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순수한 열망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살고 있다.
오늘도 이 단어를 되새기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기에 늦는 경우는 없다”라고.
다만 스스로 그렇게 느끼게 작동하는 마음이 문제일 뿐이다.
너무 늦었다거나 하기엔 이미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 된다.
모든 시작은 지금, 이 자리(here & now)에서 바로 작동해야 한다.
누구나 반드시 삶에는 언제나 약간의 흥분이 필요하다.
운 좋게 맞은 복권의 숫자만큼이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로맨스(romance)처럼……
그래도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음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이 세상에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일은 없다. 다만 마음이 가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마음 가는 일을 찾아 나서는 일도 언제나 시작할 수 있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게 일상의 무료한 반복을 탈피하는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린 푸념조로 “5년만, 아니 3년만 젊었으면”이라고 무언가 시작하기에 앞서 흔히들 말한다.
그리곤 “그 예전 나이에는 못할 게 없었다”라고 한다.
아마 30대가 보는 20대나, 40대가 보는 30대나, 60대가 보는 50대나 "그 나이에서의 내려 다 바라보는 시선은 늘 같다"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사실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나 욕망을 발견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일상에서의 좋은 자동차를 대하거나, 조금은 흔해 저 버린 명품들, 아니면 TV매체에 나오는 연예인의 순간적 이름 등, 이런 가벼운(?) 가치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체로 순수한 욕망이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요즈음 젊은 친구들에 비해 그동안 우리의 억제된 유교적 관습과 왜곡된 교육적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감성은 숨겨져 그 명확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순수한 마음의 열정, 혹 욕망 대신 주변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가 껍데기를 쓰고 나와서 우리의 순수한 열망을 대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순수한 열망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천재적 예술가 "장 욱진"의 말을 한 번쯤 들려주고 싶다.
살면서 진정한 삶에 대한 “나 다움”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는 남의 눈치를 보며, 내 뜻과 같지 않게 사는 것은 질색이다.
나를 잃어버리고 남을 살아주게 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점잖다”는 말을 싫어한다. 겸손이라는 말도 싫어한다.
그 뒤에 무언가 감추어진 타산적 계산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솔직한 오만이 훨씬 좋다. 먼저 자기 마음대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참된 자기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다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代價)가 있다”라고 한다.
경제학의 교과서 중 인기 있는 ‘맨큐(Mankiw)의 경제학’의 제1원칙이다.
분명한 것은 선택에 대한 대가로 그만큼의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부분 삶의 여러 길 중에서 우린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그 선택의 중심은 내가 있고,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올곧 이 나에게 있게 된다.
단지 그것을 인정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