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얄밉군
학급을 맡아 운영을 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꾀 부리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 때 '꾀'란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는데 자기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은근한 애교를 부리며 슬며시 넘어가려는 것, 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것, 약삭빠르게 상황을 읽고 자신은 슬며시 뒤로 빠지는 것 등이 있다. 그 중 나는 도저히 슬쩍 눈 감아줄 수 없는 '약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애교를 부리고 넘어가려고 해도 그 속에 아이다움, 순수한 맑음이 비치면 귀엽고 웃겨서 최대한 나도 넘어가주려 하지만 찰나에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가 들어도 어불성설인 말을 순식간에 생각해내어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 얼굴을 마주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바로 오늘 있었다. 우리반은 청소시간에 늘 다같이 자기 자리 청소를 한 뒤 환경부원들이 줄까지 맞췄는지 확인한 후 나에게 보고를 한다. 그럼 내가 교실을 한 바퀴 확인하고 회장에게 인사를 시키고 하교를 하는 시스템이다. 즉, 청소시간에 일사분란하게 자기 몫을 한 뒤 가방을 메고, 다른 친구들의 청소도 마무리 되었으면 함께 인사하고 흩어지는 일심동체인 것이다. 보통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하교를 시키주려고 해서(원래 수업 후 청소를 하고 하교를 해야 맞지만 이걸 안하면 학원시간에 늦는다며 원성이 자자하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 5분 전부터 청소시간을 가지는데 오늘은 수업을 꽉꽉 채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끝나기 1분 전부터 청소시간을 주었고 최대한 빨리 집에 보내주려고 청소 후 개인별 점검 및 인사 후 하교를 하도록 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검사해달라는 소리가 뒤섞인 교실 한 복판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청소를 하는 아이들, 꼼꼼히 청소하느라 늦게까지 제 자리에 남아 있는 아이들, 검사를 기다리느라 서 있는 아이들을 감각하면서 재빠르게 누가 검사를 해달라고 하는지, 그 아이가 어떻게 청소를 해놓았는지 점검하고 동시에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아이들은 누구인지 파악한다. 그렇게 동시처리를 계속 하다보면 직감하게 된다.
'아, 쟤들은 알면서 은근슬쩍 그냥 가겠구나.'
'알고도 모르는 척 선생님의 눈을 피해 가겠구나.'
그러면 갈등하게 된다. 저 상황을 잡아야 하나. 청소를 그래도 깨끗하게 하고 가니 놔둬야 하나.
평소에 행실이 바르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아이다운 면을 가진 학생이면 그래도 '으이구' 하면서 보내주게 되는데 행실 바른 척 하면서 은근 수업시간에 조용조용 떠들고 그러면서 눈에 띄지 않는 법을 알아 교묘하게 자기를 감추는 모습이 보이면 나는 그만 넘어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내 목만 아프고, 내 스트레스만 더할 뿐인데 나는 기어코 그걸 짚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게 올바른 방법이며 마땅히 그래야 하는 부분이지만 때로는 정말 그런 걸까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냥 학교를 둘러싼 내외적 상황들로 지칠 때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고, 그렇게 감정을 적절히 절제하면서 지도를 하고 보낸 후에도 괜히 대화내용이 녹음된 건 아닐까, 녹음되었다 하더라도 난 떳떳한데 뭐라도 꼬투리를 물고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이다.)
오늘은 결국 그런 망설임 속에서 나는 아이들을 불러 세우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내 설명을 안 듣고 딴 짓을 하고는 뒤늦게 '몰랐어요, 못들었어요.'를 시전하며 3개월 째 나를 괴롭게 하는 두 아이(A,B)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수업시간에 조용히 아이들에게 계속 말을 시키고 장난을 치는 한 아이(C) 이렇게 세 명이었다. 불러 세워 왜 검사를 안 받고 그냥 가냐고 물었다. A는 역시나 못들었다고 말했고, B도 역시 몰랐다고 말했다. 예상되는 답변이지만 나는 지치고 절망하고 기운도 없으면서 화가 난다.
B에게 물었다. 다른 친구들이 검사받고 가는 거 보지 않았느냐고. 보았다고 대답했다. 그럼 네가 청소검사를 받고 하교하는 걸 알고 있었던 건데 왜 몰라서 그냥 간 거라고 대답했는지 다시 질문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B였다. A에게는 매번 같은 패턴으로 너와 내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새학기가 시작한지 3개월째 언제까지 선생님의 설명이나 지도에 귀기울이지 않을건지 물었다. 예전에는 대답 자체를 아예 안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대답을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그렇게 위로를 해야 하는 걸까. 계속 반복되어 오는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 어떤 때는 알았으면서도 몰랐다고 핑계를 대며 넘어가려는 것에 대해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을, 선생님은 다 알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른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쫌생이가 되어가는 기분, 세세한 감정싸움에 일일이 응하게 되는 기분은 나만 그런걸까. 그래도 A와 B는 평소에 계속 이런 이유로 나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 두 아이 입에서 나온 대답이 늘 한결같아서 속은 상하지만 그나마 타격이 덜했다.(이렇게 느끼는게 괜찮은걸까 나..?)
문제는 C였다.
C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나가길래 검사 받으려고 말하기 위해 따라 나간거에요.'
네?
아니 뭐라구요?
나는 분명 교실 안에서 그 아이들을 지켜보다 뒷문을 통과해 복도로 그냥 나가는 것을 보고 앞문으로 나가 아이들을 마주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과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나를 쫓아 나간거라는 말을 순식간에 지어내다니! 그 모습에 나는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절히 물었다. 내가 너희를 불렀을 때 너희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었고 내가 어디있었는지. 나는 분명 앞문에 서 있었고 아이들은 신발장 앞에서 신발주머니를 챙겨 자기들끼리 웃으며 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을 불러 세웠고 너희들은 뒤돌아 나를 보았다. 그런데 내가 먼저 복도에 나갔고, 그걸 네가 보고 나한테 말을 하려고 따라 나온거라고..?
상황도, 인물의 자세와 위치도 모두 맞지 않는데.. 무엇보다 내가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 너희들을 불렀는데?
정말 화가 났다. 거짓말도 티가 안나게 하던지, 너무나 수가 보이는 변명과 거짓말인데 그걸 또 순식간에 지어내서 말하는 모습에 나는 휘청인다.
이런 걸 일일이 짚어줘야 하는 이 상황과 네 말 속의 어패를 찾아 친절히 설명해야 하는 상황, 네가 아무리 말을 지어내서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해도 어른인 내 눈에는 다 보인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상황, 마치 내가 나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나의 논리를 너에게 설득하는 듯한 이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어지럽다.
나는 아이들의 약은 모습을 볼 때 화가 난다.
그냥 꾀 부리는 거 말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나는 잘못이 없어요, 착한 학생이에요' 하는 표정과 교묘한 말로 자기 앞의 잘못으로부터 빠져나가려 할 때 그런 때 나는 참을 수 없어진다.
내가 이 마음을 놓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옹졸해져 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
건강하고 건전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
그냥 아주 작은 마음일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