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유 Sep 13. 2024

조금 다른 도시여행, 111CM

연초제조창이 시민의 공간이 되다.

마법 같은 저녁이었다. 꽤 오래전에 친구와 대만의 타이베이를 여행할 다.  ‘화산 1914 문화창의산업원구’. 과거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양조장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 타이베이 MRT 중샤오신상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곳으로 찾아갔었다.


회색 지붕에 빨간 벽돌, 녹이 슨 캐노피 위로 초록색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어 운치가 느껴졌다. 건물 내부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눈길을 끄는 카페 등이 자주 발길을 잡았다.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프리마켓도 열리고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스와로브스키라는 브랜드가 론칭쇼를 하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의 젊은 남녀가 환하게 불이 켜진 건물 안으로 하나 둘씩 들어갔다. 뜨거운 타이베이의 날씨 속에서 한낮을 보내고 저녁식사와 곁들여 마신 차가운 맥주 한잔의 힘이었을까? 신구의 조화가 멋스러운 그곳의 분위기에 취했나 보다. 행사장에서 퍼지는 쿵짝꿍짝 음악 소리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흥겨운 춤을 추었다. 나를 아는 이가 없다는 이국에서의 자신감이었을까. 어떤 공간은 잠깐을 머물러기분 좋은 느낌을 마법처럼 전해준다. 



수원시 정자동 111번지.

화서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111CM(111ComMunity)’.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연간 1,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던 수원연초제조창이 있던 자리다.

산업 기술의 발달로 가동이 중단되며 건물은 20여 년 방치됐었다. 2021년 KT&G가 수원시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다시 꾸민 곳이다. 2022년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장관상을, 제12회 대한민국 조경대상에서 국토교통부장관상을 받았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의 전경을 보는 순간, 타이베이의 화산 1914 문화창의산업원구가 떠올랐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깃든 건물을 그대로 보전한 것도 그렇고, 시민과 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도 비슷했다.


노출 콘크리트 기둥에 금속 이음새를 덧대고, 나무를 이용해 격자로 천정을 꾸몄다. 채광이 풍부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건물이다. 지나간 역사를 알기 전까지는 그저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처럼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독특한 외관이 멋스러웠다. 한편에 연초제조창에서 문화제조창으로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을 터치하며 흥미로운 이곳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방식이다. 


스크린에 비친 사진 속에서 한복을  입고 연초제조창 준공식을 구경하는 여인이 눈에 띄었다. 현재의 건물로 변신하기까지의 공사 과정 등도 상세히 보여준다. 유화 물감처럼 시간의 흔적 위로 자연스레 오늘이  덧대어진다.

시야가 탁 트인 2층 야외 휴게공간 ‘더 마루’에 올라갔다. 회색의 111CM 건물을 품은 대유평 공원의 풍경도 둘러보았다. 모처럼 느긋하게 푸른 하늘에 얹힌 구름의 모양을 헤아렸다.



건물 내부는 전시 체험공간과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진행되는 라운지, 휴게공간 으로 구분되어 다. 수원시립합창단과 교양악단, 공연단이 공연하는 브런치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단다. 청소년과 장애우를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시에서 지원하는 예술작가의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프티 마르쉐’라는 미술 시장도 열렸다.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취향에 맞는 작품을 손쉽게 소장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만나는 곳에서  예술이 일상으로 녹아드는 중이었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할머니가 여유롭게 전시 작품을 둘러본다.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정겹게 느껴졌다. 방문객의 휴식과 개인활동을 위해 기다란 나무 책상도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고요하게 책을 읽는 학생을 보니 열린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내게도 전해진다.



수원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전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대도 마련되어 있다. 이전에는 문화와 예술이 너무 서울에만 중되어 있다고 불평했었다. 111CM에 오니 한줄기 샘물을 만난 것처럼 갈증이 풀린다. 굳이 서울까지 나가지 않고 동네 마실 가듯 손쉽게 다양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타이베이에서 그랬듯이, 머무는 동안에 좋은 느낌을 선물 받는 공간을 하나 더 찾아낸 날이었다.



★이 글은 수원문화재단 조금 다른 도시여행에도 실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