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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안전하지 않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매일노동뉴스 기고

벨라루스는 국제노총(ITUC)이 지난해 선정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나쁜 나라’ 10개국 중 하나이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초대 대통령인 루카셴코 대통령이 1994년부터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위기 속에 러시아 병력을 벨라루스에 배치한 문제, 폴란드 국경으로 난민을 내쫓은 문제, 박수금지법(항의의 의미로 시위대가 손뼉을 치자, 시위대를 체포하고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금지함), 빨간 줄무늬 양말 금지(빨간 줄무늬 양말을 신은 사람을 무단 시위금지법으로 체포함. 흰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는 현재 민주화운동·반정부운동의 상징색으로 여겨짐)로 알려진 대통령이다.



루카셴코를 향한 항의는 끊임없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2020년 여섯 번째 선거에 있었던 부정선거에 대한 큰 저항이 대표적이다. 부정선거와 현 정권에 반대하기 위한 평화시위가 있었다. 정부 개입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독립노조들의 운동도 계속됐다. 독립노조들과는 달리, 현재까지도 벨라루스의 노동조합연맹(FTUB)은 정부 통제를 받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는 해당 노조에 자동으로 가입되며, 노동조합은 조합원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기에 공공부문에서 해고당한 노동자의 해고를 옹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진(Yauheni Dzenisenka)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한 벨라루스의 대학생이었다. 경제를 공부하던 그의 삶은 2020년 부정선거 이후 바뀌었다. 시위에 참여했고, 사람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립노조로 분류되는 한 노조에 가입했다. 대학교는 그를 퇴학시키기 위해 경찰과 협조해 감시하고 압박했다. 벨라루스에서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환경 탓에, 현재는 독일에 머물며 노동운동과 경제정책을 공부하고 있다.


▲ 유진(가운데)이 2020년 9월 벨라루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체포되고 있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노조는 분명한 역할을 했다. 2020년 말, 시민들의 시위는 정부에 의해 완전히 중단됐다. 루카셴코는 노조사무실 압수수색과 심문, 구금, 장기징역형, 집회와 파업 요건을 어렵게 하는 방식을 통해 노조를 탄압했다.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해고되고, 체포되고, 국외로 내몰렸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추방하라는 명령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이 퇴학당했다. 유진이 가입한 노동조합은 학생들과 함께 법원을 상대로 한 항의행동을 추진했다. 자유로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학생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교육 분야 개혁안을 요구하고, 이를 알렸다. 정부는 노동조합 활동을 강하게 통제했지만, 노동조합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다.



유진은 나에게 “안전하지 않은 것에 익숙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됐다. 그동안은 미성년자였기에 구금에 그쳤지만, 이제 그는 벨라루스로 돌아가면 퇴학은 물론 형사 기소될 수 있다는 걱정을 마음에 품고 지낸다. 그는 지난해 3월5일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은 2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노동조합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갑자기 복면을 쓴 사람들이 방에 들이닥쳐 학생들을 모두 체포했다.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 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심문을 받았고, 퇴학당하고 감옥에 갈 거라는 협박을 받았다. 그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로 기숙사에서 경찰서로 끌려가 구금당하기도 했다.



법원도, 경찰도, 대학도 그에게 절망감만을 주었다. 어제 축구장에서 만났던 동료를, 다음날 기사에서 마주했다.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축구선수이자 기자인 그의 동료가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유진의 주변 사람들은 갑자기 체포될 때를 대비해 항상 칫솔과 비누를 들고 다닌다.



미래를 계획할 수 없고, 국내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을 때 국제연대가 그에게 힘이 됐다. 벨라루스의 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그와 그의 동료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해 억압받는 모든 사람이 해방될 수 있길 그는 기대한다. 국제연대와 교류를 통해, 자본과 노동력이 국경 없이 넘나드는 지금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그는 기대한다.



압박감과 절망감이 둘러싼 길에 있는 심정을 묻자 그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벨라루스는 이미 그들의 운동으로 변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특히 지금의 청년들은 소련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적게 받았으며 이들이 주도하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우리’와 ‘우리의 나라’ 미래는 ‘우리의 것’이기에,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 입장에서 나의 미래를 위해 싸운다고 그는 답했다.



그도 한국의 독재 경험을 떠올리고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나 역시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이 자꾸 떠올랐다. 독재부터 노동운동, 평화시위까지.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이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는 지금, 우리의 운동이 벨라루스 노동운동과 맞닿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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