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우울증 그 까이꺼
19살 신입생 시절 어느날, 존경하던 목공예 교수님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디자인 입문에 관한 수업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하거나, 디자인을 구상할 때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하라는 말씀 중이셨다.
'00양은 왜 화장을 하고 다니나. 본인 화장에 대한 철학이 있나?
신입생이지만 삼수를 했던 한 언니를 향해 질문을 던지셨다.
취미로 모백화점 카탈로그 사진을 찍기도 했던 이쁜 언니였다.
항상 풀메이크업 화장을 하고, 노동을 하는 우리 미대 작업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실크 드레스를 입고 등교하던 멋쟁이 언니였다. 급작스런 질문에 언니는 당황을 했고, 답이 금세 나오지 않았다.
화장을 왜 하느냐,,
그전에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지만, 그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래 교수님이 질문을 하면 언제 시킬지 몰라 머릿속은 서둘러 답을 찾는다.)
교수님께서는 '디자이너라면 남들이 한다고 다 쫓아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그것을 왜 하는지 정도는 생각을 하고 거기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그런 가르침을 주시던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난 내가 왜 화장을 하느냐로 시작해, 일상에서 내가 행하는 행동과 연관된 미의 철학을 찾았고,
책도 읽으며 나만의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지만,
어느샌가 그런 사고 능력이 떨어졌는지 당시 교수님이 주셨던 가르침을 게을리하였다.
주변에 나 포함 많은 30대 이상의 여성들은 본인의 몸으로 출산한 자녀들이 있다.
가슴으로 낳은 입양아를 둔 부모들도 많다.
왜 낳았을까요
대학 신입생 시절, 화장에 대한 나의 철학을 갖지 못했던 것처럼,
아이의 엄마가 되는 중요한 일을 하는데,
한번도 나 스스로 '왜 낳아야 하느냐'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혼 = 장남 = 출산 = 가정 만들기
하나는 외로우니 둘째를 가져서 이 드넓은 세상에 평생 친구를 하나 만들어주자,, 정도가 나의 의견이었다.
결혼했으니 당연히 아기를 낳는 것이지.
장손에 장남이라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게 꿈이었어.
사랑하는 사람이랑 똑 닮은 미니미를 낳아서 이쁘게 키우고 싶어.
우리 술 마시고 실수로 생겼어.
아이를 가지게 된 사연에 대해서 여러가지 스토리들을 들었다.
생물학적으로, 종족번식을 위해서?
철학적으로는, 사랑의 결실이라서?
이상적으로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으니 응당 자녀가 필요해서?
사람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과정은 단지 자손 번식을 위한 자연스러운 생태현상일까.
생물시간에 배웠듯 대부분의 생물체는 암수가 만나 새끼를 가지고, 낳아 기른다.
부모가 함께 새끼를 보호하고 키우는 무리가 있고,
북극곰처럼 수컷은 떠나고 엄마 혼자 새끼들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에게 본인의 몸을 그들의 먹이로 주며 죽어가는 파충류 종자들도 있다.
자연섭리에 따르면 종족번식의 이유가 강하긴 한 거 같다.
그런 특별한 이유를 가진 한국인 중에서는 장남에 장손이다.
족보와 선산을 넘겨받아 가문을 이끌어야 하는 장손은 여전히 자손을 번영시키기 위해 후세 양성에 노력을 해야 한다.
덕분에 3대 독자, 7대 독자와 같은 종족 멸망을 불안해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주는 단어들도 등장했다. 당연히 며느리에겐 부담이 되는 단어 들일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3 더하기 5는 8이라는 식을 왜 그런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위의 언니처럼 답이 바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물으면 ' 그냥 알아"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한 개념과 원리를 초등학생일 때 배운 적이 없었다. 물어본 이도 없었다.
기껏해야 주산알로 혹은 연필 세 개와 지우개 다섯 개를 가져다 총개수를 세면 여덟 개가 되고,
그게 3+5=8이라는 식으로 만들어지며, 그 식은 그냥 머릿속 기억장치에 저장되어 있다.
아기를 낳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했으니 응당 '그냥 낳는 거지'. '사랑했으니 낳는 거지', '사랑의 결실'이지.
결혼+아기 = 가족
이라는 등식이 자동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던거 같다.
본인 커리어를 가지고 사회생활 열심히 노력하던 현대 여성이
'그냥, 결혼하면 아기를 낳는 거야. 그냥 알아.'로 생각했다면 나처럼 주부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크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왜 엄마가 되고 싶은지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아빠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그냥 엄마가 되는게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현대 사회,
오래전 호암마마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에 죽어나갈 아이들을 감안하여 가능한 많은 아이들을 낳아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현시대는 종족 번식에 관심이 있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한다.
코비드 시기 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뉴스를 보면,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에 두려웠다.
아이가 없었다면 그 정도로 불안하고, 예민하게 몇 년이란 시간들을 지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집안에 갇혀서 잠도 많이 자고, 책도 읽고, 그림도 많이 그렸을 것이다.
같은 시기, 아이들이 있는 집들의 엄마들은 전투적으로 살아야 했고,
그런 힘든 엄마 마음은 여러 개그 shorts동영상에도 올라와 있었다.
아침부터 이미 술병을 들고 괴로워하는 엄마, 미친듯이 아이들과 동영상을 찍어대는 엄마.
반면, 이런 기존 부모들의 고통을 뒤로한 채 코비드 때 태어난 코비드 베이비도 많다.
어렵게 기다리던 첫째 아기를 가진 지인도 주변에 두어 명 있고, 동네 학부모 중에는 세째들도 많이 낳았다.
'나는 왜 아기를 낳았지?'
주부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 우선인 거 같다.
이미 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지닐 철학적 의문이기엔 늦어진 질문 같지만,
오히려 아이가 있으므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종족번식의 욕구가 전혀 없었는데, 남편이 장남이라 시댁을 위해서 낳았나?
주변 분들이 얼른 낳으라고 재촉해서 낳았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앞으로 나의 정체성 재정립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사실 답을 찾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결국 내가 만난 답은
이런 심플해 보이는 답을 어렵게 찾은 거 같지만, 심플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주변 어른들 그리고 영화, 드라마와 같은 각종 미디어를 보면 주로 가부장제 아래에서 주부들은 참고, 아이에게 희생을 하는 엄마의 삶이 당연한 모성애로 보였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 엄마의 사랑이라고 학습된 거 같다.
나의 엄마도 할머니도 다 그리 하였다.
희생을 하려고 아기를 낳을까. 결코 아니다.
보통 엄마가 사랑을 준다고만 생각한다.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먹이를 목구멍에 넣어주듯, 사랑도 엄마가 아이에게 가득 안겨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들은 사실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기도 한다.
남녀 간의 사랑처럼 부모와 자녀간에도 주고받는 사랑이 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엄마를 무척 사랑한다.
어쩌면 엄마인 우리보다 더 많이 우리를 사랑할지도 모른다.
자녀들의 세상에서 엄마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엄마가 없어지면 본인도 사라질 것 같을 정도의 크나큰 존재이다.
90세가 넘으신 노모를 잃은 70대 할아버지도 '엄마, 엄마..' 하며 울부짖는 것을 보며, 그 마음은 효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지인은 무뚝뚝하게만 느꼈던 대학생 아들이 있었다. 지난해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졌는데, 그때 아들이 엄마를 업고 병원을 뛰어가면서 울었단다.
“ 엄마 없으면 난 세상에서 쥐뿔도 아니야. 아무것도 못해.. 기운 내요 엄마. “
그 아들은 동부의 명문 대학원을 포기하고 지금 엄마를 정성으로 보살피며 곁에 있다고 한다. 물론 본인이 하고자 하던 연구와 사업도 병행하면서,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어른인 우리 부모의 '정성'으로 잘 이끌어간다면 배신당할 일이 없는 그런 영원한 사랑이 된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도 불러주고,
눈을 마주쳐주고, 보석을 대하듯이 갓 낳은 아기들을 사랑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랑을 잊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입고, 먹고, 싸고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부터,
교우 관계, 예의, 읽고 쓰기 등의 학습을 시켜야 하는 등 엄마의 책임들이 점점 더 생긴다.
그것들은 가끔 주부의 스트레스를 야기시킨다.
그 사이에서 엄마와 아이들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서로의 의견이 다름으로써 조금씩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사랑하기 위해서 낳은 존재들이다.
추상적인 단어다.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 안 해볼 수 없다.
10대까지는 사랑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고,
20대는 사랑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고, 사랑이 와도 결국 헤어져서 힘들어하고, 그러면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좌절하기도 했다.
정말로 사랑은 유효기간이 2-3년이라고 강연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사랑을 다룬 동화책, 소설, 드라마, 영화들도 넘쳐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여곡절 사연 많은 사랑들은 결혼으로 골인하면서 영원한 사랑처럼 극은 마친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나오는 엄마들은 소리친다.
'내가 애들 때문에 산다', ' 내가 의리 때문에 산다.', '내가 정 때문에 산다.'
분명 사랑의 끝처럼 언급한 결혼인데,
결혼 10년 차 정도되면 남편들을 '남의 편'이라 부르고, 같은 테이블에서 각자의 신문을 보며 밥을 먹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았다.
밥 먹는 소리, 숨 쉬는 소리도 싫을 때가 있다고 한다.
부부들은 그런 권태기를 잘 극복하고 지나거나 혹은 헤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어른들은 잔소리한다.
(대부분의 그 어른들은 사랑하는 커플이라기보다 친구나 남매처럼 보인다. 본인들도 못한 것을 내게 강조한다.)
권태기가 왔을 때일수록 이쁜 속옷도 입고, 남편 앞에서 미소를 짓고,
부부 데이트도 하면서 사랑을 일구는 거라고.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는지 없는지는 과학적으로 나도 모르지만, 영원한 사랑은 없는거 같다.
시간이 지나 내가 변하는 것처럼, 사랑이라 여겼던 것들도 다른 모습과 마음으로 변한다.
아이와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이와의 사랑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가슴이 벅차다.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만 봐도 좋고 행복하고 흐뭇하고,
코 골고 이 갈고 방귀 뀌는 소리는 10년이 지나도 더 이쁘게 들리고,
자꾸 어루만지고 싶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싶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그 모습이 못내 이쁘다.
항상 곁에 있고 싶어서 헤어질 때 아쉽다.
여기에서 몇가지는 연애초기 사랑에 빠진 이들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평생을 보아도 아이를 보는 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60대 아들이 노모 앞에서 응석을 부려도 노모의 눈에서는 꿀이 떨어진다.
아이 또한 엄마만 찾고 매달리고,
멀리서 보면 뛰어와서 안기고, 사랑한다 속삭이며,
삐뚤삐뚤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라 적거나, 엄마얼굴을 동그랗게 그린 카드를 조용히 손에 쥐어주고 가기도 한다.
엄마는 세상의 전부다.
살아온 생애, 그렇게 누군가에게 큰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은 엄마만이 할 수 있다.
아이를 낳았던 이유는,
갈망하던 사랑을 아이들로 인해 내 인생이 사랑으로 채워지기 위함이었나 보다.
아이가 좋은 학교를 가길 원하고, 아이가 좋은 친구들을 사귀며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사랑이 아니고 소망이다.
그냥 사랑해 보자.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윙크를 해주기도 하고,
안고 비비면서 사랑한다고 고백도 해보고,
손도 만지작 거리고, 볼도 쓰다듬고,
어깨동무도 하고, 혹은 아이에게 내가 안겨보기도 하며 사랑하자.
아이도 엄마를 사랑해 준다.
내가 준 것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 준다.
설렌 연애의 감정으로 아이들과는 평생 사랑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하던 회색빛 가슴도 따뜻해진다.
성장과정에서 가끔 자녀로부터 사랑이 아닌 비수 같은 아픔이 날아오기도 할 거다.
또 언젠가는 아이가 배우자를 만나 떠나가면서,
엄마의 사랑이 짝사랑으로 변해야 할 때가 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행복한 사랑을 평생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내 아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은 거 같다. 적어도 내게는...
만약 주부 역할에 너무 지치고 힘들고, 세상에 나 혼자인 듯하고, 아이들은 내 뜻대로 안되고, 나만 희생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혹은 번아웃이 왔다면,
한 번쯤
'내가 왜 아이를 낳았을까,,'
라는 원초적인 생각을 해보는 일도 도움이 된다.
저의 그 답은 이제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낳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우기 위해서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