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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Sep 25. 2024

딸의 남자친구가 우리 집에 왔다.

결혼 허락인가 통보인가

 딸이 아마도 내년 하반기쯤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남자친구가 찾아뵙고 싶다고 하니 언제 오면 좋겠느냐고 딸이 물었다. 공휴일에 오면 맛있는 걸 해주겠다고 했고, 지난 6월 현충일에 딸과 딸의 남자친구가 우리 집에 왔다.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 오라고 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자랑을 하려는 마음은 아니었고 그저 집에서 먹어보긴 조금 손이 가는 이탈리안 코스 요리를 준비했다.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날 전처리 해두었던 재료들을 꺼내어 천천히 내가는 시간을 안배해 가며 세심하게 음식을 요리했다. 전채요리로 광어카르파초를 만들어 차게 넣어 두었고 해감해 놓은 조개와 대구살로 찜을 하려고 화이트와인으로 육수도 만들어 놓았다. 완두콩 감자 뇨끼를 을리브 오일에 볶기 전 감자뇨끼를 구워 놓고 안심 스테이크는 시즈닝 하여 랩을 씌워 놓고 가니쉬로 곁들일 감자, 당근은 동글동글하게 오려 삶아 놓고 딸이 좋아하는 버섯, 아스파라거스도  꺼내 놓았다. 만반의 준비 완료. 이제 아이들만 오면 된다.

 나는 요리에 한창이었고 남편은 청소를 했다. 남편은 첫 만남이어서인지 무심한 척했지만 조금 설레거나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실과 화장실 청소를 마친 남편이 식탁 차리는 것을 도왔다. 그는 요리엔 소질이 없어서 평상시에도 청소와 서빙을 담당하곤 했기 때문에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둘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30년 전에 올렸던 혼인미사 이야기까지 나왔고 둘은 살포시 추억에 젖었다. '이런 날이 오다니.....'


 딸에게서 톡이 왔다. 길이 막혀서 조금 늦겠다고 했다. 길 막힐 걸 예상해서 미리 나왔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12시에 맞추겠다던 시간은 1시 이후가 되고 말았다. 스테이크를 굽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딸이 둘이 나란히 차 안에 앉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차 안에서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며 애교를 날렸다. 늦는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미 한 번 만났던 터라 익숙한 청년의 얼굴을 보며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어! 뭐야, 티를 입고 있네?"

남편의 말에 나는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에 찍힌 딸의 남자 친구가 흰 티셔츠 차림이었다. 남편의 표정이 당황스러워 보였다.

"정장에 넥타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셔츠 정도는 입고 오는 것이 예의 아냐?"  

남편의 실망에 공연히 당혹스러웠다.

"여보, 이 친구가 더워를 심하게 타는 모양이야. 그리고 겉치레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선입견은 우리 시대로 끝내자. 공연히 평소에 생전 입지도 않는 옷을 차려입고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안절부절못하면 우리까지 불편하잖아요? 그냥 일단 딸 친구 우리 집에 놀러 오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맞아주자."

남편이 만나기도 전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질까 봐 애써 그를 변호하는 나의 마음은 이미 그 친구에게 기울어 있었던 모양이다.


 1시가 훌쩍 넘어 집에 온 딸과 딸의 남자친구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일단은 반갑게 맞아들이는 남편의 선입견을 날리고도 남도록 청년은 사진과 달리 검정 재킷을 입고 손에는 비단 보자기로 곱게 싼 한우 세트를 들고 있었다. 조금은 긴장한 네 사람의 모습이 순간 재미있었다.

"덥고 불편한데 재킷 벗어서 이리 줘."

남편이 선뜻 먼저 말하며 청년을 자리에 앉게 했다. 시원하고 가벼운 음료를 내고 잠시 인사를 나누는데 딸이 쉬지 않고 남자 친구를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딸은 부드럽고 세심하게 그에게 묻고 배려하였다.

'저리 좋을까.......'

0.1초였지만 질투가 났다. 청년은 예의 바르고 부드럽게 그러나 또박또박 대답도 잘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태도로 금세 남편의 마음을 샀다.

 

광어 카르파초와 하몽 감자 구이


배가 고프다는 딸과 함께 화이트 와인과 광어 카르파초, 그리고 하몽감자를 내갔다. 청년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남편은 많이 실망했다.  

"사위 생기면 한 잔 하면서 대화하는 로망이 있었는데 말이야"

남편의 말에 딸은 '운전할 사람 한 사람은 있으면 좋지 뭘 그래요?'라고 편을 들었다.

"걱정 마세요. 술 안 마시고도 끝까지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말에 남편이 수긍했다. 연신 맛있다는 젊은 커플을 보니 기뻤고 서로 자연스럽게 친밀하게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았다. 우리는 각자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 할머니들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나는 대구찜을 내갔다. 풍미가 가득한 생선 요리도 잘 먹는 청년이 기특했다. 청년은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구찜에 감탄하며 레시피를 묻기도 했다.

 

스페인식 대구찜

 딸은 이미 많이 먹어 본 음식이면서도 덩달아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했고 와인도 제법 마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음식을 즐기는 손님들 덕분에 신이 났다. 음식 하는 사람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를 받는 모양이다.  남편과 청년은 제법 대화를 잘 이어나가고 있었고 나는 안심 스테이크를 굽고 레스팅을 잠시 한 후 레드 와인과 함께 내놓았다. 나는 바짝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스테이크는 전문 레스토랑 못지않게 잘 구워졌다.

안심 스테이크
완두콩 감자 뇨끼

청년은 연신 감탄하며 '자주 놀러 와도 되나요'라고 물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청년은 콜라를, 우리는 와인으로 서로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건배를 했고 남편이 불쑥 물었다.

"결혼 허락받으러 왔나, 아니면 결혼 통보하러 왔나?"

순간 딸과 나는 당황했지만 청년은 '물론 결혼 허락받으러 왔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내년 10월 아니면 11월에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실 거죠?"

했다. 남편은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부의 결혼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어주기도 하고 자신들의 결혼 계획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청년이 남편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좋은 음식을 즐겁게 먹고 모두 기분이 좋아져서 다 함께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로 나들이를 나갔다. 휴일이었고 날씨도 좋았다. 비록 해무 때문에 시계는 좋지 않았지만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강화 해안 일주 도로변의 산 꼭대기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청년의 비전을 듣는 그 아름다운 시간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강화 양도면 해안도로 가까운 산 꼭대기에 지인의 카페 [칼럼]이 우리 가족의 단골 카페이다. 바다와 섬 뷰가 시원하다. 지난 4월 벚꽃 시즌에 찍은 사진.

 딸의 남자 친구가 우리 집에 왔고 내 딸과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나의 결혼 생활도 30년 동안 진행 중이고 여전히 연속 선상에 있으며 함께 동반하는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늘 고민하고 좁아지려는 마음을 확장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나에게, 자식이 결혼하겠다고 허락을 해 달라고 한다는 것에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 나도 절반 정도밖에 살아 보지 않아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나도 답을 모르는 아주 어려운 난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살짝 들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서울로 되돌아가고 남편과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며 내가 그랬다.

"생각보다 딸이 쉬지 않고 제 남자친구를 살피고 배려하는 모습에 난 의외였어. 저 아이가 사실 자아가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싶더라고. 그렇게도 좋을까?"

"제 엄마 하는 거 30년을 보고 자랐잖아. 어디 가나?"

하며 남편은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는 듯 웃었다. 딸은 엄마 보고 자라고 아들은 아빠 보고 자란다고 했다. '우리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훌륭한 남자로 컸겠다.'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하며 오늘의 흡족했던 만남을 곱게 접에 간직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결혼 생활은 이것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만나는 순간 호감을 가졌고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졌고 함께 하고 싶다는 열정과 서로에게 좋은 삶을 나누고 싶다는 생으로 의기투합하여 결혼했다. 그리고 예쁜 두 딸을 낳았을 때 행복했고 삶에 대한 열정이 날로 솟았으며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와 힘을 주고받으며 30 년 동안 큰 위기도 함께, 큰 기쁨과 행복도 함께 나누며 다툼 없이 살아왔다. 30 주년을 맞은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 중간고사 결과는 만점은 아니지만 우수했다고 생각한다. 너희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타인인 엄마 아빠가 무어라 왈가왈부하랴, 그저 너희 두 사람의 결합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협조하며 너희 삶을 1열에서 관전하는 팬클럽 1호 자리를 갖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두 사람은 이제 둘이서 해결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두 사람 중 누구도 낙오되거나 소외되거나 힘겹고 거친 시간들 고난의 시간에 열외 되어서도 안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희생되어서도 안된다. 다툼이 날 경우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 어떤 다툼이라도 무기력하게 침묵해서도 안된다. 또한 모든 공로에서 제외되어서도 안된다. 아빠는 30년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에서 가장 먼저 그렇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전적으로 나를 내조해 준 아내에게 가장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았더니 중간고사 점수가 우수로 나오더라. 큰 재산을 모을 결심을 했다면 치러야 할 대가도 크다. 분명 돈이라는 목적의 과정에는 어떤 희생이 뒤따르곤 한다. 그 희생이 가족이어서도 안되고 자신이어서도 안된다. 열정을 다하되 목숨을 걸진 말아라. 가장 소중한 것이 '너와 나'이어야 한다. 서로에게만 집중하거라.


 딸의 결혼에 대해 내가 있는 말은 이 정도다. 이제부터 딸의 남자친구를 예비 사위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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