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작가가 되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야기를 만들어 글로 옮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안에서 맏이였던 나는 어린 동생들과 이야기 게임을 하면서 어른들 대신 애들을 돌보곤 했다.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친동생을 비롯하여, 명절이면 줄줄이 따라오던 어린 사촌들까지. 동생들이 던져주는 단어에 맞춰(밀가루, 변비 등 기상천외한 단어들이 나오곤 했다)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곤 했는데, 키득키득 웃는 모습에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동생들의 기억 속에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나와 어린 동생들은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그만둔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끄적이며 글은 계속 쓰면서 살아왔다. 다만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필요한 글을 썼다는 것이 어릴 적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예상 외의 전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었다. 그런데 유치하다, 재미없다, 그냥 그래 등의 차가운 반응이 더 많았고 결국 나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실력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리고 쉬운 길을 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이야기, 좋은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편했다. 작문법을 공부해 수려한 문장을 썼고,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듭하여 의도를 잘 파악한 글을 써냈다. 그 덕분에 백일장에서 상을 타는 글, 대학교 수시전형에 합격하는 글, 회사 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쓴 글이 나쁜 글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글들로 득을 본 일이 더 많았다. 다만 내게 있어 이 글들은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남들의 의견에 눈치를 보며 써 내려간 글들이었다. 이런 글들이 쌓일 때마다, 알 수 없는 부담감과 답답함이 문장을 써 내려가는 손 위로 내려 앉았다. 결국 나는 글에서 멀어졌고, 3년이 지났다.
그러던 중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건, 불과 얼마 전에 내게 일어난 아주 사소한 계기 때문이다. 잔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에 돌 하나를 던진다는 심정으로, 한 아이돌의 팬클럽에 가입했다. 언제 콘서트나 한 번 가보자라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덕질’이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팬덤 문화는 상상이상으로 대단했다. 다들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 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학창시절 덕질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재미없는 청춘을 보낸 한 사람으로서 20대의 끝자락에 펼쳐진 팬덤의 세계는 별세계가 따로 없었다. 초 단위로 올라오는 포스팅, 응원 메시지, 아티스트를 위한 각종 이벤트 등. 팬들의 기대와 관심은 매일 쉴 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열정과 애정에 부응해야 하는 아티스트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무서울까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티스트의 새로운 앨범이 나왔다. 새 앨범에 대한 인터뷰 속 아티스트는 자신감 있게 스스로의 철학과 생각을 말하고 있었고, 팬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주변의 기대나 반응이 주는 부담감과 불안함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도록,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을까. 그 치열함과 노력이 있기에 저렇게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 아티스트의 진심을 알아주는 팬들도 멋있어 보였다. 가볍게만 생각했던 팬덤 문화가, 생각보다 꽤나 멋진 것임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마음이 끓는 느낌이 들었다. 유치하고 재미없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고. 치열하게 노력해서 나의 이야기를 쓰자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은 만한 이야기를 쓸 재능이, 내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이 이야기를 솔직하게 받아들여주는 팬이 적어도 1명은 생기지 않을까. 그걸로 글을 다시 쓸 이유는 충분했다.
이 글을 시작으로, 단 1명이라도 나의 글, 나의 이야기를 알아주는 팬이 생긴다면, 올해의 봄은 꽤나 멋진 봄이 될 듯싶다.
"지금 새우잠 자더라도 꿈은 고래 답게"
- 방탄소년단 <Whalien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