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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감 Sep 21. 2023

이번에도 안 되셨어요

엄마가 될 거예요 1


이 글을 발행하고 있는 지금, 나는 난임 병원에 다닌 1년 동안 3번의 인공수정과 3번의 시험관 시술에 실패하였다.



나는 (어쨌든) 실패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만에도 성공해서 당당히 임신확인증을 받고 난임 병원을 졸업하는데, 나는 1년이 넘어가도록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시간이 1년 지났으니 뒤처진 것은 아닐까.


1년 동안의 실패에 지친 탓이었을까 가끔은 아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이 맞는지 그게 아니라면 임신이라는 하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 그저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쿨하게 포기는 못하고 난임 병원을 관성으로 다니는 나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이렇게 나의 아이를 원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사실, 미혼이던 때는 아이 생각이 정말 없었고, 결혼 초만 해도 그냥 둘이 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컸다. 생기면야 감사하게 키우겠지만 굳이 “나의 아이를 꼭 갖고 싶어” 이런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부끄럽게도 나보다 조금 일찍 결혼한 시동생 부부의 임신 소식을 들은 이후였다.


솔직히 말해 동서의 임신 소식을 들은 후부터 조카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크기까지는 나 혼자만 아는 질투도 많이 있었다. 시댁 식구들 아무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지만 시댁에 가면 나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몇 년이 지나 조카가 조금 큰 지금까지 시동생 부부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습을 지켜보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는 예뻤다. 아이를 낳고 싶어졌다.


동서에 대한 질투심을 넘어 내 아이에 대한 궁금함과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조카가 내 품에 안겨도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드는데 내 아이를 안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 그 기분을 너무나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간절한 마음과 다르게 과정은 쉽지 않다. 피검사 후 오는 병원의 전화는 언제나 떨렸다. 간호사의 “임신반응 없으세요. 수치 0.1입니다”라는 그 말은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차수가 올라갈수록 더욱 듣기 힘든 말이 되었다.


차수가 올라갈수록 덤덤할 때는 더 덤덤하게 병원에 갔지만 어느 날은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생리를 해야 다음 차수를 들어가는데 생리 예정일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병원에 갔던 날이다.


시험관 시술 때문에 틀어져 버린 생리 주기도 속상하고, 항상 남편 없이 혼자 다니던 병원인데 그날따라 나만 빼고 모두 부부가 함께 온 모습에도 속상했는데, 하필 그날따라 또 임신에 성공해서 수첩을 받아 가는 부부가 많이 눈에 띄었던 그날. 대기 의자에 앉아있던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세상에 임신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임신이 나의 비임신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병원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본다는 것은 내가 병원을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런 이성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퓨즈가 끊긴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지 모르는 오래 달리기 트랙에 올라와 있는 느낌이다. 나는 여섯 바퀴를 돌았고 몇 바퀴를 더 돌아야 하는지 몰라 막막한데 내 옆 트랙에서 달리는 사람은 이제 한 바퀴를 돌았는데 벌써 끝나는 그런 레이스에 나는 지금 올라와 있다.


이런 생각의 끝엔, 그래도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되긴 하겠지만, 아주 혹시나 되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지나가고 있는 이 순간들이 헛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지난한 시간을 관통하며 단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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