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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Jul 22. 2023

“청년세대”라는 신기루, “기성세대”라는 허깨비

<책 읽기 정책 읽기>(10)

<그런 세대는 없다>(신진욱, 2022, 개마고원)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많은 이들이 추억에 젖었다. 그랬다고 한다. 나는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서울 변두리, 그것도 한국민속촌마냥 그럴듯하게 취사선택한 숱한 ‘그때 그 시절’ 추억 가운데 나에게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 드라마엔 비라도 내리면 진흙탕이 돼 버리는 비포장 흙길을 고무신 신고 다니는 모습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읍내와 읍내를 연결하는 왕복 2차선 신작로가 막 공사를 끝내고 포장도로가 됐다거나, 솥단지에 밥을 짓기 위해 장작에 불을 붙이거나, 밤마다 천장에서 들리는 생쥐 소리 때문에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장면도 없다. 그렇다면 ‘응답하라 1988’을 보며 향수에 젖었던 내 또래들과 나는 같은 세대가 맞는 것일까, 혹은 같은 세대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론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건 누구에게나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갖는다. 강력한 공통 경험은 공감대를 넓혀주고 비슷한 사고방식까지도 갖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대 전체를 단일한 집단이나 되는 것처럼 한 묶음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령 똑같은 1958년생 개띠라 하더라도 젖먹이 때부터 대통령이었던 분이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하겠다’는 소원을 성취하는 걸 보며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기뻐했고, 누군가는 냉소했다. ‘58년 개띠는 다 이렇다’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르고 낯선 존재를 손쉽게 재단하고 싶은 욕망에 편승한 작명가들은 ‘386세대’ ‘신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 ‘모래시계 세대’ ‘미생 세대’ ‘MZ세대’ 등 각종 신제품으로 호객행위에 열심이다. 호사가들은 새롭고 다르다는 걸 입증하려고 온갖 근거를 갖다 붙인다. 하지만 솔직히 ‘혈액형 성격론’만큼이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많게는 수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나이 하나로만 갈라치려다 보니 온갖 무리수가 등장한다.


  요즘은 유행이 좀 꺾인 MZ세대를 보자.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이 신조어는 1981~1996년생인 밀레니얼세대(M세대)와 1997~2012년생인 Z세대를 묶어서 지칭한다고 한다. 2023년 현재 시점에서 1981년생이 42세, 2012년생이 11세다. 결국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와 초등학생들을 동일집단으로 묘사하는 괴상망측한 일이 발생한다. 지난 총선이나 대선에서 울려 퍼졌던 “MZ세대의 목소리”란 결국 “어린이와 청소년과 청년과 중년들의 목소리”라는 하나마나한 말이 돼 버린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그런 세대는 없다’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더 나아가 각종 “세대론”이라는 “허깨비(52쪽)”를 박살내려고 작심하고 쓴 책이다. 세대론 환상을 깨버린다는 게 이 책의 첫번째 미덕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간단한 사실관계를 인용해 보자.


  젊어서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걸 586세대 특징인 양 얘기하곤 하지만 1980년대 4년제 대학 취학률은 평균 13%였다(142쪽). 1980년대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사람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50대 가운데 현재 통용되는 586세대론에 해당하는 건 3% 정도밖에 안된다. 청년들 일자리를 뺏는 주범으로 지탄받는 ‘50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0.7%에 불과하다(146쪽). 1960년대에 태어나 고도성장기에 취직해 기득권을 누리며 20~30대를 착취한다는 게 ‘586세대론’의 핵심이지만 실제로는 20대와 함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가 50대다. 


  40대는 소싯적 “X세대”란 이름으로 규정당하곤 했다. X세대로 규정됐던 사람으로서 가장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X세대는 이전 꼰대들과 달리 현실정치에 무관심한 신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정치와 담쌓고 쌓으라는 주문을 들었던(혹은 들어야 했던) X세대가 요즘 가장 정치관심이 높은 세대 가운데 하나다. 이는 이 책의 두번째 미덕, 담론에 내재된 정치성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과 연관된다.


  <그런 세대는 없다>는 세대론을 누가 말하고 왜 말하는지 주목한다. 그것을 통해 세대 담론의 밑바탕에 숨겨진 정치적 맥락을 파헤친다. 저자의 분석결과는 “언론에서 청년에 관한 담론들을 생산한 주체의 대다수는 서울에 소재한 중고령층 엘리트 집단(216쪽)”이고, “2019년에 와서 보수세력이 청년담론의 정치적 주도권을 뺏는 데에 처음으로 성공(230쪽)”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사회불평등과 삶의 불안정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니,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주류로 진입한 구 민주화운동 세력은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세대’ 문제로 접근하는 데서 시작된다(131쪽).” 왜냐하면 “300명 국회의원의 다수가 50~60대라는 사실은 50~60대의 다수가 정치권력에 가까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140~141쪽)”는 것, 그리고 “부동산 최상층에 60대가 많다는 사실은 60대의 다수가 집 부자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141쪽)”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람 가운데 70% 가량은 50대 이상 노동자, 즉 기성세대다(129쪽). 산재 위험 앞에 20대나 50대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재 문제를 세대 문제로 이해하는 순간 현실은 엉뚱한 진단과 엉터리 처방만 남게 된다. 엉터리 처방은 젊은이들의 문제를 개선하는데 오히려 해를 끼친다. 저자는 세대간 불평등이 아니라 ‘세대 내부 불평등’에 주목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며, 세대담론이 오히려 이 사회의 거대한 불평등 구조를 축소하고 왜곡한다는 걸 지적한다(29~30쪽). 사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20대에게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동갑내기보다 오히려 주유소에서 함께 일하는 50대 계약직 아저씨가 훨씬 동질적인 집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세대담론이라는 달콤한 약을 팔며 이득을 취하려는 나쁜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세대’라는 허깨비를 몰아낸다는 것은 “각 세대의 고통의 경중을 저울질하면서 청년들이 더 아픈지, 노인들이 더 아픈지 따지며 세대와 세대를 비교하기를 멈추어야 한다(351쪽)”는 것을 뜻이며, 또한 “어떤 세대 개념을 이미 하나의 실체로 전제하는 식의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을 ‘일단 멈춤’ 해야 한다(217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정치인과 언론이 만들어낸 세대담론의 소비자가 아니라, 우리 삶을 말하는 생산자가 될 수 있을 것(7쪽)”이다. 



#기존에 썼던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낀 세대”가 “손해 보는 세대”에게
‘세대’ 신화에 휘둘리는 대통령선거

X세대 Y세대 Z세대 지나 알파세대까지...그런 세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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