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밀려온 기우(杞憂)

열두 번째 지난주




외부로부터


에너지는 흐른다. 최초 태양으로부터 공급된 이후 각 영양단계에 생명을 부여하고는 열로 손실된다. 반면, 물질은 순환한다.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다른 모습으로 어디엔가는 존재한다. 굳이 전문 지식도 갖추지 못한 과학 이야기를 들춘 것은 그 작동의 닮음을 사회와의 비교 대상으로 삼으려 한 탓이다. 분명, 하나의 사회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외부로부터의 유입이라는 흐름과 더불어, 자생적 순환의 틀도 갖추어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외부로부터의 출현에 지나치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의심의 단서를 쌓아왔다. 마침 지난주, 오랜 시간 바다밖에 있던 한 사람의 방한이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자, 그간 쌓아두었던 단서들이 ‘쓸데없는 걱정’으로 밀려왔다.








기우(杞憂)의 단서 1. - 차별적 환대


“야구 몰라요.” 모른다고 하면 참 쉽다. 지금은 불미스러운 일로 대중 앞을 떠난,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의 유명한 이 해설 문구는 야구를 좋아하는 정도와 무관하게 흔히 회자된다. 지난해,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삼성 라이온즈는 우승의 문턱 앞에서 좌절한 바 있다. 모두가 우승을 점쳤던 팀이기에 그 실패는 “야구 몰라요”가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이기도 했다. 내막을 살펴보면, 여타의 요인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압도적으로 크게 작용하였을 주전 선수들의 원정도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본 글을 작성하고 있는 2016년 5월 29일 현재까지도 관련된 네 선수 중, 두 선수에 대한 처벌은 내려졌으나, 나머지 두 선수에 대한 처벌은 내려지지 않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잘못에 대한 법적 처벌, 프로 선수로서의 공익적 위해성 등 논의할만한 숱한 의제들을 제쳐두고, 본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해당 선수들에 대한 대중의 차별적 반응이다. 물론 유독 삼성 라이온즈에 남은 선수들에 대해서만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바 없이, 기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납득할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같은 혐의로 벌금 1,000만 원 형을 선고받은 후 미국에서 뛰고 있는 오승환 선수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과 비교해 볼 때, 그 온도 차에 있어 극심한 간극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상반된 반응.JPG * 오승환과 윤성환 두 선수가 각기 시즌에 임하기 전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 비교 ¹



사태의 본질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동일한 시점에 모든 선수에 대한 징계 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현실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징계의 여부가 각 선수가 속한 팀의 입장에서 그 선수를 보유하고 활용함에 있어 가장 적은 손해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내려졌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야구팬의 비난은 사법당국과 구단에 맞춰져야 하지만, 뉴스에 노출되는 것은 선수들이고, 비난의 화살 또한 일차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선수들에게 향하고 있다. 대중의 비난 자체를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주지할 사항은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에게는 호의적인 평가가, 그렇지 못한 선수에게는 박한 반응이 되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 차별적 환대가 1,000만 원의 벌금이라는 대가를 치른 것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일까? 설마 이것이 미국이라는 어마어마한 나라에서 상대 타자들을 헛스윙으로 돌려세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혹시 우리는 야구를 좀 더 잘해서 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의 배경에는 가상의 태극기를 펼쳐놓고, 그것을 공동의 면죄부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우(杞憂)의 단서 2. - 문화 강국 코리아


“전 국민의 90%가 태극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
“전 세계의 0.07%에 불과한 땅을 가졌지만 전 세계를 팬으로 가진 나라”
“잊고 있었습니다. 세계가 우리의 흥으로 들썩이는 이유는 우리의 멋과 흥이 바탕이었음을.......”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 CGV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 방영되는 광고 「Only One Korea」, 「Premium Korea」 중 문구 발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문구들이, ‘나라 사랑’이라는 의식 없이 물려받은 사고에 의탁한 채 밀려든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이전에, 나의 삶을 사랑하기에도 버거운 관객의 입장은 공허하다. 그리고 강요된 애국심이 취하는 전략 앞에, 또 한 번 마음의 비중이 증가한다. 광고를 만든 사람들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획득한 사례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긍심을 이끌어내기에 더 적절하다는 사실을…….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체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언뜻 보면 우리가 주체인 듯 보이지만, 바다 밖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우리는 ‘좋은 우리’가 아니기에, 사실은 외부가 주체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눈과 귀를 닫아보지만, 이미 영화관 밖의 세상에는 어떤 벽이 있음을 실감한 채, 영화를 감상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마음이 유쾌할 리 없다. 영화관을 벗어나 거리로 나가본다.


AKR20160411034500004_01_i.jpg ** 싸이 씨의 강남스타일을 기념하는 조형물의 예시 이미지 ©강남구청


최근 세계무역센터 주변에는 커다란 조형물이 등장했다. 가수 싸이 씨의 세계적인 히트곡 ‘강남스타일’의 성공과 강남을 세계에 알린 공로를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강남구는 밝히고 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강남이라는 공간에서 구현되는 이 사회의 작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위 미국을 위시하여 외국에서 획득한 성과를 등에 이고 우리 사회로 재편입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유효하게 이 사회에서 높은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라면,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실천되는 공간은 강남이 아닐까? 그런데 심지어 어떤 가수는 그 차원이 아니라, 당당하게 본토를 장악하기까지 했으니, 이렇게까지 부합하는 상징이 어디 있을까! 이는 강남 거주민의 삶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또한, 싸이 씨의 강남스타일 자체를 깎아내리고자 함도 아니다. 그것은 축하할만한 성공적 성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 미적인 논의까지는 차치하더라도 - 이토록 거대한 조형물이 도심의 한 복판에 자리할 수 있음에는, ‘바다 밖으로부터 승인됨’이라는 공동의 환희가 내재된 것은 아닐까? 역시나 미국이라는 어마어마한 곳에서의 성공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극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는 표상으로서의 존재는 아닐까?





기우(杞憂)의 단서 3. - 우리말 없는 우리 학문


우석훈 박사는 그의 저서 「나와 너의 사회과학」의 서문에서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꾸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부연하며, ‘우리는 스스로 완결된 교육 과정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말로 학문할 수 없게 만든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 말로 학문을 하는 풍토에서 비로소 세계적인 이론이 나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프랑스어로 철학하는 프랑스, 독일어로 학문하는 독일, 일본어로 연구하는 일본, 우리 한국만 우리말로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을 폐기하는 중이다.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요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 과제에서도 SCI(과학기술 논문 색인 지수) 기준을 들이대면서 외국의 학술지에 발표하도록 유도한다.
정부가 돈을 들여서 자국의 국민들이 읽기 어려운 논문을 쓰도록 하는 셈이다.
정부 연구 과제는 기본적으로 세금에서 지원하는 것인데, 그 세금의 납세자들이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외국의 학술지에 실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기본 논문은 대부분 영어로 쓰이고, 우리말로 된 문헌들도 거의 외래어 수준이어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학계의 장벽이 너무 높아지면 결국 국민이 그 분야를 외면하게 된다. 벽은 너무 견고하다.

- 우석훈 저, 「나와 너의 사회과학」, 김영사, 서문 ‘무엇이 공동체를 지키는가!’ 중 일부 발췌


견고한 벽을 수치로 나타내는 자료는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돌베개 刊)의 저자인 김종영 경희대 교수에 의해 일찌감치 공개된 바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15년까지의 우리나라 사회학과 임용 교수들의 박사학위 국가로 특정 국가인 ‘미국’에의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미국 53.2%(125명), 한국 28.6%(67명), 독일 7.7%(18명), 영국 5.1%(12명), 프랑스 3.4%(8명) 순이었다. ²


31934_19425_2238.jpg *** 사회학과 임용교수들의 박사학위 국가 시계열


유학파의 높은 교수 임용 비율만을 문제 시 삼고자 함이 아니다. 학계의 전반적인 풍토에서 우리말로 우리의 학문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음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김 교수는 "한국 대학과 학계 전체가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지배력)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 유학파는 트랜스내셔널 위치성 때문에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공모하고, 비유학파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한국 지식인으로서 우리가 왜 평생 이러한 괴로운 상황에 직면해야 하는지 또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 기위해 관련 연구를 했음을 밝혔다. ³ 이미 학계 전반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국으로부터의 성과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와 같은 풍토의 단면에서는 사회로 뻗어 나간 영향의 줄기도 엿볼 수 있다. 이를 일찌감치 눈치챈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외국에 데려가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여건상 남편이 한국에 남아있는 경우를 ‘기러기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어떠한 식으로든 이와 같은 풍조가 만연한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공부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문화·예술하는 사람 등, 정녕 한국인이 한국 내의 분야에서 가장 쉽게 상위 그룹을 점하는 방식은 바다 건너로부터 높은 성과를 쟁취하여 들어와야 하는 것인가! 이상에서 설하였듯, 늘 이와 같은 의심의 단서들이 누적되고 있던 터였다. 물론 의심의 집산만으로 경향성을 도출해내었다고 확언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런 와중에 어떤 한 사람의 방한을 보자, 작은 의심들이 증폭되었고, ‘설마’하는 아찔함이 선연히 부상함은 차마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기우(杞憂)


20대 총선 이후로 술자리에서조차 정치에 대해 예측을 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바로 그 예측이라는 것이 기존의 구도에만 천착하여 이루어진 관계로, 그것을 뛰어넘는 현실로부터 실소를 적시당한 탓이다. 따라서 ‘반기문’이라는 이름자를 넣고 대선을 전망하는 일 따위는 또 한 번 본인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기에 자진하여 사양한다. 다만, 지금껏 우리 사회가 보여준 외부로부터의 성과에 대한 다소 과한 호의 때문에, 필자에게 밀려든 걱정이 쓸데없는 것인지는 확인받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아닐 것이다. 물으면서도 괜히 묻는다 싶다. 바다 건너의 성과가 그 자체로 본토에서 과대평가받는 현실 속 사례들이 본국의 행정부 수반을 선택하는 순간에도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사실 여부를 떠나, 거창하기만 한 슬로건을 내걸고 등장한다 하여 다음과 같이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세계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니, 한국 대통령은 더 안 잘하겠습니까?"


아닐 것이다. 그저 늘 걱정이 많은 필자의 기우(杞憂) 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부디, 그럴 것이다.


shp_1464512741.jpg **** 경북 안동을 찾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 선생 고택 경내에 나무 중의 제왕이라는 주목을 기념식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참고 자료

¹

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 2016년 2월 10일 자, 「오승환 드디어 미국행. 11일 출국」 기사 댓글
sports.media.daum.net/sports/worldbaseball/newsview?newsId=20160210164333160#alex-area

뉴스1, 나연준 기자, 2016년 4월 6일 자, 「 [프로야구] '187일 만에 등판' 윤성환, 커진 부담감」 기사 댓글

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wsview?newsId=20160406091232260#alex-area


²

교수신문 최익현 기자, 2015년 12월 23일 자, 「제도 안에서 본 사회학의 위기 … “‘학벌 인종주의’ 극복이 과제다”」

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934


³

교수신문 최익현 기자, 2015년 6월 15일 자, 「“우리는 교수가 아니라 천민 … 배타적 인종차별주의 극복해야 학계 산다”」

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072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조선일보, 김원섭 기자, 2016년 5월 25일 자, 「[속보] 반기문 총장 제주 도착…"유엔 사무총장 임기 끝나면 한국인으로서 어떤 일 할지 고민할 것"」

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25/2016052503093.html


*

참고자료 ¹과 동일


**

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2016년 4월 11일 자, 「높이 5m '강남스타일 말춤 조형물' 코엑스에 들어서」

yonhapnews.co.kr/bulletin/2016/04/11/0200000000AKR20160411034500004.HTML


***

참고자료 ²와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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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2016년 5월 29일 자, 「반기문, 안동서 류성룡 고택 찾아… 양수겸장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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