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올린 글들을 새 북으로 옮겼습니다 :)
저녁 11시 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10분 줄게. 당장 주차장으로 내려와.”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카디건만 걸치고 급히 내려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출퇴근 시간이 지난 뒤라 그런지 서늘하고 고요했다.
그가 하얀 셔츠 소매를 걷은 채, 큐빅이 박힌 분홍 리본이 달린 새 차 옆에 서 있었다.
막 일을 마친 듯한 피로가 눈가에 옅게 번져 있었지만, 그 피로가 오히려 그를 더 현실 속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이거, 너 타.”
그가 키를 내밀었다.
“원래 내가 타려고 대기 예약 했는데 오늘 나와서,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손끝이 뜨거워지고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이건 단순한 차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지 못한 모든 말, 건네지 못한 온기, 나를 떠올렸을 수많은 시간들이 한꺼번에 그 안에 실려 있었다.
“선배, 왜요?”
그는 웃지 않았다. 쑥스러운 듯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가 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 보고 싶어서.”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말보다 더 묵직하게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키가 내 마음을 대신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리본에 박힌 큐빅이 조명 아래에서 작게 반짝이는 걸 바라봤다.
차가 아니라,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