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티컷이 그리는 새로운 금융이야기 1탄
올해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10월입니다. 써티컷은 지난주 창립 1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서비스 오픈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본금은 계속 떨어져 가는데 금융당국님께서는 6개월째 한정 없이 계속 기다리라고 하시니 아주 속이 타다 못해 그을려서 시커메졌습니다. 써티컷 서비스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기존 P2P 금융 플랫폼들과 다른 사업모델 때문입니다. '은행제휴'와 '기관투자자 참여'가 그 2가지인데요, '은행제휴' 부분은 이미 금융위원회에서 승인이 완료됐고, 마지막으로 '기관투자자 참여'에 관한 논의가 마무리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설마 올해 안에는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업 승인도 계속 지연되고 있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해서 그동안 P2P 금융에 대해서 공부한 내용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P2P금융 플랫폼이 대부업 자회사가 아닌 '은행'과 제휴하여 대출을 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림자 금융'의 영역에 있는 P2P 금융이 '제도권'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뜻합니다(은행 제휴 P2P는 제휴은행을 통해 광고, 여신 및 투자 관리 등의 영역에서 금융감독원의 규제를 받게 됩니다). 금융이라는 거대한 산업군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당연히 금융당국의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때문에 금융당국님께서도 오랜 기간의 검토를 하셔야 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 써티컷이 '왜 굳이' 그렇게 오래 기다리면서까지 은행과 제휴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브런치에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긴 스토리를 풀자면 먼저 해외 사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P2P 금융의 고향인 미국과 영국의 P2P 금융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입니다. P2P금융이라는 풍운의 꿈을 가슴에 안고 이 시장에 뛰어든 모든 분들이 미국의 ‘렌딩클럽'의 IPO를 보면서 꿈을 키우셨을 텐데요. 미국의 P2P 금융시장은 렌딩클럽(Lending Club)과 프로스퍼(Prosper Marketplace)가 과점하고 있는 시장입니다(On-deck 등 유명한 회사들이 또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P2P금융모델과는 사업모델이 조금 달라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On-deck의 사업모델은 자기자본차입으로 대출을 하는 모델이라서 흔히 Online Lending Platform이라고 칭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P2P 금융 플랫폼(요즘에는 Marketplace Lending Platform 이라고도 불립니다)인 렌딩클럽과 프로스퍼는 모두 미국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미국증권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습니다. 분명히 P2P는 대출업인데 증권위원회의 규제라니? 약간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P2P 구조는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입니다. 여신(대출)은 기존에 존재하는 금융기관들에서 진행하고, P2P 플랫폼은 그 금융기관들로부터 대출채권을 매입해서 ‘Notes’라는 형태로 증권화(Securitization)하여 투자자에게 매매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Notes라는 것은 SEC에서 공인된 정식 증권으로 인정되기 때문에(다만 고위험 유가증권으로 분류됩니다!), 이 증권에 투자하는 수많은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증권규제를 담당하는 SEC에서 관할합니다. 미국에서의 P2P 투자는 투자자가 P2P 중개업자가 발행하는 Notes 에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 ‘금융투자상품의 매매'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투자상품으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ABS(Asset Backed Security; 자산유동화증권), MBS(Mortgage Backed Security; 부동산 유동화증권) 등처럼 공인된 투자증권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법적 지위가 다소 애매합니다. ‘원리금수취권 매매' 또는 ‘예금반환청구권 양도' 정도로 보통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식 증권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6~2007년 P2P금융이 처음 등장한 이후, SEC에서는 렌딩클럽과 프로스퍼의 대출채권을 모두 SEC에 등록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이 실사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 있더라고요. SEC의 대출채권 등록 요구 때문에 렌딩클럽은 무려 6개월(2008.04 ~ 2008.10), 프로스퍼는 8개월(2007년 10월 SEC 등록 신청, 2008년 11월 영업정지, 2009년 7월 업무 재개) 동안 영업정지 상태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SEC가 P2P 대출채권에 투자하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에는 P2P 금융시장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빨라졌었고(2009년~2015년 CAGR 246%), 기관투자자들이 P2P 시장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다시 한번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P2P 금융 규제는 ‘투자자' 보호에 거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정부에서 공인하는 ‘증권' 형태로 거래할 수 있게 하고, 대신에 채권정보공시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보호 의무들을 P2P 금융업체들에게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P2P 금융시장에 관심 있는 분이라는 전제하에요). "어? 그럼 대출자 관련해서는 왜 규제를 안 하지? 한국에서는 대부업 이슈 때문에 시끄러운데."
네, 당연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P2P 금융 플랫폼을 ‘대출' 관련해서는 특별히 규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설명드린 대로, 여신(대출)은 여신 라이선스를 보유한 ILC(Industrial Loan Company)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P2P금융 플랫폼의 공식적인 업무는 ILC의 대출채권을 매입해서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것입니다(물론 신용평가 및 대출/투자자 모집업무도 전담하고요). ILC의 여신기능에 대해서는 FDIC(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미국 연방 예금보험공사)에서 별도로 감독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렌딩클럽과 프로스퍼 모두 ‘Web Bank’라는 ILC를 통해서 대출을 발행하고 채권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Web Bank라는 회사는 유타에 있고, 직원 100명 규모의 작은 금융기관인데요, 수익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렌딩클럽과 프로스퍼는 항상 적자인데 말이죠.
※ ILC들은 ‘요구불예금' 수취가 제한된 여신기관입니다. 요구불예금이란 ‘별도의 약정기간 없이 언제든지 예금의 반환을 은행에 청구할 수 있는 예금'이고요, 요구불예금이 제한된 여신기관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여전사(여신전문회사: 카드사, 캐피털 등)랑 비슷한 개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네, 뭐 미국의 P2P 금융구조는 이 정도로 다루기로 하구요, 참고로 현재 한국의 P2P 금융시장구조와 흡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도 P2P 플랫폼들이 모객과 신용평가를 전담하는 플랫폼 모회사 따로, 여신(대출)을 전담하는 대부업 자회사(또는 제휴 금융기관) 따로, 이렇게 운영하고 있지요. 대부업 자회사가 발행한 대출채권의 원리금수취권(원금 및 이자를 받을 권리)을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형태로 P2P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한국 P2P 시장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다들 P2P금융이라고 하면 미국의 렌딩클럽을 떠올리지만, 사실 세계 최초의 P2P 금융업체는 2005년에 설립된 영국의 Zopa입니다. 규모 면에서는 미국이 앞질렀지만, 영국도 탄탄한 금융산업과 정부의 지원 하에 P2P 금융도 제도권 금융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Zopa의 경우 2005년부터 누적 부실률(1% 미만)과 평균 실질 수익률(5.6%)이 매우 안정적인 수준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Zopa 외에도 Funding Circle(중소기업대출), Lendinvest(모기지), RateSetter(개인신용대출) 등 다양한 업체가 다양한 전문분야의 대출상품을 가지고 시장을 나눠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국 P2P금융의 독특한 점은, 제휴 금융기관을 통해 여신(대출)이 실행되는 다른 나라와 달리 P2P 금융 플랫폼이 직접 소비자 대출(consumer credit)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출에 대한 주체도 P2P 금융 플랫폼이 되고, 규제 또한 투자자 보호와 적법한 대출 집행 여부에 대해서 모두 적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SEC(증권거래위원회)가 P2P 투자행위를 “금융투자행위”로 해석하고 감독하여 투자자 보호에 집중하여 P2P 관련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반면, 영국은 FCA(Financial Conduct Authority: 한국의 금융감독원에 해당)가 투자, 대출 양 쪽을 ‘Crowdfunding Instrument 규정’에 따라 모두 감독하고 있습니다.
감독 기준은 크게 아래 5가지 사항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인가의무: P2P금융(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사업을 위해서는 FCA의 인가가 필요
최소자본규제: P2P금융사업자의 영업 및 재무리스크로부터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대출 잔액 기준으로 최소자본 규제
고객 자금 보호: 대출금 및 상환금은 은행을 통해 관리, 고유 재산과 고객 재산의 분리 관리 의무
공시 의무: 기대수익률, 부도율, 신용평가 내역, 기본계약서 등의 공시를 의무화
분쟁 조정: FCA 산하의 금융민원처리 전담기관인 Financial Ombudsman Service가 투자자 등의 분쟁에 대한 중재 전담
현재 금융위 주관으로 P2P TF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만, 어느 방향으로 결론이 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국내 여신업의 벽이 매우 높은 점을 고려하면(현재는 은행, 저축은행, 여전사(카드/캐피털), 대부업만 여신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P2P 금융구조처럼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관에게 여신 라이선스를 주는 것이 가능할지는 다소 의문이 듭니다. 물론 현재 존재하는 대부업체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고요.
TF에서 곧 발표할 P2P 투자 가이드라인 또한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국내 시장도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성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P2P금융이 공식적인 규제의 대상이 되어 P2P 투자상품이 하나의 공식적인 투자상품으로 인정된다면, 미국의 경우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유동화 투자상품의 출시가 가능하고, 이와 더불어 P2P 금융시장이 빠른 성장의 속도로 성장하여 더 많은 대출자와 투자자들이 금융의 열매를 나눠가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이번 ‘미국과 영국의 P2P 금융 구조’ 브런치 글은 KIF(한국금융연구원)의 ‘P2P 대출중개에 대한 제도적 개선방안’ 보고서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