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이라는 감옥

일론머스크의 시간관리법

by 베러윤
하, 오늘도 하지 못했어. 역시 나는


잠들기 전, 혹은 눈을 뜨고 하루를 보내면서 나도 모르게 내뱉는 이 짧은 탄식이 요즘 부적 잦아졌다. 새벽 5시 기상, 새벽 회사 셔틀, 1주일에 3-4번의 야근, 다시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지나 집으로 귀가. 씻고 나면 매일 밤 10시를 넘긴다. 하나 둘, 스스로 해야만 한다고 정해진 일들을 끝내놓으면 어느덧 밤 12시다. 거기다 요즘은 밤새 앓는 노견 곁을 지키다 보니 최근 잠을 제대로 자본적이 없다. 하지만 육체적인 힘듦보다도, 사이사이의 남은 틈을 유튜브 숏츠나, 멍 때리며 보내다 보면 죄책감이 더해져 하루의 마감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머릿속에는 늘 해야 할 수많은 리스트가 있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 해야 할 것들, 퇴근 후 지하철에서부터 시작하는 저녁 이후에 해야 할 것들, 자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그 리스트를 모두 완수해야만 비로소 '오늘 하루 제대로 잘 살았다'는 안도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근데, 현실적으로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하룻 속에서 모든 걸 다 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굉장히 부담으로 다가온 요즘이었다.


사실 이렇게 조급해진 이유가 있다. 정년은 아직 멀게 느껴지지만, 회사의 연차가 쌓이다 보니 회사가 끝까지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라는 사실이 점점 선명하게 다가왔다. 작년 말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된 회사에서의 희망퇴직은 그걸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 줬다. 나는 아직 미혼이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혹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언젠가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무게감. 그 불안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고, 조급함은 해야 할 리스트를 점점 더 길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갓생'이라는 감옥에 가뒀다.




이번 주 유독 너무 피곤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회사에서 일하는 순간순간, 귀갓길도, 잠드는 그 순간까지. 그러다 하루는 어느 때처럼 아침에 해야 할 리스트들을 해치우러 회사 카페로 향했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힘이 드는데 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노트를 펼쳐놓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 그냥 유튜브를 켰다.


그런데 우연인지, '일론 머스크가 사용하는 시간 관리법'이라는 영상 하나가 제일 상단에 떠있었고, 별생각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상 내용의 요약은 다음과 같았다.


머스크는 할 일이 아니라 '시간'을 먼저 설계한다.
단순히 바쁘게 사는 게 아니라, 특정 시간에 무엇을 할지 경계를 명확히 긋는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1. 먼저 머릿속에 있는 모든 할 일을 종이에 전부 쏟아내는 것
2. 그중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3가지를 추리는 것
3. 그 3가지를 구체적인 시간에 타임박스로 칸을 만들어 가두는 것.

짧은 영상을 보고 난 후, 갑자기 내 머릿속 투두 리스트들이 떠올랐다.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갓생이라는 이름 위에 잔뜩 해야 할 리스트들을 올려놓고, 그 무게에 짓눌려 헉헉 거리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였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 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었구나.


나는 곧장 노트를 펴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수십 가지 리스트를 쏟아냈다. 일론머스크가 하는 브레인 덤프였다. 써놓고 보니, 지금 상황에서는 욕심인 것들도 꽤 많았다. 미래가 두렵다는 이유로 나를 너무 몰아붙였던 게 아닌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 모든 걸 매일 완벽히 해내려 했으니,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을 수밖에.


그다음, 욕심을 내려놓고 오늘 꼭 해야 하는 빅 3을 꼽아놓아, 오늘 하루의 시간표 중 해야 할 타임이 일들을 가두었다. 타임박스를 기록하고 그 시간을 보내니, 오히려 모든 것을 해낼 때보다 집중도 잘되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뇌가 숨을 쉬는 느낌이랄까?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할 수 없는 수많가지 리스트들을 나는 늘 꽉 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 숏츠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틈에도 리스트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가방 속에 책과 노트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냥 커피를 마셨다. 그날의 해야 할 일 한 가지는, 잠시의 여유였기 때문이다.


완벽한 갓생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은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박스들을 해내는 것일지도. 조금은 천천히, 숨을 좀 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