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은 좌우뇌 분리 수술 이후, 우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환자였다.
좌뇌 혹은 우뇌가 기능을 상실하면 질 볼트 테일러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주인공처럼 신기하면서도 때로는 충격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좌뇌와 우뇌가 왜 서로 다른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
척추동물은 복잡한 외부 환경에 적응하면서 좌우뇌가 다르게 발달했다. 좌우뇌 비대칭의 장점은 뇌가 더 많은 구역으로 세분화되어 더욱 정확하게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일의 처리 속도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간의 좌우뇌 비대칭성과 세분화는 다른 종에 비해 월등하게 두드러진다.
언어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경학적 과정을 보면 침팬지는 좌뇌와 우뇌가 모두 활성화되었지만, 인간은 대부분 좌뇌에서만 활성화되었다. 만약 좌뇌와 우뇌가 똑같다면 인간 뇌의 특징인 기능적 세분화는 지금보다 덜 했을 것이고, 따라서 인지, 사고, 반응은 지금의 인간만큼 정확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하나의 정보가 좌뇌와 우뇌로 모두 가면서 여러 경로를 거치는 동안 반응 속도도 느려지면서 지금처럼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뇌에 대한 연구는 많은 부분이 좌뇌에 치우쳤다. 따라서 좌뇌에 대해서는 여러 사실들이 알려졌지만, 우뇌는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다. 이는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기능을 하는 언어중추가 대부분의 경우에 좌뇌에 있기 때문이다. 좌뇌에 손상이 생기면 언어중추를 통해 부위에 따른 증상을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반면에 우뇌에는 의사소통할 수 있는 언어중추가 없기에 손상 부위에 따른 증상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좌뇌에 위치한 언어 중추는 19세기 프랑스 의사 폴 브로카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브로카는 특이한 언어 장애를 지닌 환자를 진찰했다. 그 환자는 듣는 말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탕’이었다. 사후에 브로카가 그의 뇌를 해부했고, 뇌 한 부분에 손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그 부위를 브로카 영역이라고 하고, 이와 관련된 실어증을 브로카 실어증이라고 한다.
브로카 영역 말고도, 베르니케 영역이라는 언어중추의 또 다른 중요 부위가 있다. 이 부위에 병변이 생기면 반대 증상을 보인다. 상대방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문법에 맞고 적절한 단어를 이용해 어느 정도 유창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한국어 초보자 외국인과 한국말로 대화할 때 그가 혼란스러운 대답을 하는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이를 베르니케 실어증이라고 한다.
신경학자 케빈 넬슨의 저서,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소개된 한 사례는 좌우뇌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사례에 등장하는 폴은 좌우뇌 분리 수술 이후, 우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환자였다. 일반적으로 좌우뇌 분리 수술을 하면 우뇌는 언어 능력이 없고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존재하던 좌뇌와의 연결통로도 끊기면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침묵하게 된다.
그러나 폴의 경우는 예외였다. 폴은 질문을 듣고 철자 카드를 손으로 움직이는 방법으로 연구진과 의사소통을 했다. 그 연구에 따르면 폴의 우뇌는 전쟁, 섹스, 폴의 어머니, 폴 자신에 대해 좌뇌보다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의 우뇌는 자동차 경주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좌뇌는 제도공이 되기를 원했다. 또한 우뇌는 마약을 좋아했지만, 좌뇌는 매우 싫어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온전히 하나였던 뇌가 좌우로 분리되면, 각 반구는 동일한 경험을 두고 느끼는 바가 다르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우뇌 각 반구가 의식이 서로 다른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는 셈이다.
좌우뇌 분리 수술은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는 괴상하고 심각한 증상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외계인 손 증후군 환자의 양 손발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한 손으로는 단추를 채우면서 다른 손으로는 지퍼를 내리는 식이다. 이 수술을 받은 한 소년은 바지를 입을 때 한 손으로는 바지를 올리지만 다른 손으로는 바지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양 쪽 뇌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 간의 의견 차이가 외부로 드러나는 셈이다. 다행히 이 증후군은 대부분 몇 주안에 사라진다고 한다.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좌우뇌가 다시 협력을 시작하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 뇌의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좌우뇌가 분리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다른 실험에서 대상자에게 좌뇌에는 의자, 우뇌에는 두꺼비를 보여주고, 무엇을 봤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상자는 의자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이때 본 것을 왼손으로 그리라고 하니 두꺼비를 그렸다. 언어는 좌뇌가 담당하므로 좌뇌가 본 것 만을 대답했고, 왼 손은 우뇌가 담당하므로 우뇌의 명령을 따랐기에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좌뇌는 패턴 인식에 관여한다. 빨강, 노랑, 파랑이 반복되면 노랑 다음에 파랑이 올 것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은 좌뇌 덕분이다. 패턴 인식은 생존을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면 곧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가까이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곧 맹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패턴 인식은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좌뇌는 추리적, 논리적 사고에도 능하다. 필통이 연필보다 길고 연필이 지우개보다 길다면, 필통이 지우개보다 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 준다.
좌뇌가 언어를 담당하는 이유도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언어는 문법이라는 일정한 규칙과 패턴을 따르기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언어는 좌뇌의 몫이다. 실제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도록 해주는 베르니케 영역이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도록 해주는 브로카 영역이 오른손잡이의 90퍼센트와 왼손잡이의 60퍼센트에서 좌뇌에 위치한다. 베르니케 영역은 좌측 측두엽의 상측두이랑 뒤쪽에 위치하고 브로카 영역은 좌측 전두엽의 전운동영역 아래쪽에 위치한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기 위한 모든 기능이 좌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듣고 말하는 기능은 좌뇌에 있지만, 상대방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방의 음높이, 톤, 음색, 은유 등 더 많은 정보를 알아야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일은 우뇌가 담당한다.
좌뇌의 베르니케 영역에 해당하는 우뇌 부위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를 해석하는 일을 한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상대방의 언성이 높아지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 상대방이 “참! 잘했어!”라고 했을 때 이 말이 정말 나를 칭찬하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뇌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좌뇌의 브로카 영역에 해당하는 우뇌 부위는 말을 할 때 억양이나 감정적 톤을 싣는 일을 한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억양이 사라져서 단조롭고 아무런 감흥이 없는 말투를 띠게 된다. 화창한 날에 오색이 알록달록한 산을 보고 감동하면서 ‘정말 장관이구나’라고 말하지만, 정작 말투는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는 로봇 말투로 내뱉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도 우뇌를 깨우기 위해 노래를 이용했다. 그는 옷을 입거나 식사를 하는 것을 비롯하여 일상의 모든 활동을 노래를 부르며 했는데, 이상하게도 노래가 방해를 받아 멈추면 그의 행동도 같이 멈췄다.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노래에 포함되어 있는 음색이나 음의 높낮이 같은 노래의 비언어적 요소들을 이용하여 우뇌를 자극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은 이를 이용해 피폐해진 우뇌에 약간의 활기를 불어넣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Photo by Marius Masala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