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감성 더하기
결혼하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 구글창에 "결혼"만 검색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23.3.16 서울신문) 혼인 건수, 4년째 역대 최저... 초혼연령은 男 34세
(2023.8.29 SBS뉴스)’결혼지옥’-‘육아 고난’이라더니... 최근 나온 충격적인 통계
(2022.11.16 연합뉴스) 국민 절반은 '결혼 안 해도 된다'... 안 하는 이유 1위 '돈 없어서'
대충만 훑어봐도 부정적 뉘앙스의 기사들이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결혼이라는 것은 “지옥”, “고난”, “역대 최저”와 같은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되었다.
내가 처음 결혼을 부정적인 느낌으로 접했던 때는 2011년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경쟁이 심한 사회의 단면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단어 중 하나로 “3포(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있었는데 얼마 후 3포는 5포 → N포로 바뀌었고,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는 욕구까지 포기한 세상을 각종 언론에서 앞다투어 비판했다.
시간이 흐르며 바야흐로 결혼하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이는 각종 통계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혼인 건수는 전체 인구(*연앙인구를 기준으로 하여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에 대비 분명한 감소 추세다.
확실히 무엇인가 많은 요인이 청년들의 결혼 결심을 가로막고 있다. 이에 국내외 사회학자들이 다양한 원인을 들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연구결과나 국내에 적용할 만한 해외 선진 사례가 없어 매년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들만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혹시 결혼을 하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청년들이 결혼을 망설이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봤다. 30년 전 “당연히” 했던 것들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해답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우리 세대는 너무 불안하기도 하다. 사실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다 포기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만과 체념이 절반씩은 섞인 칭얼거림일 테다. 우린 너무 불안해서 다른 불안과 만나고 싶지 않다. 불안정한 상태의 두 물질이 만났을 때, 안정한 상태가 될지, 불안정안 상태가 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결혼이라는 건 안정을 찾는 일이어야 하는데, 시작하기 전부터 불안으로 가득하다.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원시인은 가질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적게 가지고도 행복함을 쉽게 느낀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려서부터 우린 뭐든 가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다고 배우는 것과 너무 상반된 현실이지 않은가. 사실 가질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사회가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당신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만 이야기할 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것을 다 가질 수 없는 우리는 매일 자신의 탓을 하며- 선택의 기로에서 이번엔 또 무얼 포기해야 할지 아쉬워하며, 잰걸음으로 갈팡질팡인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려면 눈에 보이는 안정감이 필요하다. 안전을 보장해 줄 적당한 집이 필요하고, 한 번뿐인 청혼에는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사치품이 필요하다. 한 번뿐인 결혼식은 내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줄 정도로는 화려해야 하며, 대부분 부모님 앞으로 도착한 수많은 축하 화환은 그 안정감을 대변해 주듯 입구에 주욱 늘어선다. 그렇게 점차 모든 조건과 배경이 완성되는 것처럼 보이면 그제야 내 노력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게 해 준 것 같은 일말의, 잠깐의, 시원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계속해서 루소의 말을 빌자면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한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거나, 원하는 것을 줄이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다고 웅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어쩌면 희망을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린 너무 오랜 시간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고 배워왔기에, 판매되는 희망이라도 사서 가져야만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것 같다.
청년들에게 그 모든 불안을 잠재울 만큼 안정적인 희망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가진 것을 내놓아 새로운 안정감을 만들기에 벅찬 현실도 전부 그들을 “포기”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청년들에게 결혼은 내가 현재 쥐고 있는 수많은 선택권을(미래에 가질 어떤 좋은 것을) 포기할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가 필요한 거사가 되어버린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