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무늬 만들기

마음을 수선하는 시간

by 솔빛태연

아끼던 장바구니 천이 오래 사용하다 보니 한 번에 찢어져 버렸다.


다른 장바구니도 여러 개 있고 지금 것보다 훨씬 예쁘지만, 애착 때문일까. 바느질해서 다시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모처럼 반짇고리를 찾는다.


당연한 통과의례처럼 실 끝을 침으로 적셔 뾰족하게 만들고, 바늘귀에 조심스럽게 통과시키는 일. 처음엔 쉽게 들어가지 않던 실이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바늘을 관통할 때, 그 작은 성취감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는 작은 성취감은 인생과 참 닮았다.


처음 시도할 때는 어렵고 막막했던 일들이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해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바늘에 실을 꿰고 난 뒤 매듭을 짓는 것도 한 번에 잘해야 한다.

실 끝의 매듭은 천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장치다.


너무 크면 겉에서 도드라지고, 너무 작으면 금세 천 속으로 숨어버린다.

삶의 원칙도 이처럼 균형이 필요하다.


나는 고집과 소신 탓에 젊은 시절 나에게 온 기회를 여러 번 놓친 적도 있었다.


사람의 만남도 그랬고 일에서도 그랬다. 남들보다 좋은 조건들이 주어졌지만 그 기회가 좋다고 느끼지 못한 어리석음이 따랐다.


돌이켜보면 내가 한 행동은 "헛똑똑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정답이라 여겼었다.


많은 생각들을 해보았지만, 그것이 그때의 나의 나이와 상황의 한계였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언니나 오빠도 없는 나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고 내 생각이 옳은 줄만 알았던 어리석은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은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는 법이니까.


내가 정하고 가는 속도가 지금의 내가 되었듯, 남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에 바늘을 찌를 때의 조심스러움은 인생의 첫걸음과 같다.


실수와 잘못된 선택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그 바늘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바느질 중 실이 엉키면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풀어야 한다.




단추와 바늘.png



젊은 시절의 나는 참 급했다.


빨리 안정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배운 것은, 복잡한 문제이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느질에는 다양한 바늘땀이 있다. 박음질처럼 반복되는 일상도 필요하고, 한 방향으로만 이어지는 박음질과 달리, 사방으로 길을 내며 천을 단단히 잡아주는 사방 바느질처럼 변화와 도전도 필요하다.


감침질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의 삶을 지탱하는 희생과 정성도 있다. 그런 바늘땀들이 모여 나만의 삶의 품격을 만든다.


때로는 잘못된 바늘땀을 뜯어내야 한다. 실밥을 하나씩 제거하는 번거로운 과정처럼, 인생에서도 잘못된 선택을 되돌려야 할 때가 있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후 위패를 모실 공간을 찾던 시간도 그런 과정이었다.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애도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용주사 호성전을 찾았던 것도 내 삶의 큰 사고의 전환이었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 때도 있다. 작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그 자리는 더 단단해진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다. 상처받아도 다시 일어서며 더 지혜롭게 다음 걸음을 내디딘다.


천마다 결이 있듯 사람도 그렇다.


결을 무시하면 옷이 비틀어지듯이, 각자의 성격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관계를 맺을 때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진다.


나 자신의 결도 좀 늦었지만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결을 따라 살아간다. 바느질에서 중요한 것은 여백이다.


바늘땀 사이의 간격, 무늬 사이의 공간처럼 인생에도 여백이 필요함을 알아간다.






일 사이의 휴식, 만남 사이의 혼자만의 시간. 젊을 땐 모든 시간을 채우려 했지만, 이제는 비어 있는 시간이 주는 여유를 알아가고 있다.


마무리 바늘땀은 실을 숨기며 단단히 고정하는 과정이다.


인생의 마무리도 화려함보다 깔끔한 정리가 중요하다.


내가 지나온 길을 정리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을 준비하는 일,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소중한 마지막 바늘땀이다.


애도 심리 전문가로서 많은 사람의 마지막 바늘땀을 지켜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의 형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여준 삶의 태도이다.


모처럼 해보는 손바느질을 마치고 완성된 작품을 보면 뿌듯하다.


삐뚤빼뚤한 바늘땀도, 완벽한 바늘땀도 모두 모여 나만의 작품이 된다.


실수와 후회까지도 지금의 나를 만든 불완전하지만 나름의 영근 아름다움이다.


이 시간, 나는 바늘에 실을 꿰며 새로운 바느질을 시작한다.


서두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바늘땀까지 조금 모자랄지라도 정성스럽게 이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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