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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Jun 28. 2024

신해철이 딸에게 쓰는 편지

가족 (마왕의 생각)

동동아.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니가 학교를 안 다녀도 좋으니까 선생님들한테 맞으면서 학교를 다닐 이유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옛날에 말이다, 아빠 친구 중에서 윤상 이라는 놈이 있었는데 그놈이 부른 노래가사 중에 그런 가사가 있었거든.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이런 노래가사가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니가 한 걸음 더 늦게 간다고 해도 그리 늦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빨리 니가 걷는다면 기쁘고 자랑스럽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거기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어.


니가 만일 학교를 다니다가 1년쯤 학교를 쉬면서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면 아빠가 뼈 빠지게 돈을 벌어서 엄마랑 너랑 둘이서 세상 돌아다니면서 보고 와서 그래서 학교를 1년 꿇으면 어떠니. 

음.. 그리고 대학도 뭐 아르바이트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던가 아니면 세상 여행을 해보고 싶다던가 그래서 남들보다 한 두 해를 늦게 가야겠으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대학을 남들보다 한 두 해 늦게 가든, 취직을 남들보다 한 두 해 늦게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혹여 아예 니가 대학 같은 것은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가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단다. 그건 니 맘에 달린 거지 뭐. 


남들에게 뒤떨어진다라는 그런 어떤 촉박한 마음이나 질질 끌려가는 내 인생이 아니고 그런 기분으로 살기보다는 내 인생에 주인 된 마음으로 살면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간다고 해도 나는 그 모습이 더 마음에 들 것이고. 남들보다 빨리 가면서도 뭔가 좇기는 불안한 눈빛을 내 딸이 품고 있는 것보다는 '괜찮아 괜찮아' 이러면서 '룰루랄라 하면서 가는 거야' 할 때 니 눈빛에 자신감이 있고 행복감이 있다면 아빠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거예요.


뭐 니가 음악을 한다면 그렇다면 무척 기쁠 거란다. 음악을 하면서 세상을 사는 건 세상을 가장 쿨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하거든. 그렇지만 좀 짜증도 나지 않겠니? 보통 부모들이 음악을 했는데 그 딸래미 아들래미들이 음악을 하면 부모와 비교가 되거든. 그래서 좀 짜증 날 수도 있겠지만 쿨하게 사는 거니까 니가 아빠를 옛날에 뭘 했든 상관없이 그냥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음악을 해. 하지만 난 널 가르칠 마음은 없단다. 뭐.. 자기가 좋아서 해야 되는 거 아니겠니.


그러니까 아빠의 결론은 뭐냐면 말이야, 과외 가기 싫으면 학교 가기 싫으면 가지 말고 대학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니 인생이니까. 단지 그때마다 아빠는 너한테 물어볼 거야. "행복하니?"라고 물어봐서 "응!"이라고 니가 대답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렇지 않아? 한 걸음 아니라 두 걸음 늦게 가도 세상은 재밌게만 행복하게만 살면 되는 거니까. 나머지 일들은 다 니가 어차피 알아서 하는 거겠지 뭐. 내가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 해서 뭐 니가 들을 것도 아니고 안 들을 것도 아니고.


단 여기에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는데, 우리 집의 가장은 엄마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결국은 엄마가 결정하는데 달려있는 거지 아빠의 생각은 하등의 영향을 미치질 못해요. 단지 그냥 내가 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빠의 생각은 그렇다라는 거야. 


그럼 엄마가 가장이고 엄마가 모든 걸 결정하는 거라면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아빠는 그런 소중한 엄마와 너를 지키고 보호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만일 급박한 일로 인해서 우리 세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아빠가 먼저 죽음으로 인해서 너나 엄마가 1초 2초만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1번으로 죽어야 하는 사람이란 뜻이지.



@ 2007.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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