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올린 글들을 새 북으로 옮겼습니다 :)
‘여우가 시집가는 날, 호랑이 장가가는 날’처럼 비가 오다 말다 햇살이 났다 말다 했다. 주룩주룩 뭔가 기운 빠지게 비 오는 그날.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가 점심 무렵,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어왔다.
선배가 말했다.
“점심 잘 먹었어? 오늘 만나자.”
목소리는 이상하게 부드러웠지만 그 안엔 어딘가 불안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오늘 시간이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짧게 웃더니 낮게 말했다.
“시간 되잖아, 만나자.”
나는 약간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아… 선배 깡패예요?”
농담 반, 진담 반 던진 내 말에 그는 무겁게 대꾸했다.
“칼잡이잖아. 톱질도 해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무언가 말을 잇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 그렇게 말하지 마.
전 여자친구도 말투가 딱 그랬어.”
한참의 정적 후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마치 가장 약한 부분을 내보이듯 말했다.
“… 오빠라고 해주면 안 돼?”
그 말에 나는 웃음이 팡 터져버렸다. 웃음인지 체념인지 모를 쓴웃음.
“네, 시간 내볼게요. 오빠.”
⸻
비가 내리던 저녁 우리는 노래방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탬버린을 흔들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한때 그렇게 위험해 보이던 사람이 그 순간엔 어설프고 귀여웠다.
나에게 먼저 선 곡하라 해서 초등시절부터 부르던 박화요비 곡을 불렀다. 내가 부른 박화요비의 노래에 그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생각보다 노래 잘한다. 소름 돋았어.”
Officially Missing You, Too
잠시 후 그는 긱스, 소유 <Officially Missing You, Too>를 부르며 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모르는 노래라 머뭇거리자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가늘게 바꿔
아수라 백작처럼 두 목소리로 장난을 쳤다. 그 어이없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가 부른 다음 노래는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노래가 끝나자 그는 옆에 털썩 앉으며 들릴 듯 안 들릴 듯 혼잣말로 조용히 말했다.
“내 심장을 주고 싶다.”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났다. 오래전 누군가 그 사람도 같은 노래를 불렀고 같은 말을 했었다.
그날의 선배는 한없이 어른이었고 한없이 아이 같았다. 굳이 노래방 사장님이 준 서비스받은 걸 다 쓴다며 별 의미 없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나는 웃었다.
그도 웃었다.
비 내리는 거리로 나왔을 때 공기는 축축했고 그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의 눈빛에는 끝내 닿지 못한 말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아련하게 웃었다. 아쉬워하는 얼굴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