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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 성과관리 패러다임의 전환

관리(management)가 아닌 학습(learning)으로

by 비욘드발전연구소

국내 국제개발협력계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 '성과관리'.


서구에 비해 국제개발협력의 제도적·역사적 출발이 늦었던 한국의 맥락에서, 변화이론이나 PDM 개발과 같은 기초적 개념과 도구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성과관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많은 기관과 실무자들은 성과관리를 위해 변화이론 수립, PDM 개발, 성과지표 설정 등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자 하며, 사업 수행 과정에서 이러한 틀 안에서 사업이 목표한 성과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해 ‘성과관리 역량강화’를 목적으로 한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컨설팅이 개발·제공되고 있는 최근의 흐름은 분명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국내 국제개발협력계에 필요한 것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이다. 이는 성과를 '관리'하자는 관점에서 벗어나, '학습(learning)', '적응(adaptation)', '실행 중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과정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성과관리’라는 개념은, 성과를 설계하고 측정하며 관리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데에 무게가 실려 있다. 성과관리라는 단어 그 자체에서 느껴지듯이, 이 용어의 사용에는 '우리가 목표한 변화는 우리가 관리(manage)하고 감독(supervise)할 수 있다'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국제개발에서 다루는 변화(영향, 성과)는 비선형적(non-linear)이고 비의도적인(unintended) 효과를 동반하며 다양한 정치·사회·환경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특성을 고려할 때, ‘성과관리’라는 용어는 국제개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개념적인 한계를 지닌다.


특히 최근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분쟁, 팬데믹과 같은 고도의 불확실성과 복합위기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성과를 사전에 설계된 계획대로 관리·통제할 수 있다는 접근의 한계를 더욱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핵심은 변화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맞춘 '변화이론의 지속적인 재검증'과 이에 따른 '전략 수정', 더 나아가서는 '경험을 통한 학습'이다. 이미 국제사회의 여러 NGO나 관련 기관들은 이러한 관점을 함께 공유하며 모니터링과 평가를 단순한 성과 점검 수단이 아니라, '실행 중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조직과 사업이 학습하며 적응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MEAL(Monitoring, Evaluation, Accountability, and Learning)이라는 용어는 ‘성과관리’의 다른 표현이 아니다. 이는 강조점과 문제의식 자체가 다른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성과관리’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 자체가 오늘날 국제개발협력에 요구되는 핵심적 관점들(학습, 적응, 실행 중 의사결정 지원)을 실무에 적용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부차적으로 취급하는지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용어 사용의 변화는, 곧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이미 공공기관과 발주처를 중심으로 ‘성과관리’라는 용어가 제도화되어 있어, 단기간에 이를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민간 영역과 현장 중심의 실무자 그룹에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용어와 관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공공 주도의 패러다임 전환은 너무 느리고 둔할 수밖에 없다. 혹은 영영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 제기와 용어 전환의 시도 자체가, 민간 영역이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advocacy 활동의 한 형태가 아닐까. 민간에서의 다양한 목소리들로부터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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