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도 안 된다는 말 앞에서
확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는 말도 아니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
“지금처럼만 해달라”는 말,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말들.
그 말들은
약속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힘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들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확정된 미래를 상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기회라는 것이 존재한다고는 믿었다.
그 믿음은
내 태도를 만들었다.
조금 더 보태는 쪽을 택했고,
남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성과는 눈에 보였고,
숫자로 확인되는 결과도 따라왔다.
어떤 순간에는
정규직 직원들보다
앞서는 지점도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하는 일은
늘 환영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른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려가 있다”는 말이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 뒤에
조심스럽게 덧붙여졌고,
누군가를 직접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방향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본부에서
오해할 수도 있다는 말,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 상황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우려라는 말은
속도를 줄이라는 말도 아니었고,
멈추라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라는 요청에
가까웠다.
잘하는 것이
앞으로 가는 이유가 아니라,
조심해야 할 이유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처신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더 달리라는 것도 아니었고,
멈추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 가도 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 모호함 속에서
나는 방향이 아니라
태도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힘이 빠졌다.
갑자기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 없는 회의에서
저런 우려가 나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을 때,
그 힘 빠짐은
더 또렷해졌다.
잘못을 지적받은 것도 아니었고,
직접적인 비난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애매했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도,
어디서부터 달라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일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졌다.
앞으로 가기보다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절하는 쪽에 가까워졌다.
열심히 한다는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열심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더 이상 분명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자리가
앞으로 가는 자리인지,
아니면
머무르는 자리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질문이
이후의 나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