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내세운 마케팅을 할 때 팬심을 잘 헤아려야 하는 이유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4월에 메디힐이라는 팩으로 유명한 화장품 업체에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와 광고 계약을 맺었다. 플레이브(Plave) 데뷔 이후 첫 화장품 광고 모델 계약이었다. 팬들은 모두 들떴다. 그동안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악플을 받거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메디힐 광고 계약이 팬들에게는 새로운 의미로도 다가왔을거다. 유명 화장품 회사인 메디힐이 우리 멤버들을 광고 모델로 선택했으니까! 플레이브가 진짜 대세가 됐다는 걸 대중적으로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것만 같아 멤버들이 대견했을 거고, 이 흥행에 일조한 팬들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운이 좋게 제품을 구매하고, 포토카드까지 받을 수 있었다. 결제를 끝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12시 8분.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니 물량 부족으로 인해 12시에 접속했음에도 구매에 실패한 사람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서버가 터지는 바람에 굿즈를 제대로 구매할 수조차 없었다는 후기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며칠 뒤 중고거래 앱에서 메디힐 플레이브 포토카드는 프리미엄이 붙어 8만원까지 올랐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플레이브가 첫 콘서트를 열었을 때 3천석을 열었는데 3만명이 몰려서 많은 팬들이 온콘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처럼, 메디힐이나 올리브영 측에서도 플레이브 팬들의 화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카더라로 이날 올리브영은 마스크팩 첫 발주를 1천개 넣어두었는데, 이게 15초만에 끝나버렸다고 한다.) 안그래도 이벤트 진행 방식에도 불만이 많았던 팬들은 앞으로는 메디힐을 불매하겠다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팬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메디힐 측은 빠르게 사과문을 내놨다.
메디힐은 2차 앵콜 이벤트 진행 소식과 함께 "플리 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하며 이벤트를 준비했으나 예상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메디힐이 전개해온 마케팅 활동 중 전무후무한 이력을 기록하며 조기 소진되었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역시나 플레이브 팬들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메디힐도 예상치 못했던 폭주였던 것 같다. 메디힐은 앵콜 이벤트에 앞서 구매조건에 대한 혼선을 정정하고, 굿즈 증정 방식을 바꾸겠다고 했다. 랜덤으로 1종만 제공하려고 했던 포토카드를 멤버 전원 5종을 모두 증정하는 것으로 바꿨다. 나처럼 이미 1종만 랜덤으로 증정받았던 팬들에게도 모두 무료로 5종을 배송한다고도 했다. 1개만 받아도 좋았던 나로서는 5종을 모두 준다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메디힐은 또 '광고 모델인데 왜 플레이브의 얼굴이 보이질 않느냐'는 불만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메디힐공식 사이트에 뮤즈 칸을 만들어 플레이브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이후 진행하는 SNS 이벤트 공지나 올리브영 제품 페이지에도 플레이브 이미지를 넣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강력한 한 방이 또 있었다. 메디힐 사옥에 엄청나게 커다란 플레이브 현수막을 걸어둔 것이다. 현수막 실물을 확인한 팬들은 "메디힐, 이제 일 좀 제대로 하네"라고 반응했다. 불매하겠다던 팬들조차도 대체적으로 '이제 할만큼 했으니 넘어가자'는 식으로 바꼈다. 이벤트에 크게 불만이 없었던 나는 메디힐 사옥 내 거대한 현수막 이벤트를 보고는 앞으로도 메디힐의 충성 고객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메디힐이 이번 단발성 이벤트를 끝으로 어영부영 사과하고 종료했다면, 많은 고객을 잃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후에 그들이 보여준 신속한 후속 조치가 팬들의 마음을 다행히 돌리게 만든 것 같다. 사옥에 올라온 거대한 현수막이나 올리브영에 올라온 플레이브 사진이나 굿즈 5종 재증정까지, 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확인해서 발빠르게 반영하면서 팬들의 마음을 진화했다.
개인적으로는 플레이브의 화력에 새삼 놀라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비단 메디힐 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밤비가 먹는다고 1초 등장했던 쫀드기 제품이 쿠팡에서 일시적으로 매진을 기록하거나, 은호가 맛집이라고 소개했던 바지락 칼국수 집이 이젠 줄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맛집이 돼 버렸다거나 하는 일화가 종종 들릴 때면 이제 플레이브는 이제 일순간 매진을 기록할 정도의 구매력을 가진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점이 새삼 느끼진다. 앞으로도 플레이브가 이렇게 든든한 팬덤을 등에 업고 더 많은 광고에 얼굴을 내밀 수 있기를, 나도 열정적인 팬으로서 거기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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