자 심리를 다시 배우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불편함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구조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고객이 잃는 것이 설계사가 버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잃고 있는가?"
이 질문은 설계사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구조를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알게 된 순간, 다음 상담에서 달라진 질문을 하게 됩니다.
설계사를 원망하는 것보다 구조를 아는 것이 훨씬 실용적입니다. 이걸 알게 된 것 자체가 이미 대부분의 분들과 다른 출발점에 서계신 겁니다.
만약 지금 내 보험 설계사가 수당 구조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나를 위해 설계해줬다고 확신하신다면, 다음 편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을 드립니다. 여덟 가지입니다. 보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도 대부분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참고 출처
금융감독원 보험설계사 현황 통계 (2024)
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 모집인 자격시험 안내
행동경제학: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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