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지난주
비난이 집중될 때, 그것을 경계함은 비난 자체가 중심이 되는 것을 염려해서이다. 그리고 비난조차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의 기재가 재빠르게 작동하는 탓이기도 하다. 그렇다. 예상하셨다시피, 다음 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난은 위와 같은 부차적인 근심 이전의 ‘필요’에 방점을 찍어둘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사회 구성원 전반이 쌓아 둔 공동의 품격을 훼손함에 대한 비난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비난은 우리의 감각에 저열함이 닿는 바로 그 순간,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다. 따라서 차라리 이런 ‘반사적 비난’은 문명의 개념에 수렴한다. 마침 ‘지난주’, 모국어를 공유하는 우리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누적한 인간다움에 위해를 가하는 아연실색할 만한 기사 제목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그것이 시신경에 닿는 바로 그 순간, 동시대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반사적 절규로 본고를 시작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황색(黃色, yellow)은 언론(言論, journalism)과 조응하여 선정주의적 경향을 띠는 저널리즘을 이르는 데 쓰이는 색이라는 불명예를 지닌다. 그 배경에는 한 아이가 있다. Yellow Kid. 최초의 컬러 만화의 이름이자, 동명(同名)의 주인공 이름이다. 1889년 당시 조셉 퓰리처가 이끌던 《뉴욕 월드》 紙 일요일판에 황색 옷을 입은 소년 《옐로 키드(yellow kid)》를 게재하였는데, 《뉴욕 저널》에서 출간의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결국 선정주의(sensationalism)의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 그러자 이 소년의 상징색인 황색이 선정성 경쟁의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결국 황색 언론(黃色 言論, yellow journalism)이라는 말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여기, 우리들의 노란 아이를 찾는 일은 도리어 그것을 찾지 않기가 매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우리의 손에 들린 작은 기계 속에는 그 옛날 미국의 거대 언론사가 전쟁을 치르던 와중에 탄생한 황색 언론이 그야말로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때와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지금, 여기, 우리들의 황색 언론이 갖춘 양상을 짚어 본다.
종이신문을 사서 읽는 행위가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요즘,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끄는 제목을 누르는 방식으로 뉴스를 접한다. 따라서 클릭 횟수는 그 자체로 언론사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력을 지니게 되었다. 모든 언론이 사실에 근거하여 양질의 분석 기사로 경쟁에 뛰어든다면야 더 바랄 나위 없겠으나, 전혀 반대의 양상을 보게 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노골적이고도 자극적인 제목이다. 낮 뜨겁다는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뉴스 기사와 음란물 제목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이제 기본 소양이 된 듯하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수법과 더불어 흔히 이용되는 것이 섬네일로 불리는 작은 이미지의 활용이다. 핵심이 되는 사진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관련된 삽화를 그려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역시 자극적인 제목의 활용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황색 언론의 선정성 경쟁의 주된 수단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와 물량으로 기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오늘에 이르자, 하나의 기사에 대한 생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의지는 부각되었다. 결국 포르노의 그것과 구분이 쉽지 않은 제목에 더하여, 더 순간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삽화의 활용도 능수능란한 수준으로 진일보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여기, 우리들의 황색 언론이 취하는 전투태세로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에 대한 노골적 성적 대상화이다. 악명 높은 세계적 미디어 제왕인 루퍼트 머독이 영국 땅에 발을 디딘 후, 《더 선》紙의 3면에 상반신 누드 차림의 여성 사진을 무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어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우리들의 황색 언론은 이 지점에서 굳이 한발 더 나아가 노출 전문 모델과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는 지경으로 진화했다. 이것이 단지 저질 언론사의 경거망동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아니하고, 소비자의 적극적 수요에 의한 자연스러운 공급 양상이라면 그 우울함의 정도가 같을 수 없다. 심지어 여성 대상 폭력 범죄에 대해 본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함을 강력히 반발하는 일반 남성 소비자가, 피해자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된 기사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클릭을 했다는 지점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아찔해지는 것이다.
차마 옮겨 적기에도 낯 뜨거운 기사의 제목이 용서받을 수 없는 최대의 죄목은 피해자를 또다시 가해했다는 지점에 있다. 역시 차마 되뇌기에도 참혹한 사건으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피해자에 대해 최소한의 인권은커녕, 「헤럴드 경제」는 사건을 세상에 알린다는 둔갑 뒤로 또 한 번 피해자를 발가벗겨 전시하였다. 성폭력 사건은 그 자체의 근절이 유일무이한 목적이므로 성폭력을 보도할 때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입장을 배려하고, 철저하게 피해자의 관점으로 알려야 한다. 또한, 언론은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는 것을 지양하여야 한다. 이것은 필자의 주장이 아닌,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 명시된 사항이다. 향후 해당 신문사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사례’를 보도할 시, 실소를 금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요즘은 글보다는 이미지로 내용을 전하고는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미지의 활용에 있어 「뉴스1」이 보여준 작태는 본 사건을 해당 언론사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저 아주 좋은 외설적 도구에 불과했음이다. 그런데 이처럼 저급한 삽화의 활용 또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서 명백히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9.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피해자 등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특히 삽화, 그래픽,
지도 제공이나 재연 등에 신중을 기한다.
‘신중을 기한다.’ 분명히 ‘신중을 기한다.’라고 되어 있다. 바빴을까? 많이 바빴을까? 한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도, 어떤 신경들은 반응할 수 없을 만치 빠르게, 그저 자극적으로만 결과물을 만들어야만 업을 유지할 수 있기에 도무지 신중할 수가 없었을까? 동의할 수 없다. 동의해서도 안 된다. 자신들이 만든 원칙도 준수하지 않을 정도의 신경들로 이루어진 조직의 의도적 둔감성에 분노한다. 그저 일단 계좌를 불리고 보자는 암묵적 동의가 가장 약한 고리를 여지없이 끊고, 짓밟고서는 흔한 핑계를 들이미는 작태에 항거한다. 대체, 지금, 여기, 우리의 노란 아이는 어디로 가고 있나?
일련의 전개에서 차라리 희망의 안경을 쓰고 주지할 사항은 목소리를 내는 우리의 힘에 관한 것이다. 해당 기사가 나간 이후 SNS를 중심으로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이것은 앞서 설하였듯, 타인의 의견을 묻는다거나, 좀 더 심오한 차원에서 고려해볼 만한 사항조차 아니었다. 즉자적으로 ‘이것은 아니다’는 반응으로 일제히 분노한 것이다. 이 중에는 실제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전화를 건다든가 헤럴드 경제에 담당 기자를 바꾸라며 성토한 이도 있었다. 견딜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일 오전 몇몇 분은 언론중재위원회와 헤럴드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분노 표출이 그 어느 경우보다도 빠른 사과를 끌어내었다. 대단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유사한 사안에 대해 전에 없던 비난의 목소리를 응축해 내어 사과까지 하게 한 것이다. 분명히 의미가 있다.
결국, 필자가 본고를 작성하는 2016년 6월 5일의 하루 전인 4일 「헤럴드 경제」측에서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런데 이 사과문 어디에도 정작 이와 같은 제목을 단 기자가 누구인지, 그것을 승인한 데스크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또한,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관한 사항도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나와 있지 않다. 무엇보다, 사과문을 가로지르는 광고를 보며, 대체 이 악습이 끊어지리라는 믿음이나 희망이랄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극은 좀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모양새다. 우울한 계절이다.
참고 사항
‘황색 언론’ 관련
- 위키백과 : ko.wikipedia.org/wiki/황색언론
- JTBC 뉴스 : 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736759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 한국기자협회 : 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1
첨부 이미지
커버 이미지 및 *
- 위키백과 : ko.wikipedia.org/wiki/황색언론
** 및 ***
- 페이스북 「강남역 10 출구」 페이지 : facebook.com/gangnam10th/posts/232107160506871
****
- 헤럴드 경제 : biz.heraldcorp.com/view.php?ud=20160604000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