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우리는 왜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는가

by 김철민

1.

배가 고프다.

휴대폰을 꺼낸다. 배달 앱을 연다. 메뉴를 고른다. 주문한다.

화면에 뜬다. "30분 내 도착 예정"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29분 59초, 29분 58초, 29분 57초...

나는 화면을 본다. 25분 남았다. 20분 남았다. 15분 남았다.

10분 남았을 때, 불안해진다. '제때 올까?'

5분 남았을 때, 현관 쪽을 쳐다본다.

2분 남았을 때, 일어나서 문 앞으로 간다.

초인종이 울린다. 정확히 28분 30초.


2.

나는 언제부터 30분을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는가?

30분은 긴 시간이 아니다. 드라마 한 편. 통화 한 번. 산책 한 바퀴.

그런데 배달 음식을 기다리는 30분은, 견딜 수 없이 길다.

왜?


3.

10년 전을 떠올려본다.

중국집에 전화한다. "짜장면 하나요."

"네,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네, 괜찮아요."

전화를 끊는다. 기다린다.

TV를 본다. 책을 읽는다. 설거지를 한다.

40분쯤 지났을 때, '슬슬 올 때 됐나?' 생각한다.

50분쯤 지났을 때, 초인종이 울린다. 받는다.

그게 기다림이었다.


4.

그때는 '언제 올지' 정확히 몰랐다.

40분에서 1시간. 범위만 알았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기다림이란,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었다.


5.

그런데 지금은?

"30분 내 도착"

정확하다. 범위가 아니라, 약속이다.

화면에는 카운트다운. 실시간 배송 추적. 배달원의 현재 위치. 남은 거리.

나는 '언제' 올지 정확히 안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게 아니다. 카운트다운을 보는 것이다.


6.

기다림이 사라졌다.

과거의 기다림: 불확실한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

현재의 카운트다운: 정확히 계산된 시간을, 초 단위로 확인하는 감시.

기다림은 여유였다. 카운트다운은 긴장이다.


7.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기술이 발전해서? 배송이 빨라져서?

그건 결과다.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우리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8.

생각해보자.

과거에는 많은 것이 불확실했다.

버스가 언제 올지 몰랐다. 그래서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친구가 언제 도착할지 몰랐다. 그래서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택배가 언제 올지 몰랐다. 그래서 집에서 기다렸다.

편지가 언제 도착할지 몰랐다. 그래서 우체통을 확인하며 기다렸다.

불확실성은 삶의 일부였다. 기다림은 당연한 것이었다.


9.

그런데 지금은?

버스가 몇 분 후 도착하는지 앱으로 본다.

친구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택배가 어디쯤 왔는지 추적한다.

메시지가 읽혔는지, 언제 읽혔는지 확인한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해졌다. 불확실성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10.

30분 배송을 생각해보자.

왜 30분인가? 왜 1시간이 아니라 30분인가?

기술적 이유? 물류 최적화?

아니다. 심리적 이유다.

30분은 사람이 '예측 가능한 불안' 없이 기다릴 수 있는 최대 시간이다.


11.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은 10분까지는 여유롭게 기다린다.

20분부터 불안해진다.

30분이 넘어가면 참을 수 없어한다.

40분 이상은 "너무 오래 걸린다"고 느낀다.

플랫폼들은 이걸 안다. 그래서 30분을 약속한다.


12.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30분 배송에 익숙해지면, 40분은 견딜 수 없게 된다.

1시간 배송에 익숙해지면, 2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진다.

당일 배송에 익숙해지면, 다음날 배송은 느리게 느껴진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재조정되고 있다.


13.

과거의 시간 감각:

하루: 빠름

이틀: 보통

일주일: 조금 김

한 달: 김

현재의 시간 감각:

30분: 보통

1시간: 조금 김

하루: 김

이틀: 너무 김

시간의 척도가 압축되었다.


14.

아마존이 처음 2일 배송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이틀이면 오네!"

몇 년 후, 당일 배송이 나왔다. "오늘 오네!"

지금은 30분 배송. "30분이면 오네!"

다음은? 10분 배송? 5분 배송?

배송 시간은 계속 짧아진다. 그리고 우리의 인내심도 계속 짧아진다.


15.

여기서 질문 하나.

빠른 배송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드는가?

생각해보자.

과거: 장을 보려면 토요일 오전을 비워야 했다. 계획이 필요했다.

현재: 필요할 때 주문하면 30분 내 온다. 계획이 필요 없다.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정말 그럴까?


16.

과거에는 시간을 '계획'했다.

토요일 오전에 장본다. 수요일 저녁에 책을 산다. 주말에 쇼핑한다.

시간을 미리 배정했다. 그 시간은 내가 통제했다.

현재는?

시간을 계획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주문한다.

그런데 그 '필요할 때'는 누가 정하는가?


17.

배가 고프면 주문한다. 생각나면 주문한다. 보면 주문한다.

나는 계획하지 않는다. 나는 반응한다.

과거: 나는 시간을 설계했다. (능동)

현재: 나는 욕구에 반응한다. (수동)

더 자유로워진 게 아니라, 더 즉각적이 된 것이다.


18.

즉각성의 문제는 무엇인가?

즉각성은 기다림을 없앤다. 그리고 기다림이 없으면,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과거에는 '내일'이 의미가 있었다.

"내일 받으면 되지." "다음 주에 하면 되지."

내일은 계획의 단위였다.

지금은?

"지금 주문하면 30분 후 온다." "왜 내일까지 기다려?"

내일이 너무 멀다.


19.

시간이 압축되면서, 우리의 행동도 압축되었다.

과거: 생각한다 → 계획한다 → 실행한다.

현재: 생각한다 → 클릭한다.

계획 단계가 사라졌다.

즉각 실행이 기본값이 되었다.


20.

그래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30분 배송이 35분 걸리면, 화가 난다.

"약속 시간을 어겼잖아!"

5분. 고작 5분이다.

그런데 그 5분이 견딜 수 없다.

왜? 우리는 더 이상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21.

카운트다운이 우리에게 한 일은 무엇인가?

시간을 정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참을성 없게 만들었다.

정확한 시간은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약속이 어긋나면, 배신이다.

5분 늦어도 배신이다.


22.

과거에는 달랐다.

"40분에서 1시간 걸립니다."

50분에 오면? '빨리 왔네.'

1시간 10분에 오면? '조금 늦었네.' 하지만 화내지 않았다.

범위 안이니까.

지금은?

"30분 내 도착"

31분에 오면? "늦었잖아!"

1분 차이다. 하지만 약속 위반이다.


23.

시간이 정확해질수록, 우리는 더 예민해진다.

정확성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초조하게 만든다.

카운트다운을 보며, 우리는 기다린다. 아니, 감시한다.

'제때 올까?' '늦지 않을까?'

30분이 30일처럼 길게 느껴진다.


24.

그렇다면 누가 시간을 통제하는가?

과거: 나는 시간을 계획했다. "토요일 오전에 장보러 간다."

현재: 플랫폼이 시간을 약속한다. "30분 내 도착"

나는 그 약속을 믿는다. 그 약속에 맞춰 움직인다.

시간 설계권이 이동했다.


25.

더 근본적으로 보자.

빠른 배송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편리함. 즉각성. 확실성.

그리고 빠른 배송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가져갔는가?

기다림. 여유. 계획. 시간 감각.


26.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기다림은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시간을 느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을. 시간이 나의 통제 밖에 있다는 것을.

기다림은 시간에 대한 겸손이었다.


27.

그런데 카운트다운은 다르다.

카운트다운은 시간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29분 59초, 29분 58초...

시간은 숫자가 되었다. 관리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숫자에 종속되었다.


28.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빠른 게 좋잖아. 정확한 게 좋잖아. 기다리기 싫잖아.

맞다. 문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기다림을 없앴다. 하지만 시간 주권도 함께 잃었다.


29.

30분 배송은 편리함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 체제다.

이 체제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계획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스템이 약속한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30분 후 도착"

우리는 30분 후에 문 앞에 있어야 한다. 시스템이 정한 시간에.


30.

오늘 저녁, 당신은 무언가를 주문할 것이다.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뜰 것이다. "28분 내 도착"

당신은 그 숫자를 볼 것이다. 25분, 20분, 15분...

그리고 초조해질 것이다.

너무 자연스럽다.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시간을 통제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이 나를 통제하고 있는가?

다음 글에서, 우리는 소비를 본다.

쇼핑은 왜 필요의 충족이 아니라 감정의 해소가 되었는가. 클릭 한 번이 어떻게 감정 조절 장치가 되었는가.


[다음 글] 6화. 장바구니는 감정의 저장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화.누가 당신의 집 앞을 통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