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류: 인간의 삶은 어떻게 배송되고 있는가
1.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연다. 모르는 사람이 서 있다. 손에는 보온 가방. "주문하신 음식입니다."
받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문을 닫는다.
30분 후, 또 초인종이 울린다.
이번엔 택배 기사다. "택배 왔습니다." 받는다. 문을 닫는다.
저녁, 또 초인종이 울린다.
새벽 배송 상품이다. 냉장 박스를 받는다. 문을 닫는다.
2.
하루에 몇 번이나 문을 열었는가?
몇 명의 낯선 사람을 만났는가?
그들은 누구였는가? 나는 그들을 초대했는가?
3.
10년 전을 떠올려본다.
집 앞까지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가족. 친구. 초대받은 손님. 가끔 우편 배달원.
그뿐이었다.
집 앞은 나의 영역이었다. 내가 허락한 사람만 올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먼저 연락이 왔다. "지금 가도 돼?" "집에 있어?"
집 앞은 내가 통제하는 공간이었다.
4.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도 여러 명의 낯선 사람이 내 집 앞까지 온다.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새벽 배송 기사. 퀵커머스 배송원. 우유 배달원.
나는 이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온다.
연락도 없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면 모르는 사람이 서 있다.
5.
"내가 주문했잖아."
맞다. 내가 클릭했다. 내가 결제했다. 내가 원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생각해보자.
나는 상품을 주문했다. 집 앞까지의 접근 권한을 준 건 아니다.
그런데 클릭 한 번으로, 자동으로 그 권한이 넘어갔다.
6.
과거에는 달랐다.
우편물이 오면, 우편함에 넣었다. 집 앞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택배가 오면, 관리실에 맡겼다. 내가 내려가서 받았다.
집 앞까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건 예외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모든 배송이 집 앞까지 온다.
아니, 집 앞이 아니라, 집 문 앞까지 온다.
7.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편리하니까? 빠르니까?
맞다. 그런데 그게 전부인가?
생각해보면, 이 변화의 핵심은 '편리함'이 아니다.
통제권의 이동이다.
8.
과거: 나는 집 앞을 통제했다.
누가 올 수 있는지. 언제 올 수 있는지. 어떻게 올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을 내가 결정했다.
친구가 오려면? 먼저 연락해야 했다. "지금 집에 있어?" "언제 오면 돼?"
우편 배달원이 오려면? 정해진 시간에 왔다. 그리고 우편함에 넣었다.
집 앞은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9.
현재: 플랫폼이 집 앞을 통제한다.
누가 올지는 플랫폼이 결정한다. 배송 기사를 배정하는 건 플랫폼이다.
언제 올지는 플랫폼이 결정한다. "30분 내 도착" "1시간 내 도착" 시간을 정하는 건 플랫폼이다.
얼마나 자주 올지도 플랫폼이 결정한다. 나는 하루에 3번 주문했다. 그러면 3명이 온다. 10번 주문하면 10명이 온다.
집 앞 접근 권한은 플랫폼에 있다.
10.
"그래도 내가 주문해야 오잖아."
맞다. 나의 클릭이 트리거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나는 '누가' 올지 선택하지 못한다. 나는 '정확히 언제' 올지 선택하지 못한다. 나는 '어떤 경로로' 올지 선택하지 못한다.
나는 단지 "배송해주세요"라고 요청할 뿐이다.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시스템이 결정한다.
11.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과거에는 집 앞에 누가 오는지 '알았다'.
친구가 온다. 가족이 온다. 초대한 손님이 온다.
얼굴을 안다. 이름을 안다. 관계를 안다.
지금은?
배달 라이더가 온다. 이름을 모른다. 얼굴을 모른다. 오늘 처음 본다. 그리고 아마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내일 또 다른 라이더가 온다. 또 모르는 사람이다.
12.
집 앞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집 밖과 집 안의 경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문턱.
과거에는 이 경계를 내가 지켰다.
누구를 안으로 들일지. 누구를 밖에 둘지. 내가 결정했다.
지금은?
매일 낯선 사람들이 이 경계까지 온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 가장 많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되었다.
13.
"위험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별로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왜?
시스템을 믿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검증했겠지." "배경 조회를 했겠지." "문제 생기면 플랫폼이 책임지겠지."
우리는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믿는다.
14.
과거에는 사람을 믿었다.
친구니까 믿는다. 가족이니까 믿는다. 아는 사람이니까 믿는다.
신뢰는 관계에서 왔다.
지금은?
플랫폼이 보낸 사람이니까 믿는다. 앱에 표시되니까 믿는다. 리뷰 시스템이 있으니까 믿는다.
신뢰는 시스템에서 온다.
15.
그래서 집 앞의 의미가 바뀌었다.
과거: 집 앞 = 나의 마지막 사적 경계선
현재: 집 앞 = 물류 시스템의 종착점
집 앞은 더 이상 내가 지키는 공간이 아니다.
집 앞은 배송 시스템이 도착하는 지점이다.
16.
"마지막 1미터"
물류 업계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창고에서 집 앞까지. 이 마지막 1미터가 가장 중요하다.
왜? 고객이 직접 만나는 지점이니까.
고객이 상품을 받는 순간. 고객이 만족하는 순간. 고객이 다시 주문하는 순간.
마지막 1미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플랫폼들은 이 1미터를 통제하려고 한다.
17.
택배함을 보자.
아파트 로비에 있는 택배 보관함. 편의점에 있는 픽업 박스. 집 앞에 놓인 스마트 택배함.
이것들은 무엇인가?
마지막 1미터를 효율화하는 장치다.
배송 기사가 직접 초인종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문 앞에 놓기만 하면 된다. 택배함에 넣기만 하면 된다.
더 빠르다.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 동시에, 집 앞은 더 이상 나만 접근하는 공간이 아니게 된다.
18.
스마트 도어락을 생각해보자.
어떤 배송 서비스는 집 안까지 들어온다. 냉장고에 식료품을 넣어준다. 문 앞이 아니라, 집 안까지.
어떻게? 1회용 비밀번호를 준다. 배송 시간에만 작동하는 임시 출입 권한.
편리하다. 집에 없어도 배송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이제 집 안까지의 접근 권한도 시스템이 관리한다.
19.
여기서 질문 하나.
내가 집에 없을 때, 내 집 문을 여는 권한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나? 아니면 플랫폼?
법적으로는 나다. 내가 동의했으니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플랫폼이 비밀번호를 생성한다. 플랫폼이 배송원에게 전달한다. 플랫폼이 시간을 통제한다.
나는 그저 "허락"했을 뿐이다.
20.
집 앞이 물류 인터페이스가 되면서, 이상한 일이 생긴다.
집 앞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관 앞에 서면, 내 공간이 아니라, 배송 대기 공간처럼 느껴진다.
언제 초인종이 울릴지 모른다. 누가 올지 모른다.
집 앞은 내가 쉬는 공간이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는 공간이 되었다.
21.
택배 기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는 하루에 200개를 배송한다. 200번 초인종을 누른다. 200번 문 앞에 선다.
그에게 당신의 집 앞은 무엇인가?
200분의 1이다. 경로 최적화 상의 한 지점이다. GPS 좌표다.
그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당신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단지 시스템이 그를 당신의 집 앞으로 보냈을 뿐이다.
22.
그래서 이제 집 앞은 무엇인가?
과거: 나와 세상의 경계. 내가 통제하는 마지막 사적 공간.
현재: 나와 시스템의 접점. 물류가 도착하는 최종 노드.
집 앞은 내 공간에서, 시스템의 종착점이 되었다.
23.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편하잖아. 빠르잖아. 집 앞까지 와주잖아.
맞다. 문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다. 하지만 통제권을 넘겼다.
24.
클릭 한 번으로, 우리는 집 앞까지의 접근 권한을 플랫폼에 넘긴다.
하루에 몇 번씩, 낯선 사람들이 내 집 문 앞까지 온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나는 그들을 선택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그들을 보냈다. 시스템이 시간을 정했다. 시스템이 경로를 정했다.
집 앞은 더 이상 내가 지키는 경계가 아니다. 집 앞은 시스템이 관리하는 인터페이스다.
25.
오늘 저녁, 초인종이 울릴 것이다.
당신은 문을 열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
당신은 상품을 받을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것이다. 문을 닫을 것이다.
너무 자연스럽다.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질문해야 한다.
내 집 앞은 누가 통제하는가?
나인가, 시스템인가?
다음 글에서, 우리는 시간을 본다.
우리는 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었는가. 30분 배송, 1시간 배송은 왜 필수가 되었는가.
[다음 글] 5화. 우리는 왜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