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있다고 믿었던 시작
열심히 달렸다.
멈출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멈추면 안 된다고도 믿었다.
기회가 있다고 느꼈다.
확실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말의 온도는 따뜻했고,
지켜보자는 말에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 여지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속도를 냈다.
주어진 일을 넘겨서 했고,
남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채웠다.
마감이 가까워지면
조금 더 남는 게 당연해졌고,
그게 부담으로 느껴지기 전까지는
그저 성실함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잘하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말,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말.
확답은 아니었지만
그 말들은 충분히
다음 날의 에너지가 되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덜 보태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보태는 쪽을 택했다.
성과는 눈에 보였고,
숫자로 확인되는 결과도 따라왔다.
때로는
정규직 직원들보다
앞서는 순간도 있었다.
그때까지는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하는 일은
늘 환영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앞으로 가고 있었다기보다
달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다.
방향을 세밀하게 확인하기보다는
속도를 유지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 믿음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 방식이
나를 그 자리에 데려다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속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속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처음엔 열심히 달렸다.
기회가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그 시점의 나에게는 충분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