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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 박사를 하고 싶은 이유

국내 국제개발협력계를 돌아보며

by 비욘드발전연구소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근무를 한지도 벌써 1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팀이 농촌개발 ODA 프로젝트들을 주로 기획하고 운영하다 보니, 석사 전공을 잘 살려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갖고 있다. 물론, 실제 업무는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들, 회계/인사 등 행정업무들, 내외부에서 요청하는 다양한 자료들 준비 등등 농촌개발 자체와는 거리감이 있는 일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규사업 제안을 준비하면서는 공부했던 것들, 니제르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보고자 노력했었다.

아무튼 작년 한해는, 기존 사업 관리 뿐만 아니라 신규사업 유치를 위해 제안서를 써보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해외 현장에서 근무하던 것과는 또 다른 것들을 많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민관협력사업 뿐만 아니라 국별협력사업 수행 입찰에도 참여를 해보면서, 국내의 국제개발협력계 전반에 대한 시야를 조금은 더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 1년이 조금 넘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국내 국제개발협력계에 대한 내 생각을 좀 정리해 보려 한다.


첫번째, KOICA 중심의 국제개발협력계. 뭐, 당연한 말일 수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KOICA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다. 우리나라의 ODA가 KOICA, EDCF,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지만 (분절화 되어 있다고 할만큼 너무 다양..), 국제개발협력계에 KOICA가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예산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국제개발 관련 기관들이 KOICA의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KOICA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건 다른 기금 소스가 한정적이니 너무 당연한 상황이고. 기금 유치의 측면을 떠나서 국제개발계에서의 방향성 및 트렌드 등 역시 KOICA가 제시하는 것들을 마치 다른 주체들이 따라가야 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기후변화/젠더에 대한 이슈를 읽고 전략방향을 제시한다던지, 분야별 주요 성과지표를 마련하고 제시한다던지, KOICA는 국제개발 수행기관이 아닌 지원 공공기관의 성격이 더 강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슈와 트렌드를 국내 국제개발협력계에 제시해 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물론 이런 KOICA의 움직임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조금 느리고 그 기능의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지만 국내 국제개발협력계에 계속해서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한 역할이다. 단, 이 글에서는 KOICA의 이러한 역할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기 보다는, KOICA가 아닌 다른 주체들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약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장 내가 속한 기관도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로 국제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지만, 우리 기관이 어떤 전략과 방향성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을 통해 국제개발 사업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공개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내부에서의 논의는 나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의 트렌드나 이슈를 KOICA보다 먼저 읽고 그것을 분석하여 전략과 방향성을 국내 국제개발협력계에 제시해주는 역할은 사실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기관 뿐 아니라 다른 메이저 기관들 역시, 나름의 노력들은 하고 있지만 어떤 이슈를 읽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인들이 연구한 전략을 공유하는 차원의 역할에는 다들 너무나 소극적이다. KOICA가 국제개발기관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따라오라고 리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국제개발 기관들이 KOICA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KOICA가 이를 따라올 수 있도록 가이드해 주어야 한다. 특히 NGO라면, 더더욱 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드보커시.

두번째, 국제개발협력계 내 전문가들의 부재와 분절. 전문가에 대한 정의 자체가 참 쉽지 않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KOICA 내에도, 국제개발 수행기관(특히 NGO)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KOICA는 앞서 말한 것처럼 국제개발 직접 수행이 아닌 지원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분야별 전문가는 외부에서 찾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개발 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기관에서 이런 전문가들이 없다는 사실은, 내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국내 NGO들은 기관의 어떤 사업을 평가하거나 전략을 세울 때, 외부 교수님들을 많이 섭외하여 활용하곤 한다. 이 것 자체가 기관 스스로 전문성 부족을 인정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우리는 전문성이 있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어떻게 보면, 모순이다. 분야 전문가 분들은 참 많다. 농업/보건/교육/환경 등등 각 분야에서의 전문가 분들은 많지만, 국제개발이라는 컨텍스트를 이해하면서 분야 전문성을 활용하실 수 있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현장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국제개발기관 실무자들과 분야 전문성을 가진 외부 전문가들의 조합은 적절한 협업구조인 것 처럼 보이지만,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국제개발기관 실무자들이 현장과 분야 전문성을 함께 갖추는 것이 아닐까. 우리 실무자들이 이러한 욕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실무자들이 학문을 배우고 싶어하고 본인의 전문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 전문성에 대한 기관 차원에서의 인식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모든 실무자들이 석박사의 학위를 갖추자는 말은 아니다 (학위 수준이 그들의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외부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그 역할과 책임에 따라 분야별 지식, 연구와 분석능력을 갖춘 인력들이 수행기관 내부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박사를 하고 싶다. 뭐,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말한 두가지를 조금이나마 뛰어넘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국재개발을 직접 수행하는 주체들이 KOICA보다 먼저 이 분야의 이슈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분석해서 다양한 해결방안과 전략들을 여러 주체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하고, 개발사업 직접 수행기관에서 현장에 대한 이해와 함께 분야 연구/분석 능력을 모두 갖춘 인력으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 욕심은 결국, 이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고민할 것들이 많은 분야이고, 전세계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고민들을 공유하고 함께 연구하며 그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분야이다. 내가 적은 고민들을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도 많을 것 같다. 정답이 없는 분야인 만큼, 더욱 많은 고민들과 논의들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이 국내 국제개발 협력계에도 마련이 되었으면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jmmnews.com/exploring-the-performativity-of-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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