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친구네 집에 가는 것이 좋았다. 남들은 이런 곳에서 사는구나. 여행이 없는 일상이라 다른 집에만 가도 엄청난 객창감이 밀려들었다. 오늘 우리 집에서 놀래? 새로 사귄 반 친구가 물으면,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약 따위는 없는 삶. 불러주기만 하면 언제든 콜이었다.
친구를 집으로 부르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방이 있었다. 들어오지 말랬지! 동생한테 냅따 신경질을 부리고는 꽝 소리 나게 문을 닫을 수 있는 방. 간식을 챙겨 따라온 엄마가, 들어가도 되느냐고 문을 똑똑 두드리는 방. 오직 방 주인의 물건만으로 꽉 찬 자기만의 방.
우리 집에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집은 좁았고, 식구는 열한 명이었으며, 그중에서 나는 서열 10위였다. 가족 중에 방을 혼자 쓰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다지 억울할 일은 아니었지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찰나에 재빨리 몸을 숨길 아지트 정도는 필요했다.
나의 대안은 이불장이었다. 이불 위에 누워 장롱문을 닫으면 순식간에 빛이 사라졌다. 물컹한 어둠 속에는 반짝이는 별들만 부유했다. 나는 곽 속의 성냥개비처럼 두 팔을 겨드랑이에 붙인 채, 얼굴 위로 떠다니는 별들에 시선을 맞춘다. 별들은 욕조에 빠진 비누처럼 내 시선을 피해 도망쳤다. 한참을 별들과 숨바꼭질 하다 보면 마침내 찔끔거리던 눈물도 말라버리고, 간질간질한 안락함이 발바닥 끝에서 꼬물거렸다. 나갈 때가 된 것이다. 접어 놓은 다리를 펴며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면 방에 누웠던 식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볼 때마다 기막히게 재미있었다.
이 세상에 이불장과 꼭 닮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약국 건너편에 독서실이 생겼다. 척추의 곡선을 닮은 과학적 등받이라나 뭐라나, 최신 아이템 하이테크 의자를 장착했다며, 몇 주 동안 독서실 전단지가 동네를 폭격했다. 여태 공부를 못했던 이유가 의자 등받이 때문이었던 양, 독서실이 문을 열자마자 인근 중고생들이 죄다 거기에 짐을 풀었다.
처음 내 자리를 배정받은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고생’ 푯말이 붙은 방문을 열자, 안쪽에 고여있던 어둠과 고요가 안개처럼 바닥을 타고 마중을 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무성의한 조명, 나른한 공기, 자폐적 책상, 몰두하는 램프, 은닉의 사물함...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마침내 안식처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독서실을 좋아했다는 것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공부 말고도 독서실에서 할 짓은 얼마든지 많았다. 연습장을 북 뜯어 친구한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오른손이 글씨를 쓰는 동안 왼손으로는 쉴 새 없이 과자를 집어먹기도 했다. (독서실에서는 과자나 소시지를 사탕처럼 녹여 먹는 것이 가능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동물원’ 노래를 BGM 삼아,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매일 같은 자리에서 조는 자들의 옆모습을 관찰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해 나는 독서실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오히려 독서실은 공부하기 싫은 날에 더 요긴했다. 왜 이러지? 마음이 어지러워 공부가 안 되는 것인지, 공부가 하기 싫어 마음이 널뛰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런 날에는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벽을 바라보았다.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책상을 스크린 삼아 낮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똑같은 배경에, 별다른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데, 등장인물만 불현듯 낙담해 버리는 사이코 드라마. 가끔 랙 걸린 듯 같은 장면이 반복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자주색 비닐 커버의 프라임 영한사전에 한참이나 이마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서서히 숨을 고르면 공기 속에 항생제 성분이 떠도는 듯, 칼날에 베었던 마음이 자동으로 치유되는 것이다.
고3 때 집이 철거되었다. 낡은 주택을 허물고, 여기저기서 똑같이 생긴 다가구주택을 올리는 중이었다. 폭탄을 맞은 듯 동네가 쑥대밭이 되었다. 다른 곳도 사정이 비슷했는지, 전국적으로 시멘트가 동이 나 공사가 중단되었다. 석 달이면 끝난다던 집 짓기가, 일 년이 넘도록 제자리였다. 딴 집에서는 고3 수험생 때문에 문소리도 크게 못 낸다던데, 우리 가족은 깔끔하게 집을 허물어 버렸다. 온 식구가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곳에서는 귀 어두운 할아버지가 텔레비전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종일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식구들이 뿜어낸 이산화탄소와 할아버지의 담배연기가 만나 단칸방에는 노상 스모그가 자욱했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도착해 방문을 열면 견딜 수 없는 절망의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도시락 통만 던져 버린 채 그대로 독서실로 도망쳤다. 집에서 독서실까지는 500미터. 이유도 없이 자꾸 한숨이 터졌다.
성적은 줄기차게 떨어지고, 감정은 제 멋대로 날뛰었는데, 그 와중에도 종일 잠이 쏟아졌다. 책상에 고개를 꺾고 자 본 자들은 알 것이다. 자고 싶다,와 잘 수 없다,의 처절한 각축장이 고3의 책상이다. 수마는 살그머니 다가와 회백색 물감을 뇌간에 떨군다. 컵에 잉크가 번지듯 시야가 흐려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한 뭉터기의 시간이 증발해 버린 뒤였다.
빨래처럼 널브러진 몸을 일으켜 반수면의 의식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책상 귀퉁이에 떡이나 귤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주인아주머니는 안쓰러움을 담은 눈으로 종종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혼곤한 졸음을 밀어내려 고개를 흔들면 깜깜한 방 어딘가에서 누군가 거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형광등 불빛이 가느다란 빛을 쏘았다. 최선을 다해 소리를 죽인 다른 이들의 기척을 느끼며, 어차피 지금은 모두가 딱 이만큼의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덜 외로웠다.
최후의 독서실은 대학 4학년 때였다. 마지막 학기라서 이틀만 등교하면 졸업에는 지장이 없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끄트머리에 몰리니 고질적 패배주의가 다시 꿈틀거렸다. 너무나도 독서실에 가고 싶었다. 친구들은 니가 가겠다는 곳이 설마 중고생이 다니는 그 ‘독서실’을 말하는 거냐며 진지하게 되물었다. 중앙도서관도 있고, 단과대 도서관도 있는데, 애들 가는 독서실을 가겠다고?
이미 봐 둔 곳도 있었다. 새로 생긴 아파트 상가 2층, 궁서체의 단아한 간판을 걸어놓은 그곳은 집현전 독서실. 이름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동기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현전의 문을 열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사무실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가 나를 보고 반색했다.
- 어! 대학생이에요? 나둔데.
미애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4학년 졸업반. 전공은 스페인어.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내가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먹으러 나오면 격렬하게 나를 붙잡아 놓고 믹스커피를 타 왔다. 졸업하기 전에 회계사 시험에 붙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데, 두 눈에는 권태가 드글드글 붙어 있었다. 공부하는 거 재미있어요? 한 살 어렸던 미애는 자기 얘기도 잘하고, 남 얘기도 스스럼없이 물어보았다.
자기는 시험공부하는 것이 싫지는 않은데, 너무 지긋지긋하다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이 무슨 찬란한 슬픔의 봄과 같은 표현법인가.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는데, 이런 짓을 하면서 살 생각을 하면 불행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전히 아리송했지만, 어쩐지 조금씩 설득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회계사 시험에 붙고 싶지만, 회계사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최후의 변을 내뱉었을 때 내 입에서는 ‘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냉소 대신, ‘뭔지 알 것 같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날로 우리는 술친구가 되었다.
방금까지 독서실에 앉아 있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얼마 전까지 생면부지였던 여자와 함께 신림동 호프집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극장을 낭송하는 중이었다. 시작은 미애였다. 엄마는 딸 대신 종교를 선택했고, 선택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종교에 귀의했고, 그래서 어린 시절 내내 외로웠고, 남친이 생겨 외로움이 덜했으나, 커플로 시험공부를 하자며 바람을 넣었던 그와는 이제 헤어졌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어울리는 사연이었다.
분명 쓸쓸한 스토리인데, 미애가 하도 깔깔대며 말하는 통에 자꾸 장르가 헷갈렸다. 엄마가 도망가거나, 온 가족이 빚더미에 올라앉는 장면처럼 고난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마다 미애는 호쾌하게 원샷을 외쳤다. 쨍그랑! 호프 잔이 부딪치는 투명한 소리가 미애의 슬픔 위에 갈채처럼 쏟아졌다.
가난과 외로움이 주제라면 나도 꽤 할 말이 많았던 터라, 미애의 이야기에 자꾸 끼어들고 싶어졌다. 야, 말도 마. 그건 약과라니까. 난 더 심했어. 미애의 외로움에 나의 고독이 떠올랐고, 그녀의 방황에 나의 불안이 소환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누가누가 더 꿀꿀했나,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의 불행에 각주를 달았다. 갑자기 미애가 정색하고 내게 물었다. 나도 언니처럼 국문과 대학원이나 갈까?
- 느닷없이? 야, 누가 인생의 진로를 이렇게 골뱅이 먹다가 정하냐?
다음날 미애는 두꺼운 수험서를 말끔히 치워버렸다. 술김에 농담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독서실에 며칠 휴가를 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책꽂이를 대학원 시험교재로 가득 채웠다. 발상이 결심을 거쳐 실천에 이르는 기세가 거진 광속에 가까웠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이런 캐릭터는 처음 보았다. 우연한 사건에 연루되어 주인공의 삶이 점점 꼬여가는 부조리극에서 최초로 그 전락의 빌미를 제공한 악역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독서실 대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면 유능한 회계사 한 명이 탄생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긋지긋하다던 시험공부를 때려치운 덕인지, 미애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생기마저 감돌았다. 이미 물은 엎어졌는데 그녀는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의사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어떡하지?’에서 ‘에라, 모르겠다’로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한 나는, 동지가 생겨 오히려 점점 신이 났다. 우리는 수시로 신림동에 나가 술을 마시며, 인생을 얘기하고, 문학을 논하고, 개똥철학을 읊어댔다. 각자의 모교로 진학을 하면, 가끔씩 만나 스터디도 하고 논문도 같이 쓰자며, 도원결의에 이어 합격주까지 미리 땡겨 마셨다. 모든 것이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눈앞의 미애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녀는 왜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던 것일까. 그렇게 지겹다고 치를 떨면서 어째서 이를 악물고 버틴 것일까. 버리고 나서야 자기가 그걸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게 되었다며, 미애는 말끝마다 후련하다,를 반복했다. 대학생 정도면 어려운 결정도 척척 해낼 줄 알았는데, 10대가 저물어도, 어른이 되어도,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미애와 나는 그해 겨울 각자의 모교에서 대학원 시험을 치르고는 함께 집현전을 빠져나왔다. 커다란 가방에 비슷한 전공서적을 욱여넣으며, 우리는 씩씩하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말로는 신림동에서 자주 만나자고 후일을 다짐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유년은 저물었고, 7년 암중모색이 끝난 매미처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그날까지 세상을 향해 맹렬하게 절규하는 것뿐이었다.
돌발처럼, 사건처럼 진로를 틀었던 미애는, 결국 그곳에서 평생의 일을 찾았다.
안방 한 귀퉁이에 독서실 책상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뭐지? 식구들이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세일하길래 용접기를 하나 장만했다고 한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아들 둘이 쫓아다니며 뭐냐고 계속 묻는다. 대수롭지 않게 내가 대답한다. 오래전부터 꼭 갖고 싶었던 거야.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나 독서실 책상 하나쯤은 갖고 싶어 하잖아. 왜.
마음에 주기적으로 질풍이 불고, 불안의 정령들은 아직도 내 방 앞을 서성거린다. 내 속에는 내가 여전히 많다. 그럴 때면 그때처럼 거기에 앉는다. 네모난 공간 속에 머리를 묻고, 하나. 둘. 셋. 넷. 작은 소리로 숨을 고른다. 어느새 머리 위로 투명한 막이 내리고, 주위의 빛과 소음은 서서히 물러난다. 눈을 감는다. 반짝이는 별들이 어둠 속에 부유한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저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물이 찰랑거리며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