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만이 줄 수 있는 것들

상해에서 만난, 떡집 언니

by 베러윤

새벽 5시.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향긋한 모닝커피와 내 아침을 깨워주는 상큼한 입맞춤


어릴 때 좋아했던 젝스키스 오빠들의 노래가 알람으로 흘러나온다. 기분 좋게 눈을 뜨고 주섬주섬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출근 준비를 끝낸 후. 잠시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강아지가 잘 자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한 뒤 집을 나선다.




문득 오늘 새벽길을 나서다가 십여 년 전 상해에서 만났던 한 언니가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상해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그 언니는 30대 중후반이었다. 원래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했었는데, 그 직업을 그만두고 상해로 왔다고 했다. 그 이유는 바로, 한인 떡집에서 떡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두고 낯선 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 떡집 직원이라니.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너무 연관성이 없어 보였고, 솔직히 이유가 좀 당황스럽기는 했다. 언니는 매일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 떡을 팔기 위해서는 새벽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니, 새벽 다섯 시도 힘든데 두세 시에 매일 일어나는 거 너무 힘들지 않아요?"


언젠가 그 언니와 조금 친해졌을 때,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언니는 이렇게 답했다.


"전혀, 솔직히 나 한국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해."


그때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속으로 그저 '참 이상한 언니네'라고 넘겼었다.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나 떡을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사람, 왜일까?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 언니 나이를 넘길 즈음, 나 역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그당시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한참을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나의 모습이 안쓰러워보였는지 친한 지인이 직장인 모임을 소개시켜줬다. 매주 60명이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인도 있었고, 프리랜서도 있었고, 사업가도 있었다. 그리고 일년동안 모임을 통해 열심히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들을 보며, 감정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상황을 탓하지 말고, 다시 한번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을 100일 앞둔 9월, 그곳의 사람들과 새벽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웠던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새벽 모임에 따라붙었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 모임이 벌써 2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고요한 시간에 회사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채우는 시간.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도 없는 시간. 그 작은 시간은 아주 작은 성취이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며, 내가 단단해 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만 같았다. 물론 내 추측일 수도 있지만, 그 언니에게도 새벽은 이런 시간 아니었을까?


성취가 쌓이는 시간,
온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자신을 다시 세워준 시간,
나를 움직이게 하는 시간


새벽에 일어나 떡을 만들며 그 언니는 자기 삶을 다시 빚어가고 있었던 것 아닐까?


매일이 아니어도 좋다.

가끔은 새벽에 한 번 일어나 보길 바란다.


그러면 그 속에서, 어쩌면 내 자신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