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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ug 09. 2024

마지막 연락은 하지 말지

한 번 더의 최선과 용기가 상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괜찮으면 밥 한 번 먹을래?"


 이 메시지를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제발 그만!이라고 소리쳤다.

그와 연락을 마무리한 지 2주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와 우연히 얼굴을 마주치긴 했어도 스치듯 보게 된 것이었고 그런 마주침이었어도 나는 그 찰나의 윤곽조차 숨이 막혔다.

그와 친구로 남자고,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어쩌다 밥도 먹게 되면 그러자고 하고 통화를 마쳤지만

그건 내게 어려운 일임을 나는 그 찰나의 스치는 순간 속에서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그와 산책도, 밥도, 대화도, 인사도 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그가 우연히 앉게 되는 순간이 있었고

나는 평소보다 상기된 채 어딘가 방실 떠 있는 듯한 웃음을 한껏 머금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보며 외면하고 싶었다. 저 친구는 정말 이 상황이 즐거운 건지 의문이었다. 정말 우리가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대하며 이쪽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이 사람의 표정을 마주하기가 싫었다.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자리에 합석하여 웃으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예의 그 해맑은 표정으로. 이 상황에 대한, 상대에 대한 재고나 이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로.


 나는 이 친구와 나의 일을 모르는 주변 사람을 생각하며 대화에 적절히 어울리며 자리를 지켰다. 그 친구가 불편했고 굳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가 그로 인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채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으며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어 그만 일어나고 싶었다. 함께 하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다할 만큼 자리를 지켰으니 이제 불편한 사람을 계속 마주할 이유는 내게 없었다. 나는 굳이 그 사람 말에 호응을 하거나 대답을 얹지 않았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 그냥 들었으나 쳐다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질 때 나도 적당히 말을 하고 질문을 하며 우리의 대화 자체가 지속되는 데에 그 자리를 함께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  


 아무리 그와 내가 친한 친구가 되자며 통화를 마무리했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분명 그도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편한 사이는 될 수 없으리란 걸, 아니 적어도 지금 당장은 내가 당신이 편치 않다는 것을.

그가 보낸 문자에서 그는 내가 본인을 어색해하는 것 같으니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불편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얼굴을 한 번 보자고 하는 게, 그의 논리가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방법과 시기가, 그 언어의 태도에서 그 연락은, 그가 제안하는 만남은 오직 그만 원하는, 나는 억지로 하게 될 게 분명한 무언가로 여겨졌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편해하는 것 같으니 한 번 봐서 빨리 해소하자! 하는 느낌이라 나는 그것마저 또 한 번 불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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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정말로 나를 좋아했던 걸까. 그래서 나랑 정말 친구라도 되고 싶었던 걸까.


여자친구가 아니고는 이성과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고 사적인 만남이나 연락은 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 사람이 나와의 마지막 통화에서는 나와 밥도 먹을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너는 그런 건 허용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럴 수 있냐고 이에 대해 묻자 "고백했다가 차인 것도 아닌데 뭐" 라며 자신의 감정이 그리 크지 않았음을, 이렇게 관계가 끝나는데 별로 아쉬움이 없음을, 자신도 그냥 이 정도의 마음이었음을 표명하는 말을 했다.


 그는 그 마지막 순간에조차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던 걸까. 그의 말속 표현처럼 거절당하는 걸 알면서도 상대를 향해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보여준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용기와 당당함보다는 안온하게 그 뒤로 숨는 방법이 이 사람의 방식이라서, 그러면서 속상한 마음만큼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상대에게 내보이는 것이 이 사람의 결핍이라서,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조차 용기와 거절에서 살짝 비켜선 채 나에게 고백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차이지도 않았다고, 그러니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오히려 괜찮다고 표현한 걸까.


 그러면서 왜 연인사이도 아닌데 그 누구보다 연인에게 하듯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온통 모순 같은 순간들이 나를 더욱 이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서운하고 시무룩해하던 순간, 그 무자비한 말을 내뱉고 도망가고는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네로 일관하던 순간, 오해가 풀려 괜찮다고 하면서 만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순간, 몇 번의 감정적 이해를 받고서야 겨우 더 알아보고 싶다는 대답을 우물쭈물하던 순간, 고백도 확실한 호감도 솔직한 현재의 자기감정도 그 어느 것도 단 한 번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으면서 목소리가 듣고 싶어 기다린다, 자기한테는 친절하게 말해달라고 하던 순간까지, 그러면서 고백했다가 차인 것도 아닌데 안 괜찮을 건 또 뭐냐며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세우던 순간까지.   


 정말 어쩌면 그는 친구로라도 나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었던 걸까. 정말로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 거라면 정말 나에 대해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만큼의 마음이었던 건지 어떻게 생각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를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던 건지.

아마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계속 솔직하지 않을 이 사람으로부터 들을 수 없는 진실이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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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잘 끝냈다고 생각했어도 마냥 한 순간에 서로 편하게 얼굴을 마주 보고 웃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상대도 나도 예측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그냥 너와 내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각자 혹은 상대가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고 거리를 둔 채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가 회복하기를 기다리면 된다. 이 친구는 마지막에서까지 그걸 몰랐다. 이제는 모른다는 걸, 서툴다는 걸, 경험이든 타고나는 사회적 민감성이든 그 어떤 이유건 이제 더 이상 나는 너를 헤아리고 싶지 않다. 그건 이제 내게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의 밥 먹자는 연락이 그로서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한 최선의 용기라 할지라도, 아니면 정말 상황과 관계와 상대에 대한 이해의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일지라도 그 어떤 것이든 이제는 이해하고 수용하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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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 그건 부담이고 알아듣게 거절하는 것도 피곤이며 더 이상 너와 사적으로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이게 내가 지금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답장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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