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만 꽂혀있던 긴 시기가 있었다.
행복의 반대편에는 고통과 슬픔, 시련, 불행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어떻게는 이것들은 피하거나 외면해야 하는 말썽거리였다. 삶을 살아가는데 그 누구도 고통과 시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크고 작은 불행들이 꼭 비극적 결말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며, 오히려 어떤 비운은 그 과정을 견뎌낸 우리에게 성찰과 성장하는 삶으로 보답해 주기도 하는, 어쩌면 꼭 필요했던 존재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글을 쓰면서부터.
마음과 머릿속에 뿌옇게 내려앉은 기억과 생각의 조각들이 너무 많은 느낌이었다. 하나의 연결을 이루어 내지 못한 조각들은 어느 순간 훅 올라왔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마음만 어지럽혀 놓을 뿐이었다. 그 사이 하고 싶은 말이 적절한 단어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지 않음에 답답했다. 처음부터 잘 쓰고 싶은 열의는 오히려 마음만 조급하게 만들 뿐이었다. 더 좋을 글을 추구만 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귀하고 아까운 세월이었다. 약속을 어기는 건 마음에 너무나 걸리는 일이기에, 연재일의 압박은 나를 등 떠밀어주는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브런치 북 《내 몸을 사랑하는 일》을 발행하게 되었다.
편집자의 독촉도, 발행일을 어기면 부과되는 페널티도, 내 글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독자들도 없었지만, 내가 정해 놓은 연재일은 힘을 발휘했다. 어쨌든 글을 내놔야 약속을 지키는 작가인 것이다. 그렇게 새벽에, 오후에, 저녁에 틈틈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저 구석에 누워있던 조각조각의 기억과 마음이 맞춰져 갔고, 유리창에 낀 성에가 닦여지듯 머릿속이 조금씩 선명해짐을 느꼈다.
1. 운동 후 뜨거운 탕에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아무 생각 안 하고 멍 때리기를 좋아하며,
2. 벌꿀에 버무려진 그레놀라를 그릭요거트에 섞어 한 입 가득 넣어을 때의 짜릿함을 사랑한다.
3. 오트밀과 버섯을 즐겨 먹는 만큼 뿌링클과 땅콩잼을 듬뿍 바른 크로와상, 생크림 가득한 도넛을 좋아하고,
4. 여럿이서 즐겁게 웃고 벅적 떠드는 시간만큼 홀로 고요하게 침묵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5. 즉흥적이지만 약속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하고, 마음껏 먹기 위해서는 할당량의 운동을 해야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6. 땀 흘리는 상대에게 살포시 티슈 한 장을 건네는 세심함과 배려심이 있으면서도 나만의 기준,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몰랑몰랑한 여리고 착한 마음도, 동시에 확고한 가치관과 태도도 가지고 있다. 상반되어 보이지만 공존 가능한 가치를 추구한다.
7. 나의 생각, 내 느낌, 감정을 알아차리고, 동시에 사고의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내가 중요한 만큼 상대도 그러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8. 내가 갖고 싶은 강점과 매력을 가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9.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고, 솔직하고 다정하게 표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호의를 베풀며 평판을 위한 무리한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찾은, 나의 모습들이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남에게 어필하고,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고, 증명해 보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나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매일의 노력이 쌓이며 변화해 가는 내 모습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낀다. 사람을 움직이는 결정적 동기, '정체성'을 찾은 덕분이다.
정체성,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비밀
자신의 어떤 모습에 자부심을 가질수록 그와 관련된 습관들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일단 뭔가와 관련해 자부심이 생기면 이를 위한 습관을 유지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쓸 것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내가 바라는 최고의 내 모습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스트레칭을 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긍정, 인정, 다정의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며,
오늘 하루 밑바닥을 찍었다고 내일 또 그러리라고 미리 짐작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시시각각 느끼려고 한다.
특별하고 화려한, 행복의 절정의 찍는 한 두 번의 경험은 그 영향력이 점점 희미해지지만, 내가, 내 의지로 만든 일상 속 곳곳에 자리 잡은 습관은 시간과 함께 그 영향력이 더욱 강화된다. 자신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변화시켜 원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