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지난주
지난주에는 두 가지 주요한 시간의 흐름이 겹쳐 지났다. 하나는 미래로 향했고, 다른 하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졌다. 두 시간은 전혀 관계가 없는 듯 보이면서도 이어졌다. 혹은 이어져야 했다.
이웃집의 문을 두드려서 ‘아니, 이제는 후보는 A 씨를 뽑고, 당은 B 당을 찍읍시다.’라고 논의를 한다거나, ‘지역 구도를 깨뜨리자’는 안건이 반상회에서 채택된 적이 명확히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국민 전체가 하나의 펜을 잡고 설계를 하듯 힘의 균형을 맞추는 가운데, 기존에 우위를 점하던 세력에게는 타격을 입혔다. 지난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은 내로라하는 정치 평론가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로 막을 내렸다. 이를 두고 ‘전략 투표’니, ‘지역구도 타파’니 하는, 한 걸음 더 들어간 혹은 한 차례 걸러진 분석의 용어들이 들려온다. 물론 이와 같은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그런 선택이 이루어졌는가 대한 답변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신익희와 장면이 내세운 구호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였다. 필자는 이번 총선에 대한 전국적인 단 하나의 외침 또한 바로 이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급진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나라의 국민이었다면, 임금이 줄어들고, 직장을 잃고, 가정이 빚더미에 짓눌린 것에 대한 항거로 광장에 나가 짱돌이라도 던졌을 터인데, 이 선량한 국민들은 벼르고 벼르다가 투표장에서 표를 던지는 것으로 외친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야당이 잘해서 이룬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너무 힘이 드니까 가장 가능한 대체재로 일단 갈아본 것이고, 그래도 불안하니 3당을 뒤에 배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시간으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날, 비가 내렸다. 그간 '슬픔', '바람', '충격', '분노', '음모', '배격', '다툼', '호소', '공방', '절규', '기억' 등 '진실' 이외의 모든 형용이 가능한 대상으로 변모해온 가운데, 여전히 세월호는 바닷속에 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을 상급자에의 보고로 허비하고,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며, 희생자의 가족을 세금도둑으로 매도하는 사이 2년의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지난 4월 16일 밤 방송된 SBS의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국정원과의 연관성, 보고로 인한 구조의 지체 등과 함께 지난 2년간 우리 국민의 세월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언급하였다. 사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의혹들은 이미 「한겨레 21」 등의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 국민들을 나무랄 것인가?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보도에 더 쉽게 노출되었을 것이고,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대학 특례 입학’, ‘억 단위의 보상금’ 등 “이만했으면 됐다.”는 인식으로 수렴하기에 무리가 없는 언론의 펜 끝을 무심히 따라갔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현상이 투사된 지 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올 수 있다. “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데요?”
세월호는 세월호 이전 이 나라가 쌓아온 모든 부조리의 결과가 가장 나쁜 방식으로 한 번에 좌초된 거대한 비극이다. 그리고 희생자 대부분이 우리의 아이들이었다. 따라서 그 해결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유가족이나 관련자만의 몫으로 전가할 수 없다. 정부가 진실을 규명하는 선봉에 서 준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의지와 능력이 모두 희미하다. 따라서 공당에 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중에서도 이번 20대 총선에서 예상외의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에 그 시선이 모인다. 20대 총선에서 세월호 변호인으로 불리는 박주민 변호사를 공천하여 당선에 이르게 하였으나, 새정치민주연합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끌었던 세월호 특별법의 합의 과정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기에, 원내 제1당이 된 이 시점 이후 그간의 실책을 만회할 좋은 기회를 맞이한 셈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치른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상당한 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총선 사흘 후였던 세월호 2주기 추도식 행사에 당 차원에서의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선 ‘공방 없는 정치’라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지를 묻고 싶지만, 본고의 주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거두기로 한다. 다만, 이번 결정도 총선 과정에서의 결정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음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를 계승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정당이 자신에 대한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총선 이후 정가는 또 다음 선거인 대선을 향해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세월호 추도식 참석 역시, 슬픔에 대한 추모는 개인이 각자 하면 될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비록 조금 늦은 시간이긴 하였지만, 김종인 대표는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남긴 거대한 질문은 각 개인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침 20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세월호에 대해 정치적 공방을 우선하여 염려하기보다는, 왜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짧고도 분명하게 내어놓았으면 어땠을까? 물론 그 답변을 위한 가장 적절한 자리는, 공식적으로 당 지도부가 참석하는 2주기 추도식장이었더라면 더없이 적절하였을 것이다.
선거운동은 끝났다. 공천 및 선거운동 과정에서야 이기는 방식에 대한 전략이 최우선적인 것일 수 있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은 한 정당이 상대 당과의 경쟁이 아닌, 그 자체로 어떤 비전과 철학을 지녔는지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1주기 추도식에 불참하고, 다소 외교적 성과가 미비하다고 여겨지는 중남미 4개국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하자 다음과 같은 비판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4월 16일만큼은 국민과 함께 아픔을 나눠야 진정한 지도자일 것”
이제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운동을 끝내고, 원내 제1당에 부합하는,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는 수권정당의 목표에 걸맞은 답변들을 내어놓기를 기대한다. 부디, 건투를 빈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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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정·부통령 선거 민주당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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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여론 인식 변화
2016년 4월 16일 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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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중 ⓒ정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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