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탈출 _ 브렉시트, 그 선택과 영향에 관한

열여섯 번째 지난주




선택과 영향


관계는 곧 ‘영향’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에 따른 ‘영향’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관계가 그렇듯, ‘영향’도 양방향성을 내재한다. 특히 어떤 흐름을 결정하는 ‘선택’은 기존의 관계 중에서도 ‘영향’의 변천에 극적으로 기여하고는 한다. 지난주 어떤 ‘선택’은 단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고, 그에 따른 전망을 논하는 목소리도 일제히 터져 나왔다. 우선 당면한 ‘영향’의 관점에서 사태를 조망한다.








“영향” _ 유러피언 드림의 균열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 제레미 리프킨, 「유러피언 드림(The European dream)」 중 ¹


입대 후, 훈련소에서 처음들은 ‘진짜 총’이 내는 굉음은 전쟁의 참상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그토록 끔찍한 전쟁이라는 것을, 그것도 근 반세기 동안, 또한, WORLD WAR라는 거북할지언정 거창한 칭호까지 획득한 전쟁의 참호 속을 살아 간 사람들은, 그것이 반성이건 진절머리이건, 다른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하였다. 이는 앞서 인용한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The European dream」에 수록된 문장과 같은 방향성을 견지한 채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이를 정의하는 공동의 이름자가 OEEC, ECSC, EDC, EEC, EC, EU라는 숱한 알파벳 약자로 변모하며, 점차 그 기틀을 잡아왔다. 그러던 중 2016년 6월이 되었고,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것은 가장 민주주의가 오래된 나라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에 의한 것이었다.



후진 後進
명사

1. 어떤 발전 수준에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
2. 뒤쪽으로 나아감. ²


이번 결정이 파생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후진(後進)’성에 있다. 그중에서도 두 번째 뜻에 근거한다. 이는 사전상 가장 먼저 등장하는 ‘뒤떨어짐’과는 명백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위계가 아닌, 방향성에 대한 반대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 국가로 ‘고립’되는 것이 아닌, ‘공감’, ‘공유’, ‘상호’, ‘수평’의 가치로 수렴하고자 했던 유러피언 드림을 함께 꾸지 않겠다는 탈출은, 단순한 일탈 이상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세계 증시가 휘청거렸고, 아베 정권이 그토록 공들여 낮춰놓은 엔화는 순식간에 솟구쳤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선구자가 길을 닦아 놓았기에, 공동 정부에서 자신들의 손익계산서를 펼쳐보고는, 여차하면 영국의 길을 따르겠노라는 후발주자는 그만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편적 인권, 포용과 환대, 전 세계적인 위협에의 대응이라는 공동의 이상(理想)에 일시적이나마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사실이다. 이 이상에 반(反)하는 주장을 하던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이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lead_960.jpg * 도널드 트럼프가 브렉시트 투표 직후, 스코틀랜드 해안의 자기 소유 골프장 개장식에 참석한 모습





“선택” _ 그리고 책임


이처럼 중차대한 결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 국민의 국민투표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앞선 ‘영향’의 관점에 근거하여, 영국 국민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것은 타당하지 않거나, 타당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선, 이들은 세계 시민이기 이전에 영국 국민이다. 자신들의 삶에 있어 당면한 지표들을 보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또한, 지극히 희미한 가능성이지만, 다시 대영제국의 그토록 위대했던 해가 지지 않는 영광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차라리 이를 문제로 인지한 경우의 주지할 바는, 관련 정보가 공정하게 인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모든 인민에게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원칙 자체에만 기대어 손쉬운 선택의 틀을 내민 영국 정치권에 있다. 관련하여, 투표 후에야 ‘EU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쏟아졌음은 씁쓸한 방증으로 기억될만하다.

Cltl4jFWEAEbnun.jpg ** 브렉시트 투표 직후, 'EU 탈퇴의 의미'와 'EU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영국 내에서 검색 순위 상위권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 자료



어느 집단을 우매하다고 평하는 일의 가벼움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매함으로 측정받기 쉽도록 한 방식의 한계를 생각한다. 그리고 선택을 국민에게 맡김으로써, 책임 역시 국민에게 전가한, 의도가 분명치 않은 가운데 거둔 성과 비슷한 것에도 주목한다. 영국 국민은 이 선택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탓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교육을 덜 받은 사람이, 중심 지역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 내린 결정이라고는 하여도,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반성의 외침을 희망으로 번역할 수 있는 역설적 이유이다. 문제는 이 선택을 행한 주체에게, 오롯이 그 책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영향’에서 보았듯 너무나도 파급력이 큰, 무거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과연, 과거로의 탈출을 뒤엎는 각성의 조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선택하는 자가 책임을 진다는 격언 이전의 순리 앞에, 지구 상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가 서 있다.








역사 속을 살다.


가장 명징한 역사는 역사책이 아닌 오늘에 있다. 역사책에서야 수년, 수십 년의 역사가 단 몇 페이지에 새겨지곤 하지만, 현실은 하이라이트일 수 없다. 뒤뚱거리고 멈칫거리고 심지어는 뒤로 가는 것조차, 오늘의 우리에게는 지구의 시간 스케일 그대로 전해져 온다. 한 영국인은 그저 단 한 표를 행사했을 뿐인데, 세계가 들썩였다.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그런데 그 위태로운 선택은 기실 주요한 역사의 한순간이었고, 분명 그 역사의 발자취는 주춤거리거나, 비틀거리거나, 심지어는 과거로 향한 모습으로 새겨졌다. 선택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대책은 요원해 보인다. 이와 같은 모든 부정적 형용에도 불구하고 획득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 하나는, 지난주로부터 오늘이라는 역사를 절절하게 실감했음이다. 개인이자 세계시민인 우리는, 오늘도, 역사 속을 산다.


3061227-poster-p-1-how-the-brexit-vote-reflects-this-classic-psychological-error.jpg *** 브렉시트 찬반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영국 국민의 모습







참고


¹ 제레미 리프킨, 「유러피언 드림(The European dream)」, 민음사, 2005, 17쪽 중

² 국립국어원 “후진(後進)”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 Social Europe

- socialeurope.eu/2016/03/why-there-will-be-no-brexit/

*

- The Atlantic

- theatlantic.com/international/archive/2015/12/donald-trump-scotland-golf/42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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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gle Trends

- twitter.com/GoogleTrends/status/74630311882093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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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_ Ian Forsyth, Getty Images

- fastcompany.com/3061227/how-the-brexit-vote-reflects-this-classic-psychological-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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