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잘 좀 보시지 그랬어요? (1)

스무 명과 연애하기로 결심한 첫날,

by 아름다움

"상윤 오빠?

9월의 평일 저녁, 두 번째 만나는 날. 홍대역 9번 출구 앞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상윤 오빠였던 지금의 남편은 그날의 내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자신을 향해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내 눈에서 하트가 발사되고 있었다고.

"안녕하세요, 밝을 때 보니 또 달라 보여요."라며 인사하는 내 말투는 예쁘고 고와서 간직하고 싶었다고. 사귀기 시작하고 몇 개월 동안은 존댓말을 했다. 남편이 3살 연상이고, 원하기도 했어서 자연스레 이어가다 어느샌가 말을 놓았다.





2008년 늦여름,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슬퍼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이럴 때일수록 밖으로 나가 신나게 놀아야 한다고 했다. 잠깐 망설이다 나가기로 한다. 하도 울어 부은 눈을 급하게 얼음찜질로 가라앉히고, 기분은 울적하지만 티 나지 않도록 꾸미자. 피부는 환하고 반짝이게, 눈은 또렷하게, 드레스코드는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그 님(놈)을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으니 아니면 보여주고 싶을 만큼 오늘은 가장 예쁘고 블링블링해야 하니, 핑크빛이 살짝 감도는 골드펄 아이섀도에 마스카라까지 하기로 한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의상은 얇은 긴팔 블라우스에 와인색 펜슬 스커트이다. 슬픈 날이었지만 오오티디(OOTD_오늘의 코디)까지 마음에 쏙 들어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8시, 친구들과 이태원의 더방갈로(이 글을 쓰는 2023년 11월 7일, 가까스로 기억을 해내 검색하니 아직도 있다. 반갑네.)에서 1차로 칵테일을 마신 후, 클럽에 갔다. 클럽 안은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로 열기가 가득했고, 시끄러웠고 몽연했다. 주말의 클럽답게 남자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몇 명의 남자들도 우리에게 다가와 같이 놀 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거절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기.. 같이 한 잔 드실래요?"

이번에는 두 명의 무리의 남자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들어올 때부터 눈길이 가서 내내 보고 있었는데, 남자들이 옆에 계속 있어서 기다렸어요."

예의 바르고 젠틀한 말투에 얼굴을 돌려 말하는 쪽을 바라보았다. 조명을 받은 그의 얼굴이 살짝 보였는데 '꽤 괜찮은데..?'. 옆에 있던 친구도 그렇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을 했다.

짐작건대 그 후 사는 곳, 나이 등 신상 정보에 대해 물어와 몇 마디의 대답이 오갔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알게 된 이후였다.

재학 기간이 일 년 정도 겹쳤고, 학교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말을 건 남자는 조용한 성격인 듯했고 오히려 그의 친구가 대화를 주도했다. 그의 친구는 외향적이고 서글서글하여 그날의 대화는 꽤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술집으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남자 둘, 여자 넷.

서로 까준 꼬막과 맥주를 먹고 마신 후, 3차는 젤라또 가게로 향했다.



전 남친은 2차부터 잊혀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부터 스무 명은 만나보고 결혼해야지 다짐한 첫날이었다. 상윤 오빠는 그 스무 명 중 첫 번째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