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폴>, <석류의 빛깔>을 보고
작년 겨울 CGV에서 재개봉했던 <더 폴 : 디렉터스 컷>은 아직도 선명하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현실과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넓은 사막 한가운데 주인공과 전사들이 서 있는 장면들은 마치 풍경을 위해 인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이 아니라, 그 배경의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한 스케일 모델 같은 느낌.
영화가 아니라 촬영지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순간이 많았다. 화면에 비친 장소
가 CG로 만든 판타지가 아니라, 감독이 비행기 값과 제작비를 자기 돈으로 쏟아 넣고 돌아다니며 직접 찾은 곳들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나니 더 이상하게 벅찼다. 촬영팀 모두 같은 이코노미, 같은 호텔로 움직이며 찍었다는 뒷이야기까지 들으니, 저 화려함이 결국 창작자의 집착이 만든 결과물이었다는 점에서 더 강렬하게 남았다. 이동진 유튜브의 타셈싱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하나의 질문에도 신나 하며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의 모습에 자신의 작업에 얼마큼 진심이었고, 거기서 나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https://youtu.be/2x0 CwLu1_CM? si=-SsYsnA8 FciU-ob8
사실 석류의 빛깔은 cgv의 바이럴에 완벽히 당했다. '더 폴 감독이 영감을 받은!'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색채가 짙은 장면들을 예고편으로 보여줬다. 나는 당연히 작년의 좋은 기억이 있기에 재개봉일을 기다렸고, 재개봉 날짜에 맞춰 퇴근 후 신촌 아트레온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영화를 보기 전 작품에 대해 찾아보지 않고 가는 편인데, 이 영화는 예외였어야 했다.)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유독 힘들었다. 퇴근 후 피곤함 때문인지, 아니면 급하게 먹은 돈가스와 영화 중간에 마신 콜라와 감자칩 때문인지 중간중간 졸았다. 이야기 흐름을 따라간다기보다는, 시 같은 텍스트가 몇 문장 나오고, 이어서 의식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노래와 반복적 몸짓과 정지된 응시가 이어진다. 대부분이 의식에 가까운 행위들을 하기에 반복적인 행동과 노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장면들이 굉장히 특색 있고, 1969년 개봉작임을 감안했을 때 의상, 분장, 촬영 등이 인상 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어떤 이야기의 흐름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리뷰들을 읽었다. 같은 영화를 본 게 맞나 싶은 수준의 해석과 인문학적 지식들이 함유된 리뷰들이 많았다. 시대적 배경, 소련의 탄압, 시인의 삶… 그런 맥락을 알고 봤다면 아마 지금의 감상보다는 나았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어려웠을 것이다. GV 혹은 리뷰를 보며 한 장면씩 짚어주며 해석 영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석류의 빛깔과 더 폴 모두 잔잔한 내레이션, 혹은 대사와 함께 인상적인 이미지들이 펼쳐지고,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정지하듯이 카메라 혹은 다른 곳을 응시한다. 그 뒤 몇 초간의 정적이 이어지며 다시 전개된다.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고해상도의 동화책이 움직이는 것처럼 내게 느껴졌다. 조용한 영화관에서 내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모두가 몰입하여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