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귀인, 비합리적 신념, 불필요한 강박
어디 공문에서 보았는지, 검색하다 보았는지, 1정 연수에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2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1년 내 8회기 무료였던 것도 있지만, 교감 교장 결재를 받지 않고 내가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내 용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조퇴 목적지에 ‘ㅇㅇ심리상담센터’라고 적은 것 때문에 한 번 불려 올라가서 개인 상황에 대한 긴 이야기를 하긴 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사실 말을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나서 한참을 펑펑 울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 이런 사람도 많을 거야, 이런 사람들 많이 보셨겠지 하며 나를 위로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의 교원 마음방역 심리상담 프로그램은 교권 보호 위윈회 등 명시적 피해 상황이 발생한 교원과 보통의 교원(?)으로 나누어진다. 메일로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하여 송부했던 것 같고 2~3일 안에 문자를 통해 상담센터가 배정이 됐다며 연락이 온다. 신청서에는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부분과 근무지 근처 상담센터를 원하는지, 거주지 근처 상담센터를 원하는지 등이 나와있었던 것 같다.
센터에 처음 들어가서 대기하는데 포근한 인형들이 많았다. 푹신푹신하고 귀여운 것들은 사람을 말랑하게 만들어줘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첫 상담을 하기 전, 작은 방으로 안내되어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계기 같은 것을 적으라고 주셨다. 대충 5월과 7월의 이야기를 썼던 것 같고 마지막에 ’대단한 진상 학부모를 겪은 것도, 교권 침해를 당한 것도 아닌데 내가 여기에 오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매 회기는 50분. 선생님과 동네에서 마주치거나 했으면 약간은 불편했겠지만 그런 적도 없고, 이 상담의 시간이 다른 관계들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편안했으므로 아주 소상히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지금 기분은 좀 어떠세요?’이다.
편안해요. 후련해요. 좋아요. 뿌듯해요.
실제로 선생님을 만나고 많이 나아지고 있던 찰나였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불필요한 생각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 보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내가 편안한 길을 택하는 것들.
오늘 오후에 이 심리상담의 마지막 회기를 하게 된다.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종결할 줄 알았는데,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동안 내가 뭐가 나아졌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선생님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은요, 제가 우울증 약을 먹고 더군다나 이번 주에는 약이 늘었어요.
종결을 앞두고 선생님과 이렇게 계속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이전의 나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렵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은 함께 길을 내는 작업들이라고, 원래 가던 길을 가다가도 ‘아, 맞다! 이쪽 길도 있었지.‘하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하
지
만
길을 가다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버리면요?
그때는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올라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