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힐링공간

용주사 호성전

by 솔빛태연

천주교 신자인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리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미사를 통해 마음의 위로는 얻었지만, 부모님과 더 친밀하게 연결될 공간에 대한 갈망이 남았다.

그러던 중 오래전 방문했던 용주사를 다시 찾게 되었고, 호성전을 알게 되었을 때 이곳이 내가 찾던 바로 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20년간 직장암으로 고생하셨다. 인공항문(장루) 수술을 받으시고 콜론 백(colostomy bag)을 붙인 채 생활하셨다.


60세에 확진을 받아 수술하셨고, 80세인 2010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원 동행과 항암 치료를 위한 입퇴원을 반복하며 어머니 곁을 지켰다.


아버지는 엄마의 투병 중에 돌아가셨고, 나는 엄마의 보호자이자 위로자가 되었다. 엄마가 떠날까 두려운 마음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는 긴 투병 중인 엄마만큼 나 자신도 지쳐 있었다. 연세가 드시며 방광에도 적신호가 생겨 여러 검사를 하고 입원해 계실 때, 병원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을 권유했다.


그리고 입원 후 2주 만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이후 미사와 명절 의례를 지냈지만 애도는 충분히 되지 않았다.




벚꽃 흐드러진 길을 걷다 어머니가 떠나신 봄날이 생각나 눈물이 터지고, 식당에서 부모님을 모신 가족을 보며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평소에도 정갈하고 깔끔한 성향의 어머니는 외출이 있는 날이면 혹시 콜론 백이 터질까 염려하면서 식사도 조절하면서 신경을 쓰곤 했다.


콜론 백을 붙이는 자리는 위생상 자주 교체를 하니 늘 피부가 헐어 있었다. 피부가 약한 복부쪽은 헐어진 피부만큼 내 마음도 생채기가 나는 듯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더 그리웠고, 함께한 추억이 부족한 것이 늘 서러웠다. 그 시기, 우연히 불교 법문 행사에 참여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기 시작했고 위패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주 오래전 사진 촬영차 들렀던 용주사가 떠올랐고, 사도세자의 효심이 깃든 이곳에 부모님의 위패를 모시기로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내 마음의 위로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용주사 호성전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새소리, 바람 소리, 울창한 나무, 그리고 대웅전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경내에 울려 퍼지는 불경 소리에 위로를 받았고, 호성전에 모셔진 부모님이 이 소리를 듣는다면 영혼의 안식을 느끼실 것만 같았다.


2020년 화재로 호성전이 전소되는 위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복원되어 온전히 모셔져 있다.



수원 용주사 풍경.png






이곳에 부모님 위패를 모신 것을 계기로 시작한 동국대 석·박사 공부는 죽음을 주제로 한 애도 심리, 철학, 영성, 사회문화적 이해로 나를 성장시켜 주었다.


돌이켜보니 마음 한편의 해결되지 않던 애도의 과정이 결핍으로만 남지 않도록, 실마리를 찾고자 애썼던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학문적 성찰과 개인적 치유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나의 일로 이어졌다.


16년째 상담 일을 하면서 나는 지금껏 나만이 행하고 있는 작은 실천이 있다. 정해진 상담 시간이 끝난 후 5분에서 10분 정도는 내 마음속에서 온전히 무보수의 상담 시간을 보시(布施)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진행하는 이 시간은, 내가 호성전에서 받은 위로를 타인에게 나누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손금, 지문 분석, 점성학, 타로, 그리고 죽음 애도 심리 상담까지 하고 있으니 조금은 독특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나의 선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인연은 담담히 배제하면 그만이다.





애도 심리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한 공간’이다.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고인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호성전은 나에게 부모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혼의 쉼터였다. 애도는 혼자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위로받을 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위로받고 싶은 날, 부모님 부재의 외로움이 사무치게 올라오는 날이면 가까운 용주사로 차를 몬다.


용주사 경내로 걸어가는 길, 자연의 향기가 코끝에 전해지면 머리가 맑아지며 잠시 철학자의 마음이 가동된다.


이 시간에 찾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이곳은 나를 삶 앞에 겸손하게 하고, 유한한 삶을 돌아보며 성장하게 한다.


엄마가 좋아하셨던 커피 한 잔 올리고 경내를 한바퀴 돌고 오는 날은 마음이 그저 편안해진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나의 시간은 그렇게 꽉 찬 행복감으로 채워지곤 한다.

계절의 변화는 애도의 단계를 상징한다.





봄은 희망, 여름은 생명력, 가을은 아름다운 마무리, 겨울은 성찰을 의미한다.


용주사에서 계절을 보내며 애도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원으로 이사 온 것도, 용주사를 알게 된 것도 이제는 필연처럼 느껴진다.


애도 심리 전문가로서 박사 학위를 마무리한 것도 이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불교와의 인연도 애도의 한 방편으로서 나에게 안정을 주었다.



진정한 떠나보냄은 망각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연결임을 호성전을 통해 느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부모님이 그리운 날, 조용한 발걸음으로 찾아가는 이곳에서 애도의 참 의미를 발견해 가고 있다.


용주사 호성전은 죽음이 끝이 아닌 다른 형태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이곳은 부모님을 애도하며 나 자신도 치유의 힘을 얻고,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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