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위로처럼 들렸고, 응원처럼 들렸고,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길이 있다는 말은
대개 좋은 의도로 건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집중했고,
부족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남았다.
누군가는 이미 정리를 시작하지만
나는 마지막 손님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이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하면 길이 있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는 방향처럼 들리지만,
말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미루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길이 있다면,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 말해줘야 한다.
누구에게 열려 있는 길인지,
어떤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인지
최소한의 설명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말 뒤에는 설명이 없다.
질문을 하면
“지금은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지켜보자”,
혹은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말은 남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그 말을 스스로에게 번역한다.
‘아직 부족한가 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내가 참으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길이 없었던 구조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말을 믿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설명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증명하려 했다.
묻기보다 버텼고, 확인하기보다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나를 붙잡아 두는 데에는 충분했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면 길이 있다’는 말이
무책임해지는 순간은
그 말이 선택의 정보를 대신할 때다.
설명 대신 사용되고, 던져질 때,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지연이 된다.
이제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어떤 길인지,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이
지금 나에게도 가능한지.
열심히 일하는 것과
제대로 설명받는 것은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
그중 하나만 요구하는 구조라면,
그건 응원이 아니라
조용한 체념을 요구하는 말이다.
‘열심히 하면 길이 있다’는 말은
아무에게나 던져도 되는 문장이 아니다.
그 말을 건네는 쪽에는
적어도 하나의 책임이 따른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말해줄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