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12월에 썼던 여행에세이를 다시 퇴고한 글입니다. 계절이 맞지 않음을 의아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립니다.
붉은색 대게가 우리를 반겼다. 경북 영덕의 강구항 초입부터 화려한 조명과 함께 건물 전면에 거대한 대게가 지붕처럼 얹힌 식당들이 즐비하다. 잘생긴 대게의 모형을 붙여놓고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한다.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자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뽀얗게 김을 내며 군침 도는 대게를 찌는 찜통과 수족관 유리에 바짝 붙은 대게의 심통 난 표정이 재미있어 보였다. 11월부터 이듬해 4, 5월까지 대게철이면 수많은 대게잡이 어선들이 이곳으로 집결한다고 한다. 박달 대게와 붉은 홍게, 러시아 대게 등 여러 종류의 대게들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매서운 바닷바람과 추위를 이겨가며 뜨겁게 일하고 정답게 살고 있는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느껴졌다. 봄이면 살이 통통하게 찬 영덕 대게를 먹으러 모여드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그려보았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전보다는 한산하게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언니와 여행 중에 대게를 먹자고 청송 얼음골을 지나 영덕까지 차를 달려왔다. 다섯 시 반이라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각이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영덕해파랑공원부터 가기로 했다. 집게를 높이 치켜든 대게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과 영덕을 소개하는 장식들이 놓여있었다. 언니랑 핑크색 하트를 품은 깜찍한 빨간색 대게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소녀처럼 깔깔 웃었다.
멀리 쪽빛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에사느라 겹겹이 쌓인 공해와 소음을 씻겨주는 느낌이 춥기는 해도 상쾌하다. 어시장과 회센터, 낚시용 미끼를 파는 슈퍼를 지나 해변을 둘러싼 소박한 어촌 마을이 나온다. 낮은 돌담너머로 말리느라생선을 널어놓은 마당과 야트막한 안채가 보였다.
툇마루 한쪽에 무심하게 던져놓은 수건과 댓돌에 놓인 신발이며 미처 걷지 못한 빨래가 사람 사는 냄새를 전해준다. 흠씬 포근하고 정겨운 마음이 앞섰다. 썰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해변에는 거뭇거뭇한 바위틈으로 서서히 어둠이 내릴 차비를 하고 있었다. 저녁이 오는 바닷가 풍경은 고즈넉하면서도 운치가 있다.
십이월의 바닷가는 모래 바람이 허리를 휘감으며 다가와 재빠르게 몸속으로 스며든다. 몸이 으스스하게 추워져서 밥 먹기 전까지 차를 한잔 마시자며 서둘러 가까운 찻집을 찾아 들어갔다. 조금은 유행이 지난 듯 한 장식과 분위기에 맥주와 차를 함께 파는 찻집이지만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이라 취향을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다행히 인심 좋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생강차를 주문했다. 진하고 따끈한 생강차가 목을 타고 들어가자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스르르 풀어진다.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싸 쥐고 하루 일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와 정박해 있는 어선들 너머의 바다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가 한 분 들어오셨다.
자주 오는 분인지 찻집 주인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맥주 두 병과 마른 쥐포 몇 조각이 담긴 접시를 할머니 자리에 가져다준다. 한겨울 쌀쌀한 날씨에 저 연배의 할머니 혼자 맥주를 드신다니,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솜으로 누빈 낡은 바지에 날씨에 비해 얇고 해진 점퍼를 입은 할머니가 눈이 마주치자 말을 건넨다. " 한잔 마시려오?"
언니는 내 손을 살짝 잡으며 만류했지만 할머니 마음이 상할까 봐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할머니 앞에 앉아 자세히 보니 얼굴에 주름이 밭고랑처럼 깊으시다. 저녁은 드시고 맥주를 드시는 거냐 여쭤보니 입맛도 별로 없고 하도 심심해서 식사는 아직 안 드시고 나오셨단다.
물질하는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들숨과 날숨사이에 긴 숨이 섞인 채,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실타래처럼 살아온 이야기를 한줌씩 안주삼아풀어놓았다.
나이는여든두 살이고 쉰 살에 영감님을 암으로 잃은 후 혼자 몸으로 삼십이 년을 생선 손질하는 일로 살아왔다고 하셨다. 바다에 나갔던 고깃배가 새벽녘에 포구로 들어와 고기들을 우르르 쏟아내면, 쪼그려 앉아 하나하나 분주하게 손질해서 엮는 일이었다. "손이 다 곱을 만큼 매섭게 춥고 고단했어."
그 말씀을 하실 땐 미간을 찡그리며 손가락 마디가 대나무 옹이처럼 울퉁불퉁한 손가락을 보여주셨다. 한 겨울 얼음을 깨듯 쨍한 새벽공기와 거친 그물에서 힘겹게 떼어내던 물고기들의 비린내가 코끝에 감돌았다.
그렇게 아들만 둘을 키웠는데 장성해서 타지에 살고 할머니는 찻집 바로 옆집에 혼자 사신다고 했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네 시경까지 홀로 화투를 떼며 혼잣말을 하시다 까무룩 잠이 든다고 하셨다.
어두운 방에서 혼잣말을 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적막했다.
"하루가 너무 길고 적적해. "매일 찻집에 나와 맥주를 시켜놓고 아르바이트 학생과 이야기 하는 게 낙이라고 말했다. 그날은 학생이 쉬는 날이라 유일한 손님인 우리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엄지손가락에 흰색 테이프를 칭칭 감은 할머니의 앙상하고 거친 손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무덤의 풀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 손을 한참 동안 잡고 있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놓고 나왔다.
맥주 값을 내드리고 싶었으나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망설였다. 급한 대로 찻집에서 팔고 있는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서 건넸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당부도 함께 얹었다. 할머니의 지루한 일상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기를, 오늘처럼 우연히 만나는 말벗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동안 나눈이야기로 할머니의 지나온 삶을 다 헤아리기는 어려웠다. 그저 삼십 년 너머의 갈피를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할머니와 마신 맥주의 맛을 마음첩 깊숙이 담아두었다.
친정어머니와 비슷한 연배라 그런지 마음속에 작은 돌이 굴러와 덜그럭거린다. 낡고 때 묻은 살림살이를 버리지 않는다고 어머니와 실랑이하던 날들이 생각났다. 쇠심줄에 비길 만큼 질긴 고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골이 나서 며칠씩 전화를 안 드린 적이 있었다. 노인 살림살이는 그냥 있어도 남루하니 제발 좀 버리고 살라며 아픈 말도 서슴지 않았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많이 했던 것도 같다.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썼는지 지나온 날들을 짚어보았다. 처음 본 할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나니, 노인의가장 큰 문제가 외로움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할머니도, 두 분 부모님도 외롭지 않은 노년이기를,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시길 욕심 내본다.
주말이 끝나가는 저녁이면 혹여나 올려나 온종일 기다렸던 자식들의 소식 없는 안부에 긴 한숨으로 돌아누웠을 부모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화도 좀 더 자주 드리고 더 많이 찾아뵈었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열무꽃이 핀 것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신 부모님부터 뵈러 가야겠다. 강구항에서 만난 할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맥주를 마신 이야기도 재미있게 해 드려야지. 잘했다고 등을 토닥여 주실 것 같다.
겨우내 얼었던 흙이 포슬하게 일어나는 봄이면 아무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영덕 강구항에 다시 와야겠다. 큼지막하면서 살이 고소한 박달 대게를 좋아하실 것 같다. 깊어진 주름 사이사이로 웃음꽃이 가득 피어나겠지.
다시 오면 술친구 해드렸던 할머니가 나오셨는지 찻집에도 들러 봐야겠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달빛이 그물처럼 가득 펼쳐진 해변은 바람이 제법 온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