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두 번째 신혼여행

좋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좋을지는 몰랐지

by 아름다움

이렇게 여운이 길게 남을 줄은 몰랐다. 20여 년 전,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한참을 그리워했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냉장고에 가득 찬 양파, 당근, 호박을 털기를 위해 만든 볶음밥과 싹 나기 직전의 감자들을 발견하여 감자튀김을 한 후 초토화된 주방 정리를 막 마친 후라 그런지, 눈부신 햇살 아래 George Street에서 셔터를 누르던 순간이 오버랩된다.






"1월 17일부터 글로벌 어워드 참석하러 호주 갈 거야. 여기 비행 일정이랑 호텔 정보."

"우와우와우와... 호주...!!! 거기에 초청이라니... 너무 좋다!!!"

"그런데 애들을 못 데리고 가, 본사에 두 번이나 확인해 봤는데 불가능하다네. 둘 다 매일 참석하는 일정이라."


호주라니... 꿈인가 싶었다. 마침 친한 언니가 호주로 이주를 하며 내가 오면 정말 잘 지낼 거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며 이것은 운명인가 싶었다. 기쁨도 잠시, 아이 둘을 맡기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 머릿속에 엄청나게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닥치면 다 하겠지만, 각자 스케줄이 다른 아이 둘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다. 첫째 행복이의 학원 스케줄 조정, 셔틀버스 시간 및 라이딩 부탁부터 둘째 사랑이 졸업 사진과 유치원 가방 준비까지... 양가 부모님께 드릴 인수인계서부터 작성했다. 아, 가장 큰 이슈가 남았다. 두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행복이, 사랑이가 태어난 이래 12년 동안 엄마, 아빠가 동시에 곁에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특히, 첫째 행복이는 꽤, 아니 엄청나게 슬퍼하고 속상해할 것이 분명하기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몇 날 며칠을 고심했다. 어미의 예상은 적중했고, 다섯 번의 눈물바람과 함박눈이 내리던 날의 마라탕 데이트, 호주에서 폭신한 인형을 꼭 사 오겠다는 약속과 귀국 후 세 번의 데이트 공약으로 겨우 어르고 달랬다 싶었던 순간에도 행복이의 눈물버튼은 또 작동이 되었고, 그 후로도 몇 번의 토닥임과 귀국 후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약속에 대한 몇 차례 거론을 마치고서야 가까스로 남편과 둘만의 시드니행이 가능해졌다.






일주일 동안 나는, 순간순간을 나로 살았다.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행복이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마음이 쓰였지만, 다음날은 분명 나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아이들은 우리가 없는 일상에 점점 익숙해졌고, 남편과 나는 둘만의 매일을 아름다운 시드니에 흠뻑 빠져 보낼 수 있었다.


남편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 정찬과 이벤트에 참석하며 전 세계에서 온 남편의 동료들을 만났고, 나를 만난 남편의 상사는 남편의 인성과 성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워낙 책임감이 강하고 철두철미한 성품이라 열심히 일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들으니, 정말 오랜만에 가족으로서가 아닌, 한 남자로서의 그가 보였다. 이번 어워드에 초청된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이라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공식 석상을 제외한 자유 시간에는 시드니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Sydney Town Hall에서의 Awards Dinner, 정말 아름다웠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코알라와 함께한 달링하버에서의 저녁 (왼쪽),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공연과 파티(가운데 & 오른쪽)




매일 저녁 행사와 함께 주찬이 이어졌는데, 달링하버 근처 테라스식당에서는 캐주얼 룩을, 크루즈 디너에서는 비즈니스 캐주얼 드레스룩, 어워드가 있었던 시드니 타운홀에서의 저녁은 정장 드레스로,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Farewell Dinner에는 햅번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었다. TPO에 맞게 커플룩을 입고 포토존에서 전문 사진작가님의 사진 촬영에도 참여했다. 늘 꿈꾸던 일상의 연속이었다.


크루즈에서의 공연과 디너파티





마침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호주 여행 중인 동생네 가족을 잠깐 만났다.

"언니는 그냥 여기서 계속 살던 사람 같아, 언니와 정말 잘 어울리는 삶을 시드니에서 살고 있네. 정말 신나 보여."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Farewell Dinner'를 마치고 걸어오는 나에게, 동생이 건넨다.

"물 만난 고기 같아."




좋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좋을 줄을 몰랐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 뒤 좌석의 중년의 아저씨가 말을 건다.

"신혼여행 다녀오시나 봐요, 정말 좋을 때입니다. 잘 사세요!"

"저희요? 결혼 15년 차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짜요? 두 분 꼭 신혼부부 같아서, 15년 됐어요? 잘 사셨네!"

"고맙습니다."


남편에게 고마운 게 참 많지만 표현하지 못한 날이 훨씬 많다. 심지어 작년 생일은 이런저런 핑계로 유일하게 바라던 손 편지 한 장을 못 써주고 넘어갔다. 올 해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 애정을 듬뿍 담아 하루하루 표현하며 살아가야지. 이런 마음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