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웅은 케이블 채널 하나를 독점하고 하루 종일 엄마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선사한다. 다른 식구들은 이제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멀미가 날 지경이지만, 엄마의 사랑은 주변의 탄압이 심할수록 더 공고해졌다.
임영웅은 포천의 자랑이고, 엄마의 임이자 영웅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우리 엄마조차,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오빠 (좋아하는 스타는 일단 오빠라는 견해에 조심스레 한 표!)를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화면으로도, 음원으로도, (자식을 강하게 압박하면) 심지어 콘서트에서 실물로도 영접할 수 있다. 팬클럽도 있고, 유튜브도 있다.
노인네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만, 가끔 엄마한테 얘기한다.
- 엄마, 세상 참 좋아졌다. 라떼는 말이야, 좋아하는 가수 얼굴 한 번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말이야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좋아하는 가수 얼굴을 보려면 TV를 켜놓고 방송 3사 음악 프로그램을 기다리며 혹시 그 가수가 나오나 안 나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쇼 프로도 몇 개 없을 뿐만 아니라, TV에서는 매번 나오는 사람만 나와서, TV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가수는 실제로 노래하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그때의 나는 ‘어떤날’이나 ‘동물원’의 실물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테이프 껍데기에 등장하는 사진으로 그의 생김새를 익히는 정도. 그나마도 분위기 잡는 풍경사진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는 얼굴 모르는 가수는 얼굴 없는 가수로 치부하며 전적으로 그들의 노래만을 사랑했다.
하여 나는 김광석의 얼굴을 애매하게 캐리커처로 익혔다.
<다시부르기1>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그의 음색은 이어폰을 타고, 느리고 뜨거운 물처럼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곤 했다.
힘세게 주장하는 것 없이 사각사각 사람을 멍청하게 만들다가, 깜짝 놀라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나는 몹시 슬펐다.
반면 그림 속의 그는 얼굴의 모든 근육을 접으며 터무니없이 크게 웃는 중이었다.
정 만나보고 싶다면, 공연장에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도 없고, 포털도 없던 (인터넷이 없으니 당연한 소리지만) 그때, 그 정도의 정보력과 실행력을 장착하려면 ‘극성’이나, 극성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재력’ 정도를 타고나야 했다.
뭐든 유행하는 것은, 그 유행이 돌고 돌아 자기 스스로 지쳐갈 때쯤에야 ‘이런 게 있었냐’고 놀라는 나부늘보 급 순발력을 지닌 나에게,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간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돈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첫 콘서트 관람은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파이팅 넘치는 팬덤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1995년. 난 스물다섯이었고, 스물다섯에 걸맞은 우울을 달고 살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만 딱 더 살고 나면 죽음을 맞지 않겠냐는 근거 없고 유치한 비관주의에 빠져 있었다.
스물다섯이면 한창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아닌가.
멀리는 이상, 비근한 예로 기형도도 50 전에 죽었다.
‘천재는 요절’이라는,
각각의 인간에게 허락된 축복의 대차대조표를 생각하면 얼핏 공평한 느낌도 드는 이 말은,
그 천재한테 반해버린 나 같은 사람에게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신의 심술이었다.
아무튼 내가 좋아했던 그들은 어이없을 만큼 부지런히 떠나갔다.
나는 천재도 아닌 주제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25살 정도면 살만큼 충분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남들은 그 나이에 자기만의 우주를 만드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매일 우울했다. 우울하고 우울했다. 나의 만성적 우울은 점점 물화되더니 급기야는 제 스스로 내 안에 덤덤하게 똬리를 틀었다. 우울은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적당한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퇴근 무렵이면 슬그머니 철수했다. 제가 알아서 감정도 절제하고, 극복을 위한 기획안도 제출했으며, 가끔은 창고 대방출과 같은 깜짝 프로모션도 벌였다. 집주인에게 징징거리지 않고, 웬만한 고장은 스스로 수선해 쓰는 기특한 세입자 같달까.
그 여름 나의 우울이 나를 데려간 곳은 마로니에 공원이었다.
정말 어울리는 장소가 아닌가!
나의 우울은 생각보다 클래시컬한 타입이었다.
꼬맹이 얼굴만 한 이파리들이 실성한 발레리나처럼 공원 여기저기에서 널뛰는 중이었다.
누군가는 공원 한 구석에서 허기진 표정으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고, 길거리 화가들은 초상화를 의뢰할 손님을 기다리며 담배를 물었다.
안 그래도 후줄근한 영육이 초여름 열기에 쪼그라들어 더이상 견디기 어려울 때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분량의 청승은 이쯤에서 마감을 치고, 어디 가서 시원한 커피나 마시고 싶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나의 우울도 아침이면 새벽에 배송된 우유처럼 신선하게 차오를 것이다.
길 건너 학림다방으로 가려는데, 저 앞에서 누가 걸어오고 있었다.
기타를 매고, 바쁜 일 없는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그가 나에게 가까워졌을 때야 나는 그를 알아챈다.
저 얼굴, 익숙하다. 아는 사람이다. 파안대소라는 사자성어의 현신.
김광석이었다.
그는, 나의 우울이 최선을 다해 제 기량을 발휘했을 때 내 표정이 저렇지 않을까, 싶은 그런 낯빛을 하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유명한 사람을 만나는 이처럼 별난 일은 처음 겪었던지라, 나는 혼자 허둥댔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요란하게 아는 척을 해서 반가움을 표시해야 하나...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분별없는 팬은 아니라는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하나, 하지만 진짜 몰라봐서 아는 척을 못 하는 건지, 알아봤지만 사려깊게도 아는 척을 안 하는 척하는 건지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복잡한 갈등에 휘말려 쩔쩔매는 사이 그는 내 옆을 지나갔고, 나는 이제 이성을 잃고 당황했다.
- 저기요, 싸인 한 장 부탁드려도 돼요?
나는 쫒아 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분별없는 팬 정도가 아니라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다.
맥을 놓고 걷던 가수는 깜짝 놀라 나를 향해 돌아섰다.
- 미안합니다. 팬이에요.
당황한 나는 가방을 뒤져 나와 가장 밀착된 사물인 플래너를 꺼냈다. 여백을 펼치며 우물쭈물 볼펜을 내미는 내게, 그는 특유의 커다란 웃음을 얼굴 가득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