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증권 봉투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15년을 냈습니다. 매달 빠짐없이. 그런데 본인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분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현장에서 수백 건의 보험을 팔면서 고객이 "나중에 다시 설명해 줘도 되냐"라고 하면 그냥 넘어갔습니다. 설명해도 어차피 잊힌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지금 매달 보험료를 내고 있습니다. 그 금액이 얼마인지는 아실 겁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정확히 무엇이 보장되는지, 지금 바로 설명할 수 있으신가요?
잠깐!, 이건 어려운 질문이 아닙니다.
보험 전문가한테 묻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매달 돈을 내고 있는 상품에 대해, 본인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한국인 1인당 연간 보험료는 약 340만 원입니다. 월로 치면 약 28만 원입니다.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 못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요?
아닙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이렇게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① 내가 낸 보험료 중 보험사가 가져가는 몫이 얼마인지, 그 돈이 어디에 투자되는지 알고 있나요?
② 지금 내가 내는 보험료가 한 달에 정확히 얼마인지 알고 있나요?
③ 내가 가입한 보험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지 설계사가 설명해 준 대로가 아니라, 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나요?
④ 진짜 내게 필요한 보험과 특약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나요?
⑤ 갱신형과 비갱신형 중 어느 쪽이 내게 유리한지, 보험료 차액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나요?
⑥ 실손보험이 꼭 필요한지, 납입 보험료 전액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비교해 본 적 있나요?
⑦ 보험사가 무료 보장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⑧ 내 보험 설계사가 재무설계 전문가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셨나요?
5개 이상이시면 보험을 이미 꿰뚫고 계신 겁니다. 한국에서 그분들은 정말 드뭅니다. 3개 이하라면 — 잘못이 아닙니다. 이 질문 중 어느 하나도 가입 당시 제대로 설명해 주는 설계사가 거의 없으니까요.
설계사가 불성실해서가 아닙니다.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설계사에게도 불리한 구조이자 해본 적이 없을 겁니다. 특히 ⑦번과 ⑧번은 안 해야 유리하겠죠? 사실 이건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만 먼저 짚겠습니다. ②번 질문입니다.
"지금 내 보험료가 한 달에 얼마인지 아시나요?"
간단한 질문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물어보면 — 정확한 금액을 아는 분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한 2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라는 답이 가장 많습니다.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금액을 확인하지 않게 됩니다.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많이 쓰지 않는 구독서비스도 안 쓰는데 나가기도 하죠?
이것이 처음 들은 숫자에 묶임(앵커링)입니다. 가입 당시 들었던 보험료 숫자가 기준점이 됩니다. 이후 특약이 하나씩 추가되고, 갱신으로 금액이 오르고, 새 보험이 하나 더 생겨도 — 뇌는 여전히 처음 기억한 숫자에 머뭅니다. 실제로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그게 적당한지는 다시 계산해보지 않습니다.
③번 — 보험이 왜 얼마나 필요한지. 대부분은 설계사가 설명해 준 숫자를 그대로 씁니다. "암 치료비가 1억은 넘어야 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그게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 통계적으로 맞는 말인지 — 확인해 보신 분이 얼마나 될까요.
⑤번 — 갱신형 vs 비갱신형. "비갱신형이 당연히 좋죠"라는 말, 역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비갱신형 보험료와 갱신형 보험료의 차액을 매달 투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 계산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⑧번 — 설계사는 재무설계 전문가인가. 1편에서 이미 살짝 다뤘습니다만 (1편 참조), 자격증 시험 과목에 투자론도, 세법도, 건강보험 구조도 없다는 사실 — 기억하시나요.
이 연재에서 앞으로 하나씩 풀어드릴 내용의 목차입니다. 지금 답을 못 하셨다면 — 오히려 잘 오셨습니다. 모르는 것의 이름을 알게 되면,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 알아챌 수 있습니다.
"고객이 잃는 것이 설계사가 버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얼마나 잃고 있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려면, 먼저 내 보험의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질문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다음 상담은 달라집니다. 어떤 숫자를 먼저 물어야 하는지 알게 되니까요.
여덟 가지 모두 답하실 수 있었다면, 다음 편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구조가 얼마나 큰 규모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드립니다. 국민 78명당 설계사가 1명인 나라, 설계사 수가 편의점의 12배인 나라에서 —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요.
참고 출처
금융감독원·보험개발원 보험통계연보 (2024)
국민건강보험공단 보험료 현황 통계 (2024)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앵커링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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