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 scusi
"부오노!"
묵었던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반쯤 남긴 티라미수 접시를 내놓으며 내가 말했을 때, 서빙을 했던 뚱뚱한 이탈리안 아저씨가 고개를 저으며 '논 부오노'라고 말하며 내가 남긴 디저트를 가리켰다. '소노 피엔노'라고 말하며 나는 미안한 미소와 함께 배를 만졌다. 그가 자신의 커다란 배를 가리켰다가 내 배를 가리키며 손사래를 쳤다. 그와 나는 크게 웃으며 악수를 했다.
이탈리어 출발 몇 달 전부터 퇴근길에 이탈리아어 회화를 반복하여 들으며 다녔다. 인사말과 간단한 생활 언어였다. 휴대폰 번역기가 있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언어는 그 나라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외국인이 우리에게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건넬 때 우리는 얼마나 반가운가. 나의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던 일본에 가기 전 몇 개월 동안 [*몬일본어 회화]를 공부하고 갔던 것은 그 시절이 번역기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혹시 길을 잃고 일행과 떨어졌을 경우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땐 딱히 공부한 일본어를 써먹을 일은 없었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그렇게 외국 여행 준비와 함께 그 나라의 공용 언어를 연습하는 일이 내겐 즐거움이었기 때문에 신문물인 번역기를 사용하는 연습도 하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회화를 연습하는 일이 즐거웠다. 비루한 이탈리아어를 내가 말해도 그들은 반가워하며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고 2시간마다 의무적으로 운행을 쉬어야 하는 탓에 들르는 이탈리아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순서를 기다려 '프레고'라고 말하는 직원에게 '페르 파보레'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발사믹 식초를 뿌려 먹으니 좀 먹을만하다는 걸 알게 된 일행들의 부탁으로 '미스쿠지, 아체토 발사미꼬 페르 파보레'라고 대신 부탁해 주거나 탄산이 든 물을 잘못 고른 일행을 대신하여 '나뚜랄레'로 바꾸는 것을 도와주었던 일, 이탈리아 공항에서 '라 벨라'라고 항공사 여직원을 기분 좋게 만들어서 좌석 등받이를 한껏 뒤로 젖혀도 되는 통로 옆 자리를 배정받는 신나는 일도 있었다.
우리가 이탈리아를 가는 방법으로 두바이를 경유하였는데 좌석이 나란히 세 개 붙은 자리에 남편과 나 그리고 명품 브랜드의 운동화와 콩알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젊은 아랍 여성이 함께 앉았다. 어색한 시간이 몇 시간 흐르고 기내식이 배식되었다. 남편과 나는 치킨을 주문했고 두바이 여성은 소고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그 여성이 '이쑤시개'를 찾았다. 하지만 수저집 안에 그것은 없었다.
"아! 나 있어!"
남편이 갑자기 외투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치과적으로 항상 불편함이 있는 남편은 치간칫솔과 이쑤시개등을 작은 케이스에 갖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 여성이 반가워하며 이쑤시개를 하나 집어 들었다.
"텐 달러!"
남편의 말에 웃음이 터졌고 갑자기 우리는 흥겹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바이에 도착했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Is it right, 인샬라?"
순간 그녀의 눈이 환하게 빛나고 웃음이 가득한 그녀에게 내가 '인샬라'라고 했고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두바이에 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두바이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 이스라엘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 일행이 앉아있는 자리에 와서 앉아도 되느냐고 묻더니 영어 할 줄 아느냐 물었다. 조금 한다고 하자 한국 가는 비행기 타는 곳 맞느냐 물었다. 탑승권을 확인해 주고 맞다고 하니 한국으로 17명이 관광 목적 여행을 가는 길이라고 했다. 77세와 88세라는 그 정정하신 이스라엘 할머니들이 한국이 남북으로 갈려 오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냐 물으며 '미친 거 아냐'라고 하는 말에 살짝 열받은 내가 우리는 'truce war'지만 너희는 'during the war' 아니냐, 한국 사람들은 이스라엘 무서워서 못 간다.라고 했다. 씁쓸했지만 어쨌든 탑승이 시작되어 줄을 서서 걸어가며 내가 이스라엘 할머니에게 '당신의 여행에 샬롬'을 빌어 주었다. 깜짝 놀라며 감동한 할머니가 고마워하고 기뻐하며 나를 껴안았다.
언어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상대방과의 가장 빠르고 긴밀하게 사이를 좁히는 수단이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그 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초급 언어라도 일부러 공부하겠다는 관심은 몇 년 전 친정 자매들과 시내의 한 카레전문점을 갔던 경험도 한몫을 했다. 카레 전문점답게 인도풍의 인테리어와 음악이 흐르는 음식점에 들어서면서 먼저 와서 앉아 있던 나의 자매들에게 장난스럽게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음식과 함께 주문하지 않은 '라씨'가 인원수대로 나왔다. 서버스인가 보다 하며 맛을 보았다. 계산을 할 때 주방에서 네팔에서 왔다는 사장님이 나왔다.
"아까 누가 나마스테 했어요?"
능숙한 한국어로 묻는 사장님에게 내가 손을 들었다.
"인도 음식 먹으러 왔으니 당연히 인도말로 인사해야죠"
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사장님은 '고맙다'라고 했다. 고맙기까지 할 일일까? 반가웠고 알아주는 기분이 들어 기뻤다고 하는 그 다정한 네팔인을 보며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아주는 외국인이 얼마나 반가울까 생각을 했었다. 언어는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깊은 감명을 받았던 그 사건을 계기로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번역기는 날로 발달하여 나 역시도 이탈리아어 포스터나 메뉴판에 번역기를 들이대기는 한다. 그러나 그 나라의 언어에는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와 일상이 녹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는 나라의 최소한의 말을 마음에 품고 간다. 그리고 현지인들과 소소하게 교류하며 그들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여행은 구경이 아닌 체험이 되고 멀고 낯선 인종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