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빔 무빙과 레이저의 화려한 특수조명이 비추는 클럽에서 적당히 예뻐보이는 주홍빛의 술집을 나와, 환하고 밝은 등이 설치된 젤라또 가게로 갔다. 밥은 안 먹어도 디저트는 꼭 먹는 내가 그 날은 무슨 맛의 젤라또를 선택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가슴은 뜨끈뜨끈 달아오르고 간질간질한,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 조절해야 했던 그런 순간이 몇 번씩 찾아왔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기분 좋은 설레임과 짜릿함만이 우리의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어두컴컴한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이제 모공까지 보이겠다 싶은 주백색 조명이 가득한 젤라또 숍까지.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훨씬 멋지거나 너무 이상하거나.
첫 만남의 그는, 클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으니 당연히 적극적인 성격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말수도 적은 편이었고 조용했다. 오히려 상윤의 친구가 분위기를 주도했고, 그는 내 말에 웃으며 호응만 해줬던 기억이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 덕분에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클럽에서보다 술집에서 더 괜찮았고, 술집에서보다 젤라또 가게에서 훨씬 좋아졌다.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고 헤어진 꽉 찬 첫 만남 이후, 두 번째 만남까지 우리는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홍대에서의 두 번째 만남으로 나는 확신했다. 엄청난 사랑에 빠지고 있다는 걸. 상윤은 퇴근 후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종로에 있는 우리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매일, 2년 동안.
상윤은 다정했고 여전히 내 말을 잘 들어 주었으며 매일 나를 보러 왔다. 우리는 열렬히 사랑했고,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약속했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던 날, 나는 스무 명과 연애 한 후 결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스무 명은 커녕 첫 번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린 것이었다.
2010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다.
우리 사랑의 결정체이자 완전체인 행복이, 사랑이가 태어났다. 원하는 둘째까지 건강하게 출산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오물오물 귀여운 입맞춤과 반달눈 미소에 감동했고 감탄해 마지않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잘 키워야 한다는 그 형체 불분명한 책임감과 불안, 완벽주의가 나를 압박하고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내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상상조차 하기 싫은 그 우악스러운 아줌마가 거울에 비친 순간, 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포악하며 드세 보이고 화가 나 있는 얼굴. 내가 경멸했던 그 아줌마.
남편은 나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그런 얼굴과 표정을 자주 마주쳤을 것이다. 나 조차도 보기 싫은 그 모습은 정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 날도 무언가로 곤두서 있는 나에게,
"그 때가 참 좋았는데..."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남편.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가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사랑에 빠져버린 사실. 그로 인해 나를 매우 참하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여성스러움의 결정체로 철썩 같이 혼자 믿어버린 상윤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혼자 오해한 거야, 난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잖아?"
"젤라또 가게에서 서윤이 얼굴을 봤는데 이마에 핏줄이 비치더라고... 그래서 화장도 안 했는데 피부가 저렇게 하얗고 좋구나 했어. 다들 화려하게 화장하고 꾸미고 오잖아, 그래서 오히려 돋보이더라고. 잘 웃고 존댓말까지 해서 그런지 엄청 참하고 착하고 그랬었어."
"오빠, 그 날 아이섀도에 마스카라까지, 풀메이컵 한 거야. 피부 화장도 열심히 공들여서 했는데. 누가 전 남친이랑 헤어지고 클럽 가는데 맨 얼굴로 가겠어...?"
"..."
그는 말이 없다.
후광효과 어떤 대상을 평가할 때에, 그 대상의 어느 한 측면의 특질이 다른 특질들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일. 인물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외모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을 경우 그 사람의 지능이나 성격 등도 좋게 평가하는 일 따위이다.
나는 얇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이마, 관자놀이, 손등, 허벅지 곳곳에 파란색 핏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