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된 아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동화책들을 접하게 됐다. 아기에게 읽어주는 동화책 시장의 판도가 소리와 그림이 풍부한 사운드북이 대세인 요즘, 나도 몇 권을 구입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메이저 출판사의 책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특히 동물원의 동물 소리를 담은 책은 정말 놀라웠다. 얼마 전 동물원에 갔을 때 들었던 생생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그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개구리 소리에 깜짝 놀랐다. 우리가 흔히 "개굴개굴"로 알고 있는 개구리 소리가 아니라, 정말 실제 개구리의 울음소리였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개구리에 얽힌 추억이 많다. 나는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요즘은 그 소리는 일절 들을 수 없다. 시골 본가에는 앞마당에서부터 들판과 논을 끼고 있다. 지금은 한창 모내기 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일반 토종 개구리만 울대를 한껏 부풀리며 울고 있다. 황소개구리가 소리가 사라진 이유는 민물고기들이 그 알을 죄다 잡아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논에 황소개구리가 퍼질러 놓은 알무더기가 푸짐하게 퍼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
어릴 적 TV 프로그램에서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패널들이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뱀은 사실 실뱀이었고, 시골에서는 흔한 존재였다. 명칭만 뱀일 뿐 사실 뱀이라고 보는 것보다 약간 큰 지렁이라고 치는 게 더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전투력이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그냥 작은, 정말 작은 뱀의 외형을 한 지렁이 같은 녀석이다. 그 뱀을 보고 놀랄 필요는 없었는데, 프로그램에서 과장되게 연출했다. 실상은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기 어렵다(뱀의 턱이 얼마나 끔찍할 만큼 크게 벌어지는지 안다면). 황소개구리가 아니라 황소도 그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한편 황소개구리를 잡아오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사촌들이 한바탕 황소개구리 소탕 작전을 벌이고 이장님께 갖다 드리면 빨래 비누를 받곤 했다. 실제 편성된 예산보다 잡아오는 양이 막대하게 많아지면서 이장님이 재량으로 빨래 비누를 주셨다. 그 시절에는 이장이 중간에 떼먹거나 쓱싹 하는 일은 없었다(당시 그런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따까마시'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었다). 오히려 이장은 봉사하는 직무로서 자신의 시간과 예산을 더 들여가며 마을을 위해 헌신하는 존경받는 직무였다.
당시 배정된 포상금 예산이 턱없이 제한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황소개구리를 잡아오면 포상금이 금방 소진되곤 했다. 그래서 이장님은 빨래 비누를 포상으로 주며 일명 '와리깡'을 해서 더 많은 인원에게 분배하려고 노력하셨다. 그 시절 빨래 비누는 귀한 물품은 아니었어도, 마당에서 손빨래를 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물품임은 틀림없었다. 여러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기 위한 이장님의 지혜였다.
지금은 황소개구리가 씨가 말랐다. 우리 집 앞에 흐르는 개천에는 아직도 미꾸라지가 득실득실하게 잡히고, 토종 물고기가 풍부하다. 작년에는 삼촌이 구렁이만 한 민물장어를 두 마리나 잡아서 온 가족이 모여 뜨끈한 장어탕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고기를 잘 모르지만 남편 말에 따르면 그만한 크기의 자연산 민물장어는 돈으로도 사기 힘든 귀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와 동물 소리가 나오는 책을 읽으면서, 시골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개구리 소리는 그 시절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를 생생히 연상시켰다. 한때 생태계 파괴종으로 낙인찍혔던 그 녀석은 이제 기억 속에서 살아있다.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는 나에게 시골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아이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이 모든 것이 사운드북 한 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육아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고,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험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험 속에서 아이와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