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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민 Sep 10. 2019

알려진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

스타트업에게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쓴  불안한 공급망 관리 이야기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중 간 무역전쟁 격화로 각 국가별 분업/특화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공급망 위기에 노출되면서 주요 부품조달(전략물자 등)에 차질이 확산되고 있다.”


필자가 19년 물류 분야 기자로 활동하면서 요 몇 달처럼 공중파나 지면에서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처음이다. 공급망 관리란 단어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처럼 회자가 많이 됐던 적이 있었나 싶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이 공급망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쁘고 막 그러더라!

 

공급망(관리) 위기라는 단어는 무역분쟁이나 경제보복 등의 국가 간 정치적 갈등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대지진 등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 사태에서도 발생된다. 그러나 공급망 위기는 늘 수요의 변동과 고객 수요의 발생 위치, 그리고 네트워크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일상적인 모든 것이 불확실함에 노출돼 있다. 공급망 위기는 제조, 유통, 물류 등 대형 기업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스타트업에게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람에서 불안한 공급망 관리 위기관리에 대한 몇 가지 관점과 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불확실성은 점령의 대상이 아니다

증권가에서는 “알려진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다. 예를 들어 PIGS (포르투갈, 이태리, 그리스, 스페인) 국가가 위험하다고 언론에서 보도하면 사실 PIGS 국가의 부도 가능성은 역으로 낮아진다고 한다. 주식시장에서 위험한 상황은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PIGS의 국가 부도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때 엉뚱하게도 프랑스와 같은 우량 국가가 갑작스럽게 위험에 빠지는 시나리오를 뜻한다.


즉 미래의 불확실성을 모두 분석하여 그에 맞는 재고를 대량으로 확보하고 설비를 갖추며 잉여 자원을 최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확실성이란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익일 수요와 같은 미시적인 불확실성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측 가능한 것을 어떻게 불확실하다고 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불확실성과 친해지기

재고를 통해 수요와 공급 사이의 완충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제조 기반 공급망에 비해, 물류는 재고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물류는 본질적으로 재고(Inventory)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용력(Capacity)으로 움직인다. 즉, 잉여 수용력은 사용되지 않으면 이월되지 않고 사라진다.


따라서 물류산업은 수요의 급격한 변동이나 공급 측면의 위험을 ***헤징(Hedging)할 방법이 많지 않다. 물류산업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재해와 같은 갑작스러운 위험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물류 사업에 뛰어들거나 서비스 주력이 물류인 많은 스타트업들이 지역적으로 산포 된 불확실한 수요에 절망한다. 수요에 따른 서비스 품질을 일관되게 안정화하기 어려운 공급 측면을 간과하여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사례 또한 많다.

*** 헤징(Hedging): 헤징(hedging)이란 공격이나 위험을 막는 ‘울타리’라는 뜻의  ‘헤지(hedge)’에서 비롯된 금융용어로, 위험분산, 위험회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물류를 둘러싼 외부 환경, 즉 옴니(omni) 채널과 O2O(online to offline), 크로스보더 이커머스(cross-border e-commerce), 제조 산업의 서비스 플랫폼화가 진행되면서 물류 분야에 산업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경쟁자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수요와 공급 측면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지진과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다. 평균 수요에 기반하여 적절히 자원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변동과 불확실성의 존재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갖추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공급망과 불확실성은 언제까지나 늘 불편한 동반자 관계로 지내야 하는 것인가.



물류 비즈니스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성패를 좌우해왔다
물류는 재고(Inventory)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용력(Capacity)으로 움직인다



수요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방법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 배송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당일배송이 어려운 것은 고객이 지역적으로 산포 되어 있을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를 갖추는데 투자비용이 과다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당일배송의 경우 서비스 수요와 인접한 지역에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데, 수요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 이후 수요의 변동이 증가할 경우 이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경우 수요를 보수적으로 산정하고 투자를 최소화한 후 수요가 있는 곳부터 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비스하지 못하는 지역에 경쟁자가 먼저 뛰어들 경우 해당 시장을 완전히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최대한 빠른 시장 진입이 중요하다.


그러나 수요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시장 진출을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진행할 경우 비어있는 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자체를 빼앗길 수 있다. 그렇다고 경쟁을 고려하여 모든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할 경우 수요의 불확실성으로 인프라 활용 효율이 급격하게 감소하여 빛의 속도로 투자금을 소진하게 될 수도 있다. 천천히 진입하면 성공할 수 없고, 빠르게 진입하면 빛의 속도로 망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의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서비스 스타트업인 포스트 메이츠(Postmates)는 이러한 수요의 불확실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월별 정해진 고정 요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액요금제를 도입했다. 매월 10달러를 회비로 내면 해당 기간 내 표준 배송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선순환이 이루어질 경우 더 많은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고 수요의 변동성 역시 고객이 늘어나는 비율만큼 낮아지게 된다. 결국 배송 서비스도 인터넷이나 전기와 같이 정액 요금에 기반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 서비스별 요금제는 고객 수요의 변동성을 크게 높이지만, 정액 요금제는 수요의 변동성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다.


① 불확실성과 친해져라

먼저 불확실성을 늘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환경을 명확히 분석하고 예측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이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는 입장에서 장밋빛 전망만 갖고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 혹여나 다가올 수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충분한 시나리오 분석이 필수라는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불확실한 시나리오를 모두 예측하고 분석하는 것은 실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므로 이 부분에서 너무 많은 자원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모든 불확실성을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될까. 결국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② 유연성이 생존능력이다

위험관리 측면에서 유연한 체계 구축은 ‘프로세스 표준화’와 ‘매뉴얼화’, ‘비상시 통제 프로세스 확립’에 달려있다. 그나마 제조산업은 표준화된 부품이 존재하고 품질 역시 일정 수준 즉각적인 확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물류산업은 운송수단과 같은 자원은 유사하다 하더라도 관련 물류 인력이나 프로세스를 새로운 지역이나 서비스 모델에 맞게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로 외부의 물류 자원을 급히 조달할 때 표준화된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서비스 품질의 급격한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물류 서비스가 여러 다양한 서비스를 조합하여 엔드 투 엔드(end-to-end)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상시 일부가 아닌 전체 프로세스를 통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재고(Inventory)가 존재하지 않는 물류산업에서 시간(Time)은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투입되는 물류자원과 인력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역량이 유연한 체계 구축의 핵심이 된다.


③ 프로세스 다변화하라

서비스 프로세스와 비즈니스 모델에 있어 포트폴리오를 구축함으로써 리스크를 헤징 할 필요가 있다. 포트폴리오 전략이란 투자에 있어 위험(Risk)과 보상(Return)이 다양한 아이템을 묶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물류에 있어서도 동일한 물류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동시에 운영한다면 수요와 공급의 불확실성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별 수요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비즈니스들의 리스크가 상호 헤징 되어 전체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비스 프로세스를 다양하게 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운영비용이 낮은 자가 운영모델부터 투자비는 낮고 운영비용은 높게 들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투입할 수 있는 단기 아웃소싱 모델까지 다양하게 서비스 프로세스를 구성함으로써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다. 도요타 자동차 역시 부품 공급업체들을 다변화하여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을 적극 도입했고, 이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부품 공급선을 재빠르게 전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의사결정은 숫자에 기반하라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체계적 의사결정 메커니즘 구축은 전체 시스템을 최적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불확실성이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이에 대해 오랜 노하우를 가진 전문 인력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서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는 것은 어렵고, 인력 수급 역시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전문 인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기반한 체계적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즉 관리자의 노하우에 기반하여 운영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닌 데이터와 시스템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체계 구축이 중요한 것이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방패로 막을 수 없는 창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류 비즈니스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성패를 좌우해왔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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