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 최상급을 표현하는 부사는 단연 ‘대빵’이었다. 동의어로 ‘캡(숑)’도 있다. 어느 오렌지주스 CF가 히트를 치면서 어원을 브라질에 두고 있는 ‘따봉’이라는 말도 급부상했다. 마이너하게는 ‘대끼리’도 있었다. 뭐든 최고는 다 캡숑 아니면 대빵이었다. 요즘 말로 번역하면 접두사 ‘개’쯤 되겠다. 캡숑 맛있어. 개맛있어. 대빵 멋있어. 개멋있어.
강도 높은 욕은 입에 올리기에 저항감이 있어서, 친구들에 대한 범용 비칭은 ‘빙신아’ 정도가 적합했다. 거봐, 빙신아, 내 말이 맞다니까. 병신은 저열하고, 등신은 올드하다. 빙신이 우리의 어휘였다.
사람의 말도 생로병사가 있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다. 하지만 시간의 풍화작용에서 빗겨난 말도 있다. 재수 없어. 그때도 비난의 시작과 끝은 이거였다. 재수 없어. 이 말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도 아이들은 열 받는 일이 있으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일단 내뱉는다. IC 재수 없어.
당시 우리는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해 버리는 금사빠였던 동시에, 먼지같은 일에도 속앓이를 거듭하는 좁쌀과 종지의 요정이었다. 요정의 학교는 1교시에 흐렸다가, 2교시에 맑았고, 3교시에는 폭우가 내렸다.
좋아하는 고기와 싫어하는 멸치(혹은 반대!)를 한 데 넣고 끓인 잡탕찌개처럼, 교실은 베프와 재수떼기가 섞인 거대한 냄비와 같았다. 그 어지러운 냄비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우리는 제 입맛에 맞는 자들만 앞접시에 골라 담고는 평생을 이어갈 우정을 만들었다. 버섯이 싫다고 냄비 밖으로 골라 버릴 권리는 없었다. 우리들 중에는 버섯 마니아도 많았기 때문이다. ‘싫어함’이나 '미워함'을 ‘친한 것은 아님’ 정도로 드러내는 것이 누구나 지켜야 할 식탁의 매너였다.
저마다 마음 속에는 자기만의 재수떼기가 숨어 있었지만, 비호감의 찬 기운은 항상 호감의 온기를 능가했기에, 위험한 본심에 누군가 상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도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밀은 불량 폭탄과 비슷해서 종종 안전핀이 빠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젬마가 그 핀을 뽑았다. 대상은 나였다. 그녀는 가만히 있는 내게 도발을 감행했다.
- 재수 없어.
폭탄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왜?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미를 느꼈는지, 앞뒤좌우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우리 둘에게 쏠렸다. 안젬마는 방금 내가 자기를 쳐다본 표정에 몹시 기분이 나빴다면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소리를 꽥 질렀다. 또 시작이군. 아이들이 곧 흥미를 잃고 흩어졌다.
안젬마의 예민함은 유별났다. 누군 고3이 아니고, 고3 학부모인가, 세상 공부는 저 혼자 다 하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자습시간에 어디서 소곤대는 소리라도 들리면,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쳐서 애먼 아이들의 집중력까지 가루로 만들었다. 신분이 일시적으로 수직 상승하여 일 년간 상전 노릇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고3이라지만, 그래 봤자 그 우쭈쭈 대접도 제 식구들한테나 유효한 것이지, 이렇게 피차일반인 자들한테까지 유세를 하는 것은 해괴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닌 것과 동일한 심정으로 안젬마를 대했다. 언젠가 민주가 안젬마를 건드렸다가 무기력하게 당했던 기억이 생생해서였다. 그날 민주는 안젬마에게 그저 사소한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이었다.
-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주중에 한 번만 더 머리를 감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거야?
안젬마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머리를 감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목욕탕이 교회도 아닌데, 주말에 목욕탕을 다녀오고 나면 그 상태로 다음 주말까지 버티는 것이다. 찰랑거리던 그녀의 숏커트 헤어는 월요일에서 하루하루 멀어짐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대륙의 오랑캐처럼 조금씩 덩어리로 변해갔다.
수요일에서 목요일 사이에는 플라스틱 머리띠가 등장했다. 오일 코팅으로 점성이 높아가는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은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주먹으로 방죽을 막은 네덜란드 소년처럼 머리띠는 쏟아져내리는 앞머리와 살가죽의 접촉을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면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함박눈이 소복소복 안젬마의 어깨에 내려앉기 시작했던 것이다. 안젬마~ 누가 뒤에서 이름이라도 부르면, 고개를 획 돌릴 때마다 하얀 가루가 허공에 흩날려 시야가 부옇게 가려질 지경이었다. 젬마의 뒷자리였던 민주는 그럴 때마다 기겁을 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민주의 절박한 질문에, 안젬마는 태어나서 그렇게 한심한 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치떴다.
- 야! 고3이 누가 그렇게 머리를 자주 감아? 머리가 중요해, 대학이 중요해? 대학에서 깔끔한 순서로 학생을 뽑는대? 넌 아주 시간이 많은가 보다? 그리고 내가 머리를 감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참내, 재수 없어.
흥분한 안젬마가 턱을 위아래로 흔들며 쏘아대는 바람에 다시 허공에서 눈이 내렸다. 할 말을 마친 안젬마가 광속으로 고개를 팩 돌리는 순간, 민주가 얼른 책상을 뒤로 뺐다.
그 안젬마가 이번에는 나를 저격한 것이다. 나는 홀로 깜짝 놀랐다. 안젬마의 열폭으로 인해, 나는 비로소 내 표정이 어땠는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랬다. 나는 안젬마에게 차마 입밖에 끄집어낼 수 없던 그 말을,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너. 재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안젬마를 싫어했던 이유는, 잘 안 씻어서도 아니고, 공부로 유별을 떨어서도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 선생 때문이었다.
신 선생은 우리학교의 일타 강사였다.우리학교뿐만 아니라 영어 과목의 전국적 스타였다. 그는 우리나라 양대 사설 모의고사 한 곳의 문제 출제위원이었고, 모든 아이들이 한 권씩은 갖고 있는 영어 참고서의 저자였다.
장구한 학교의 역사처럼 교사의 평균 연령도 고령화되어가던우리학교에서, 그의 수업은 군계일학과도 같은 명강의였다. 수업만 듣고 있으면 개념 이해는 물론이요 암기까지 자동으로 완성되는 마법이 펼쳐졌다. 대형학원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빗발친다는데, 어째서 그가 이 학교를 떠나지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신 선생은 캄캄한 영어의 동굴에서 해방의 출구를 일러주는 한줄기 빛과 같았다. 신 선생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존경-경탄-탄복 같은 단어들이 끝말잇기마냥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탁월한 사람에게 무조건 반하고 마는 나의 취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수업에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하나 있었다. 자, 이건 뭘까? 교사가 질문하고, 학생이 대답하는 문답식 수업에서, 신 선생이 호명하는 학생이 우리 반에서 오직 두 명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박해경과 안젬마가 그들이었다.
주번을 찾거나 출석번호를 부르는 법도 없었다. 그가 던진 질문 중 절반은 박해경이, 절반은 안젬마가 대답했다. 60명 중 58명은 블러 처리에 음소거가 되고, 박해경과 안젬마와 신 선생만 움직이는 편집 필름을 보는 것 같았다. 정답을 알고 있는 다른 아이가 신나는 목소리로 대답을 해도, 신 선생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둘에게 답을 물었다. 어쩐지 나는 장지문 밖에서 귀동냥으로 천자문을 익히는 서당의 머슴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지목과 망신을 연쇄적으로 경험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신 선생의 파행을 옹호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 요상한 풍경에 마음이 불편해졌는데, 나의 불만을 공감해주는 아이들이 없어 (좋기만 하구만, 뭐가 문제냐는 반론이 대세!) 호소할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몇 달이 지나서야, 이 희한한 현상의 원인이 밝혀졌다. 박혜경의 친구였던 옆반 유진이, 나의 친구인 명아의 친구였던 현주에게, ‘너만 알고 있어’ 라벨을 달고 다단계로 유통되는 정보를 공유해 준 것이다. 박해경과 안젬마는 신 선생에게 과외를 받는 5인방의 멤버였던 것이다. 나머지 셋은 다른 반인데, 그 반에서도 신 선생과 그들만의 수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정규 수업은 과외 때 일러준 내용을 확인하는 복습의 시간이던 셈이다.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종일 우울했다. 마음 속에서 실망과 환멸이 들개처럼 날뛰었다. 그동안 나는 그 편파적 수업조차 고수의 기벽같은 것으로 여기며, 거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는 은밀히 초청장이 발부된 파티에, 때 빼고 광내며 눈치없이 찾아온 불청객이었던 셈이다. 신 선생에 대한 숭배의 마음이 가장 부당하고 부도덕한 방식으로 유린당한 것 같았다.
신 선생을 경멸한다고 개코나 달라질 것은 없었다. 신 선생은 교장도 어쩌지 못하는 제 멋대로 스타일의 권력자였다. 파격적 대우를 제시하는 대형학원을 물리치고 이 누추한 곳에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학교가 감지덕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박해경은 자리가 너무 멀어서, 미움의 사정거리 밖에 존재했기에 결국 나의 분노는 때마침 짝이 된 안젬마에게 집중되었다.
옆자리의 안젬마는 머리를 감지 않았고, 하얀 비듬을 견장처럼 얹고 살았으며, 아무에게나 본데없이 신경질을 부렸다. 나의 재수떼기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안젬마가 도리어 내게 먼저 소리를 지른 것이다. 너 재수 없어.
OK! 분명 니가 먼저 말했다? 니가 선빵 날렸으니, 그럼 이제부터는 정당방위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대사를 주절거리며, 나는 숨겨왔던 마음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었다. 서로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했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어 오히려 편했다. 짝이었지만 말을 섞지 않았고, 행여 지리적 인접성에서 기인한 신체적 접촉이 발생하면 화들짝 몸을 움츠리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불쾌감을 표현했다. 초등학교 때도 해 본 적 없는 유치한 선긋기가 19년 인생에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안젬마는 나와 성적도 비슷해서 신 선생 때문에 시작된 우리의 신경전은 종목을 달리하며 확장되었다. 성적표가 나오면 은밀한 루트를 통해 안젬마의 점수를 추적하곤 했다. 졸다가도, 책을 씹어먹을 것처럼 집중하고 있는 안젬마를 흘끗거리면 따가운 죽비가 등에 꽂히는 듯 잠이 확 달아났다.
알 수 없는 박탈감에 기분이 가라앉는 날도 있었다. 교장도 건드리지 못하는 신 선생을 개인교사로 섭외하는 능력인데, 다른 과목이라고 혼자 공부할 리 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났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집안이 넉넉하고, 부모의 학구열이 높으면 아이들이 보통 삐뚤어지던데, 안젬마는 그조차도 아니었다. 근면한 공붓벌레가 고액과외 선생의 서포트를 받으며 잭의 콩나무처럼 나날이 SKY를 향해 자라나는 중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은 미움, 질투, 선망, 오기 등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감정으로 변이를 거듭했다. 신 선생이 없어도, 아침마다 머리를 감아도, 애들한테 소리를 안 질러도, 너만큼은 아니 너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근거도 없이 홀로 절규했다. 만해 한용운처럼 걷잡을 수 없는 질투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고 싶었다.
하지만 그해 가을, 나는 가장 중요하다는 9월 모의고사를 폭망했다.
이런 날에 어울리는 곳은 한강. 시험을 망칠 때마다 ‘한강이나 갈란다’라고 입방정을 떨었더니 어느새 자동으로 한강이 떠올랐다. 학교는 강의 북쪽이라,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야 했다. 나는 버스를 버리고 바람 부는 원효대교를 걷기 시작했다.
한강을 내 발로 건너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서는 남의 눈치 안 보고 한껏 우울할 수 있어 좋았다. 마음과 머리가 동시에 엉망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레이스였지만, 관객이 없다고 패배의 쓰라림이 덜하지는 않았다. 다리 아래로 검은 물이 출렁거렸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오래도록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수면에 비늘 같은 물결을 만들며, 강은 한 방향으로 도도히 흘렀다. 인생 뭐 있어. 저렇게 흘러가면 되는 거지. 운동복을 입은 행인들이 달리기의 속도를 줄인 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꾸 나를 흘깃거렸다.
- 쳇, 다 관두라 그래. 더럽고 치사해서! 신 선생이고 안젬마고 다 재수 없어. 그까짓 영어, 그까짓 대학, 다 필요 없다고 그래.
가상의 적대자에게 ‘간접화법으로 역정 내기’ 신공을 발산한다. 맘껏 화를 내고 나니, 과연 기분이 더 거지 같았다. 다시 터덜터덜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리를 절반 넘게 지났을 무렵,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이 시작되었다. 계기판이 고장 난 고물차처럼 여태 시치미를 떼고 있던 연료통이 갑자기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종일 모의고사를 치르느라 두뇌는 과도하게 칼로리를 소모한 데다, 생전 해본 적 없던 극한 행군에 혈액 중 포도당 함량도 급속도로 고갈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방은 어깨를 눌렀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배가 고팠다. 굳이 한강까지 와서 익사 대신 아사에 도달할 형편이었다.
돌아갈까, 건너갈까. 버스 정류장은 다리의 양끝에 있었지만, 이미 어떤 선택을 해도 애매한 위치였다. 버스로 건널 때는 금방이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열패감에 찌든 저질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서도 다리는 꾸역꾸역 앞으로만 전진했고, 마침내 나는 폴더폰처럼 꺾인 몸을 고수부지 벤치에 내려놓았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포장마차에서는 치명적인 냄새가 흘러나왔다. 망친 모의고사든, 전망을 상실한 미래든 이제는 관심 밖이었다. 혈당량과 체온이 시간차로 하락하더니, 급기야 두통과 우울이 팀을 이루며 달려왔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는 회수권 몇 장이 전부였다. 명색이 우아한 여고생인데, 중삐리처럼 회수권을 내밀며 순대를 달라고 조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굴욕사보다는 아사가 깔끔했다. 아우성치는 뱃속에 회심의 일격을 날려도 보았다.
- 안젬마를 생각해. 안젬마를 생각하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식욕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니가 개돼지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어느덧 개돼지가 된 나는 강변에 앉아 사유와 명상에 빠져든다.
- 무와 멸치와 오뎅이 만나면 이런 냄새가 탄생하는구나. 떡볶이는 국물이 졸아들면서 채도와 명도가 점점 짙어지는구나. 닭꼬치는 여섯 번 양념을 바르고, 여섯 번 불 위에 몸을 뒤집은 후에야 완성되는 장인의 작품이었구나. 아참, 따끈한 순대를 고춧가루가 섞인 소금에 찍어 씹으면 어떤 소리가 났었더라?
냄새와 구경은 공짜였기에 절박한 시선은 포장마차 안쪽을 오래도록 기웃거렸다.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이 순대와 튀김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고 새를 못 참아 닭꼬치까지 하나씩 집어 들었다. 어째서 난 저들의 일행이 아닐까. 익명성에 소외되어가는 현대인의 비애가 정통으로 위장을 후려쳤다. 혀 짧은 소리를 내던 여자는 입도 짧았던지, 결국 그들은 주문한 음식을 절반이나 남긴 채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아직도 김이 솔솔 올라오는 순대가 눈앞에서 가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낙하하는 모습에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비통함이 밀려왔다.
그때였다. 슬픔에 초점을 잃은 내 눈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포장마차 옆 잔디밭에 만 원짜리 한 장이 나풀거리는 것이다.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을 그토록 가슴 아파하시던 한 분이 거기 계셨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얼른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태연함을 연기하며 버선발로 달려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세종대왕은 백성의 문맹만큼이나, 후손의 허기짐까지도 가엽게 여기신 것이다. 과연 성군이셨다.
푸른 지폐를 주먹에 움켜쥐고,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한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이 자리에서 수천 년을 흘렀다. 우주적 스케일로 관점을 넓히니, 지난 세월의 조잡스러운 집작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다 무의미했다. 우울도, 분노도, 절망도, 신 선생도, 심지어 안젬마조차.
과거는 힘이 없다.
나에게는 이제 쫄깃한 순대와 따뜻한 어묵이 보장된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그리스 비극에서는 갈등이 꼬여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두둥 신이 등장한다. 도르래 같은 기계에 몸을 매단 신 역할의 배우는 착한 이에게 복을 주고, 못된 놈에게는 벌을 주며 그 밖의 모든 문제를 말끔히 쓸어버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끝판왕의 등장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며 비꼬았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기계장치에서 나온 신’이라는 뜻이다. 출생의 비밀, 재벌 2세 본부장님, 로또 당첨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참, 잔디밭의 만 원짜리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