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키우다

어쩌면 주부 우울증은 '자아'를 찾으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by Beverlymom

주부의 건망증은 신이 주신 거다?


둘째 아기가 어릴 때 한 지인이 내게 조언을 해 주셨다.

"자녀는 3명 이상 있어야 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나 더 낳아. 나도 지금 후회 중이야. 둘도 너무 적어. 나이 들어 집이 너무 썰렁해."


그런데 그 곁에 조용히 듣고 계시던 남편분이 넌지시 한 말씀하셨다.


'"여보, 자기 잊었어? 아이들 어렸을 때 힘들어서 울고불고 고생했던 기억을?"


하시며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아내를 귀엽게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그랬지 참.. 그래도 셋 이상 있는 집이 북적이고 부럽더라. 더 낳을 수 있으면 더 나아.“

활짝 웃으며 말씀하시던 선배맘.


신은 엄마들에게 마법 같은 선물을 주었다.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의 고통은 기억에서 지워진다.

모든 걸 다 세세히 기억한다면 엄마들은 둘째, 셋째를 낳을 용기가 없을 거다.


그래서, 아이를 다 키운 친구(선배맘)는 육아맘이 고통을 호소할 때 '뭘 그런 걸로 힘들다 그러니. 라떼는 말이야 그냥 키웠어.' . 이런 액티비티 하면 좋을지 물어보면 '다 필요 없어. 그냥 즐겁게 키워.'라며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한다.

대부분 선배맘들은 그렇다. (기억을 잊은듯)

나는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까다롭게 키웠는지 기억을 하는데 말이다.


엄마들은 신이 주신 선물 덕분에 좋은 것만 기억하고, 힘든 일은 잊은 채 그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너무 힘들어 많이 울었다.

그런데 잠시 셋째가 갖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린 아기들의 육아맘을 거치고 나면 학부모가 된다.

어언 엄마 10년 차면 초등 학부모가 되고, 그 학교에서 파생된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그곳에는 유치원까지의 순수(?)했던 육아 동지들과 또 다른 인간관계가 기다린다.

사패도 만나고, 경쟁 심리가 강한 부모들도 있지만, 아이 덕분에 만난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힘들어서 울때 육아 동지들은 서로 위로를 했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교집합 찾기


주부들은 미래를 키우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다.

일과 가정일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욕심은 내려도 될 듯하다.


나쁜일은 서둘러 잊고, 체력도 정신도 키워서 우울증을 털어 내는 중이다.

이전의 자아도 찾아보고, 엄마로서의 모습도 재정립하여 두 캐릭터 간의 교집합이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내 존재감을 찾기 위해 해 보았던 여러가지 노력들은 모두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

적어도 지하 수십미터로 바닥쳤던 내 자존감은 지면에 다다라 따뜻한 빛줄기를 받으며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의 자존감은 아이들을 키울때 큰 에너지이다.


그렇게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자녀들도 자연스레 엄마를 따라 할 것 같다.


굳이 아이를 낳기 이전의 자아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늘어진 눈가 주름처럼 내 인생을 가족에게만 희생하며 살 필요도 없다.


내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 왜 아이를 낳았는지

내 인생에서 원하는 진짜는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주부 우울증 그 까이꺼‘라 중얼거리며 혼자 극복하려 노력해 보았다.

그 우울증 이유와 해결책은 결국 내 정신에 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더라도, 결국 나 스스로 저 깊숙한 곳에 묻혀있는 답을 찾아내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한다.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였다.

내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그리고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았다. 하얀 종이위에 끄적이며 메모를 하고, 동그라미를 그려 교집합 부분을 채워 보았다.

이 과정에 내 머리속은 어수선하였다.

그런 과정을 지내다 보니, 아무런 요동도 없던 심장이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근거리기도 하면서 가끔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점점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 지고 있음을 느꼈다. 큰 와잇보드에 자다가도 생각나면 적어보았다. 떠오르는 스토리와 아이디어들. 계속 꽉꽉 찻다.

아마도 생각이 생각을 불러내고, 이전의 잠자던 내가 조금씩 신호를 보내는거 같았다.

내 정체성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를 위한 커리어와, 엄마로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등의 생각과 생활 철학 잣대가 세워진다면, 다시금 일어서서 달릴 수도 있겠다.

New Version of Me Illustrated by Beverly Tory



나의 정체성, 새로운 나 NEW ME


어쩌면 주부 우울증은 '나'를 찾으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결혼 전의 내 자아를 잊었다면 다시 꼭 찾아보자.


과거의 추억 소환으로 잠자던 나를 깨우고,

내 심장을 떨리게 했던 사건이나 사람들도 떠올려보고,

지금의 육아 가사에 지친 나를 스스로 보듬어주며,

엄마가 된 후 지금 내 자아를 생각하보다 보면 더 나은 나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을 찾아야 한다.


나를 키워보며 느낀점은 주부로서 항상 지치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다보니 생각보다 나름 많이 성장해 있는거 같다.

둘의 교집합을 찾아가는 여정은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성장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잠자고 있던 내가 가진 재능을 깨우고, 엄마로서 성장했던 부분들을 활용하여 다음 인생을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거다.




큰 태풍이 지나간듯한 지난 일년이었다.

이제 곧 핼러윈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남편이 해고 되었던 작년 그날.


계속되는 가슴앓이와 불화가 있었던 위기의 한해였다.

엄마인 내 마음이 흔들려서 인지, 모든 관계와 가족 생활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어쨌든 저쨌든 버티고 있다.


결혼을 한 후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실직과 새로 시작하는 지금이 나와 남편에게 가장 큰 고비가 아닌가 싶다.


몇달 전 남편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주로 기관과 국가들 처럼 큰 클라이언트들만 만나고, 종일 주식시장 Stock market의 그래프에 따라 울고 웃던 일을 해왔는데,

이제는 직접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해야 하는 뱅킹 Banking 업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여러가지 자격증 공부와 회사 트레이닝, 뉴욕 본사로 출장까지 다녀와야 해서 바쁘고 피곤해 보이지만, 이 새 직장으로 눈앞에 당장 닥친 걱정들이 바로 해결되는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즐거워 보인다.


나이들어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자식들을 위해, 언제 자리가 나올지 모르는 원하는 일을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오히려 더 나은 기회가 될 지 모른다.

언제나 새로운 일은 설레임과 두려움이 반반.

나도 새롭게 일어난다


남편의 실직으로 인한 충격으로 맞닿뜨렸던 흔들리던 정체성.

나를 찾아 스스로 늪에서 건지고 닦고 키워오고 있다.


엄마로서의 자아 + 이전에 나의 자아 = 새로운 자아와 정체성 만들기

어쩌면 더 근사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내 인생에 주체적인 프로이자 엄마가 되자는 마음을 가져본다.


다만 꼭 기억할 일은,


1. 나를 보살피고 스스로 관찰하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 재능은 무엇일까. 요즘 내 마음은 어떤가. 그리고 내 재능을 꺼내어 닦아본다.


2. 매일 조금의 독서와 글쓰기

하루 20분이라도 좋다. 아이를 학원에 내려주고 차에서 기다리면서 틈틈히 읽기도 한다.

만약,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다면 학교, 문화센터등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관련 수업을 청강하는 것도 좋은거 같다.


3. 운동하기

걷기와 근력운동. 체력이 모자라면 모든 일이 즐겁지 않다. 요즘 나는 이쁜 몸매가 아니라 살기 위해 운동한다.


그리고 웃자. 웃음이 헤프다는 말을 들을만큼 웃음을 좋아하던 내가, 요즘은 그 진심어린 웃음이 사라진거 같다.


토닥토닥

이제껏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슬기롭게 잘 할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도 계속 저는 저를 키워갈 겁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저도 함께 키워야지요.

주부 특유의 건망증으로 가슴 아팠던 일들은 잊으며.


-The End-




짧은글 (에필로그)


계절마다 감기가 우리 몸속에 스며 들어오듯이, 우울증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스며들어 올지 모른다.


감기예방을 위해 평소에 비타민을 먹고, 감기기운이 있으면 얼른 약을 먹고 쉬며 더 심해진다면 우리는 병원으로 간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생각만 한다고 여겼는데도 불구 한순간 내 곁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주부우울증이 더 심해지면 독감처럼 병원을 가야하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무시하려고 하는 이들도 많다. 왜냐하면 주부들은 '나', 본인보다 신경을 더 써야할 존재들과 상황이 많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볼 겨를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내 가정전문의는 나에게 여러 상담사를 만나보고 그 중 한두명을 일년에 한번이라도 만나봄을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상담사와 관계를 시작해 놓으면 갱년기가 왔을때 수월하게 상담을 받고, 그 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녀가 추천해 준 방법처럼, 주부들은 상담사를 가까이 두는 편이 좋은거 같다. 요즘은 갱년기 시기가 점점 젊어진다고 한다. 그런 호르몬의 방황기가 올 때 내 곁에서 '합리적‘, ’이성적'으로 잡아줄 사람.

내가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의 기분까지 신경을 안 쓰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을 하면서 대화를 해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상담사이다. (물론 나와 잘 맞아야 한다. 그래서 여러명을 만나봐야한다는 거다.)


나도 상담 경험을 해 보았기에 안다.

30대 초반, 인생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스스로 상담사 문을 두드렸다. 상담사를 만나면 웬지 내가 정신병자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마음의 병이 내 몸으로까지 번졌고, 나를 죽여갔다. 친구들에게 주절주절 같은 이야기를 몇년하는 내 모습도 싫었다.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엉켜있던 마음의 문제가 조금씩 풀렸다. 당시는 가장 사랑했던 두 인물과의 관계에서 왔던 문제인데, 관계의 끈을 처리하는 법을 조언해주셨던거 같다.

가끔은 지금 막 산행에서 만난,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통성명도 없이 헤어질 때 마음이 조금 시원할때가 있다. 상담사가 그러하다. 그들은 전문가이기에 나를 빨리 파악해주고, 이성적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서 좋다. 그 말들이 어디로 세어나가 구설수에 얽힐 걱정도 할 필요없다.

나는 당시 권하던 우울증 약은 먹지 않았다. 아직은 스스로 극복 하고픈 의지가 있었다. 아마도 약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알 듯 했다.


나와 맞는 상담사를 찾는게 관건이지만, 우울증으로 오래도록 힘들어 하는 분들이 있다면, 특시 주부우울증이 있다면 내 가족과 나를 위해 병원문을 두드려보는것도 좋을 듯 하다.


New me 출처: unsplash
이전 11화아이는 왜 낳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