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들

열다섯 번째 지난주




소설 쓰고 있네


어느 전(前) 대통령이 진단하였듯,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권력의 위계는 곧 자본의 위계일까? 얼핏 그렇게 보이지만, 회의적 판단 또한 가능하다. 자본 이전의 어느 존재에 의함이다.


“소설 쓰고 있네.”


어느 단계에 이르러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렸을 적 부모나 선생님은 굳이 어른들의 세계로 분류되는 것들의 정보 값을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조금 성장한다고 해서 여건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군대와 같이 서열 체계가 확고한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만 하더라도 더 높은 직급 간에 공유하는 정보는 소위 아랫것들에게 애써 전달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현대사회에서 부르는 성공의 척도는 명예와 자본의 축적이 아닌, ‘고급 정보에 누가 더 접근해 있는가?’ 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거가 희박할지언정, 더 흥미로운 쪽에 쉽게 현혹되고는 한다. 필자는 이를 흔히 유통되는 언사를 빌려 ‘소설을 쓴다’고 갈음할 참이다. 유독 지난주 몇몇의 이슈들은 정보의 빈곤이 파생한 소설들을 상기시켰다. 그 단면을 들추어 본다.








소설 하나 _ 집단은 개인보다 비도덕적인가?


사람들은 걱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를 기쁘게 했던 공동의 기억이 한 번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그리고 대개, 1인인 선수 개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대한 힘을 지닌 협회나 연맹은 부도덕하거나 비리의 온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영연맹이 진실로 부도덕한 집단인지에 대해 명확한 정확한 정보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취약 종목인 수영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박태환 선수가 걸어온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여정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 위에서, 박 선수의 금지약물 복용 혐의가 붉어졌다.


5.JPG * 박태환 선수에 우호적인 댓글의 반응


기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수영 연맹 입장에서는 박태환 선수가 한국의 마지막 수영선수가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또한, 박 선수의 공로를 치하하는 문제와는 무관하게, 부정한 방법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옳지 않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수영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지극히 정의에 부합하는 행위인 것이다. 문제는 대중이 집단적으로 이를 수용하지 못함에 있다. 당장 유력한 올림픽 메달이 하나 날아가는 차원을 떠나, 그간 박 선수를 응원했던 우리들의 시간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기 힘겨운 사람들은, 아직도 이 사건을 ‘거대한 연맹에 맞선 한 불운한 선수의 분투’ 이상으로 받아들인 준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용인할만한 근거가 분명했던 빅토르 안(안현수) 선수의 경우를 유사한 사례로 설정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파벌 간의 갈등이라는 실체적 근거가 있었던 안 선수의 경우와는 분명히 다르다. 현재로써는 한국 수영의 미래에 방점을 찍은 수영연맹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다. 우리는 부족한 정보로 어느 조직의 비도덕성을 지적하며, 선수 1인을 동정하는 심정적 공감의 소설 쓰기를 넘어서야 한다. 차라리 유의미한 근거를 기저로 삼은 판단에 수긍해야 하며, 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때로는 우리의 직관적 판단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흐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소설을 보자.





소설 둘 _ 진정 뉴스는 가려지는가?


지난주, 유명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가 저지른 범죄 소식이 전해졌다. 피해자가 하나 둘 늘어나며 사건은 성폭행 자체의 부도덕함보다는, 화장실이라는 가해자의 범행 장소를 두고 희화화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해당 연예인이 홀로 특정 장소에서 기이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닌,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하기에 이 같은 가벼운 농담들도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지만, 더 엄중히 바라볼만한 이슈를 파생한 관계로 일단 시선을 돌린다. 바로, 특정 뉴스로 다른 것을 뒤덮는다는 횡횡한 믿음이 그것이다.


생소한 경우는 아니다. 2011년으로 돌아가 본다. 이 무렵부터 큰 인기를 누렸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는 대중들의 이와 같은 인식에 적지 않게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그들의 첫 번째 에피소드 ¹ 였던, 연예인의 파경 소식과 그 영향에 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에 근거하면, 그 어떤 세력이 대중들을 현혹하기 위해, 더 적확히는 더 거대한 실체적 진실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 연예계 소식을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유독 그 이후 연예계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져 나올 적마다, 이 기간에 묻히는 다른 뉴스의 꼭지들이 SNS상에 떠돌았다. 과연 근거가 있는 주장일까?


3.JPG ** 박유천 씨 사건으로 묻힌 기사가 있다고 전하는 KBS 공식 트위터 계정


알 수 없다. 질문을 상정하고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 송구스럽다. 다만, 반복적으로 주지하듯, 필자 또한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고급 정보에 가까울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엄밀한 설계에 의해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슈들이 조직적으로 조작되는지의 여부 또한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알 길이 없으니 그저 기관이나 상부에서 전하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을 잠재적 악으로 규정하고, 이 흐릿함에 기대어 미약한 단서들로 그럴듯한 추론을 한 이후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주입하듯 설교하는 것의 위험함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덧붙여, 그와 같은 추측이 환상처럼 뿌리내려, 오히려 불신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도 따져볼 만한 사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군가가 뉴스의 확장성을 조작한다는 의심 이전에, 뉴스를 수용하는 일반 대중이 같은 값으로 자신의 눈앞에 기사들이 펼쳐진 가운데에서도, 연예계 관련 소식을 먼저 클릭할 것이라는 의심이 차라리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도무지 굽히기 힘든 것이다.


뉴스의 확장성에 대한 조작을 의심하는 목소리 뒤에는 ‘더 중요한 뉴스가 존재한다.’는 신념이 있다. 일차적으로 어떤 뉴스가 더 중요한지는 냉정히 짚어볼 만한 사안이다. 그리하여 짚어본다. 박유천 씨의 성폭행 범죄는 구의역 사고와 같은 맥락에 있다. 성(性) 노동자의 낮은 지위라는 변함없이 나약한 고리가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세상 밖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여성들이 더 은밀한 장소에서 강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은 분명, 주목해야 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이 사안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기에, 다른 뉴스들로 이를 덮었다고 단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위 ‘묻혔다’고 주장되는 방사청 손실, 공기업 민영화, 옥시 前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뉴스 등은 이번 박유천 씨의 사건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많이 일반 대중에게 소위 ‘뉴스거리’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위와 같은 소식들이 일상이었음을 환기한다. 연예계 소식에 다른 뉴스가 가려졌다는 쉬운 전언은, 그저 우리가 믿고 싶은 ‘배후의 누군가’라는 존재를 설정하고, 조회 수를 높이고자 했던 사람들의 수단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근거의 희박함에 근거했다는 역설이 써 내려간, 또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리고 非소설 _ 다가가는 사람들


「나는 꼼수다」는 그 프로그램이 마친 이후에도 유사한 방송을 이어 나갔다. 특히 주 진행자였던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김어준의 파파이스」는 세월호에 대해 그 어떤 방송 매체보다도 심도 있게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빈약한 정보에 근거하여, 음모론 수준의 주장을 재기함으로써 그저 이와 같은 자극적 논조의 주 소비층에 어필하는데 그쳤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세월호 고의 침몰설’과 같은 이슈를 위한 이슈의 양산은 극단적으로 사안을 전개하는 것에만 치중하여,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음은 차치하더라도, 자신들의 매체가 지닌 특성을 유지했다는 의의 이상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 무엇보다 지난주 「미디어 오늘」의 문형구 기자에 의해 작성된 기사와, 그 기사를 작성하기까지의 문 기자와 「미디어 오늘」의 태도와 비교하여 명징한 대조를 이룬다.


문형구 기자는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가는 철근 400톤 실렸다”는 기사를 통해, 세월호 침몰 당일 제주 해군기지로 향하는 세월호에 철근 400톤이 선적된 사실을 밝히고, 세월호가 침몰 전날 무리한 출항을 한 이유가 제주 해군기지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반 서류 등의 근거를 제시하며 재기했다. 이 기사에 근거하자면, 국정원의 개입에 대한 단서와 무리한 출항이 모두 설명된다. 또한 「김어준의 파파이스」가 주장한 "고의 침몰설"이라는 한 편의 소설을 불식시킬 수 있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로는 문형구 기자를 비롯한 「미디어 오늘」에서 거의 1년 동안 추적해서 보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민감한 사건을 대할 때, 그 근거를 차곡차곡 모아 나가는 것이, 그럴듯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것임을 깨닫게 한다.


문형구 기자 못지않게 세월호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지난주 세상을 떠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을 헤엄치며 단 사람이라도 더 찾고자 했던 그의 숭고한 열정은 단지 아픈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그치지 않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으로도 읽을 수 있다. 문형구 기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 발, 한발 다가서는 일은 너무나도 고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 진정으로 알아주거나, 노고를 비추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쉽게 링 밖에서 박수를 치고, ‘좋아요’를 누르며 마음만은 함께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멀다. 기억해야 할 죽음이 늘어나는 동안, 소설을 양산하는 언론 매체들이 이처럼 우직하게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길을 비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심으로 잠수사 김관홍 님의 명복을 빈다.


ClOlZHoVAAAAzbm.jpg *** 세월호 유가족 측에서 내어 건 故 김관홍 잠수사님 조문 현수막








소설은 없다.


고급 정보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증권가 찌라시를 나눠보며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사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쉽게 전언한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만족이라는 나름의 이익을 챙겼을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사건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우리 대부분으로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상이 거대한 소설이라 해도, 우리는 소설밖에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전지적인 시점을 취하여 보여주지 않는 한, 우리에게 제공된 빈약한 정보만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이 와중에 그럴듯한 소설 아니, 음모론으로 조회 수를 높이고 인지도를 쌓으려는 모든 시도와 그것을 무심하게 쫓아가는 우리의 모습 모두, 사회의 신뢰도를 낮추는 일에 기여한다.


이처럼 하나의 사안에 그보다 많은 음모론의 열매가 자라나는 것은, 그만치 우리 사회가 불신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다. 음모론은 체계적으로 사고하겠다는 사회의 약속이 무너지는 가운데 성장한다. 신뢰는 집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믿음 위에서야 또 다른 믿음이 가능하다. 견고하지 않은 믿음이 쌓아 올린 공들이지 않은 탑을, 불신이 파생한 음모론은 손쉽게 무너뜨린다. 우리가 음모론을, 소설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소설은 없다. 주지할 단 한 가지 사실은, 그 어떤 사회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시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참고


¹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1회, 서태지-이지아 파경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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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진, 뉴시스, 박태환 측 "CAS에 심리 요청.. 국내 가처분도 고려", 기사 중 다음 뉴스 상 자막 캡처

- sports.media.daum.net/sports/general/newsview?newsId=2016061614575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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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천 사건에 묻힌 뉴스를 언급하는 KBS 뉴스 공식 트위터 계정 화면 캡처

- twitter.com/KBSnews/status/74407219761500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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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의원실

- https://twitter.com/hcrohcamp/status/744120225008738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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