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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OND DEVELOPMENT Apr 16. 2023

[국제개발 에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자신감과 자만함 그 사이에서

니제르에서의 파견 근무를 시작한지 1년이 넘어갈 때 즘, 니제르에서의 생활이나 업무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내가 대상 지역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환경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했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은 나름 나의 업무 퍼포먼스에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자신감으로 인해 그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점점 줄어 들었다. 내 눈에 보이는 만큼, 내가 인지하고 있는 만큼이 이들의 삶이고 이들 삶의 경계라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이런 자만에 빠져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리고, 2년의 파견 생활이 끝나갈 무렵 그 착각을 크게 깨부수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농축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직원이 와서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업 대상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10가구 미만의 주민들이 작은 부락을 이루고 생활하고 있는데, 왜 자기들에게는 아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느냐고 크게 컴플레인을 걸었다는 것이다.


외국인인 내가 개입하는 것보다는 프로젝트 담당 직원들이 직접 잘 소통해서 정리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다행히 더 큰 오해가 생기진 않았지만,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자만함이 그대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기관은 5년 넘게 그 지역에서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와도 긴밀하게 협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상 마을의 인근 지역에 작은 부락을 이루고 살고 있는 또다른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다. 지방정부 측에서도, 대상 마을의 리더들이나 주민들도 인근에 위치한 이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우리 직원들도 그들의 존재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들은 어떤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까. 우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로 인해 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것 역시 부정하지 못할 현실이었다.


대상 지역(군)에서는 500-1,500명 규모의 주민들이 모여서 50여개의 큰 마을들을 이루고 있다. 각 마을들은 5-10km씩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고, 마을들 사이사이의 공간은 우기 때 농사를 짓는 농경지로 채워져 있다. 마을(village)이 행정구역의 가장 마지막 단위이기 때문에, 이 마을 단위를 중심으로 모든 지역개발 활동들이 기획되고 진행되고 있었다. 그 마을 안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전체 마을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어 왔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항상 바라보고 있던 그 지역 바로 옆에 내가 존재 조차 모르던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이 지역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해 왔을까, 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자신감과 자만함 그 사이. 낯선 곳에서 일 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자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작은 순간이면서, 큰 차이를 낳는다. 내가 타인을 많이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과 자만은, 충분한 고민과 공부 없이 타인의 삶에 개입하려는 태도를 용인해 버린다. 내가 아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을 경계로 타인의 삶을 가두어 버린다. 충분히 인지하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이들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 경험 이후로도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타 국가의 중앙/지방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주민들과 미팅을 가지는 경험들을 해오고 있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보고 듣고 알아보려 하지만, 이 짧은 노력으로 지역과 주민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 우리의 개입과 활동들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인지하지 못한 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너무 깊게 고민하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무 것도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지점에까지 도달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지나친 확신을 가지는 일은 없도록 노력한다.


혹시 또 내가 보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이 두려움은 더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 두려움이 계속 살아 있어야 그나마 실수를 덜 저지를 것 같기도 하다.


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하는 이 일이 자칫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 이것이 우리가 국제개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이유일까. 끝나지 않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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